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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느끼는 사랑일 뿐이야

신카이 마코토 <언어의 정원>




천둥소리

희미하게 울리네

구름이 껴서

비라도 와준다면

당신은 여기 있어줄까?


달달합니다. 달달하다 못해 허니 비에 감성을 송두리째 빼앗긴 듯합니다. 원래 그런 성향은 좀 있었습니다. 다만 본래의 그 간질간질한 모습으로 돌아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 삶의 경험치는 무덤덤함과 비례해야 할까요? 슬퍼하지도 울지도 않은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래서 달달한 애니메이션을 보려니 내키지도 않거니와 한숨이 뿜어져 나왔습니다. '쯧쯧 저런 감성이란…'

그래도 잃으면 되찾고 싶은 모양입니다. 저에겐 이제 없으니 질투합니다. 그 감성이란 것 말입니다.





<언어의 정원>은 선생인 형의 강의 시간에 어느 학생이 발표한 소재였다고 합니다. 발표할 차례면 잔뜩 긴장하긴 해도 그런 수업을 무척 좋아했는데, 대강의 분위기를 전해 듣자 이내 한 번 보고 싶어 졌습니다. 혹 다시 강의실에 앉은 상상을 했던가요? 아무쪼록 그런 계기로 찾아본 것입니다. 결론적으로는 꽤 나이 든 형제 둘이서 '허어…'하는 묘한 감탄사를 연발하며 보았습니다.


<언어의 정원>은 47분짜리 중장 편 애니메이션입니다. <초속 5센티미터>로 알려진 신카이 마코토의 2013년작이죠. 구두 장인을 꿈꾸는 고등학생과 스물여덟 여선생, 세상 속에 내상을 입고 고립된 둘은 공원의 정원에서 만납니다. ‘상처 입었구나.’ 그들의 ‘내상’은 직유와 암시를 통해 감지됩니다. 자기 세계 속에 빠져 비가 오면 학교 대신 정원을 찾는 소년, 모함과 상처 속에 오전부터 정원의 벤치에서 맥주를 마시며 초콜릿을 안주 삼는 여교사. 이 연상 연하의 두 주인공은 서로를 끌어당기며 각자의 상처를 서서히 치유해 갑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만날 수 있기에 둘은 점차 비가 오기를 고대하게 되죠. 한 장면 한 장면 애니메이션이라기보다는 마치 실제 자연을 카메라에 담은 듯 유려합니다. 그리고 소년과 여선생의 관계는 마치 사랑 같습니다. 아니, 사랑이 맞습니다.





사랑이 맞다면 그 관계는 아찔합니다. 금기. 하지만 <언어의 정원>은 그 함정을 교묘히 피해 갑니다. 이야기를 통해 비틀고 꼬아내며 슬쩍 피해 갔다기보다는 그 금기를 투명하고 순수한 ‘문학적 그리기’로 정면 돌파한 것입니다. 특히 자신감 넘치는 제목만큼 빈틈없이 짜인 뛰어난 대사를 통해 언어의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는데, 그들이 독백처럼 내뱉는 대사들은 압권입니다. 그 대사들로 하여금 이 이야기는 금기가 아닌 아스라한 사랑 이야기로 승화되죠. 나도 몰래 '오오!'하는 감탄사가 터져 나올 이 애니메이션은 스스로 애니메이션의 한계를 넘어서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게 가능할까요?


영상과 언어의 마술을 부려 실사 영화에 버금가는 예술성을 추구하고, 시조라는 매개체를 통해 대사에 한껏 멋을 부립니다. 장면 장면이 아름답고, 애니메이션을, 이야기를 한층 다른 차원으로 이끌고 가는데 성공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대부분의 이야기가 결국 사랑 이야기임에도 언제나 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건 이 작품을 통해 다시금 입증됩니다.





독특한 인물, 절묘한 대사, 미세한 감정 묘사, 그 감정과 적절히 보조하는 배경과 장면 묘사… 웬만한 영화, 실제를 능가하죠.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그럼에도 한 가지 한계를 꼽으라면, 단 한 치의 실수와 오차 없이 완벽했다는 점일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그 완벽함 때문에 <언어의 정원>이 실사가 아닌 애니메이션임을 깨닫게 만듭니다. 색으로 빚어낸 인간, 조금은 다른 숨결을 내뱉는 생명처럼.


한 편의 중단편 소설 같은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언어의 정원>은 여선생과 제자의 사랑이 아닌 또 다른 금기에 도전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애니메이션으로 그것을 초월한 실사 영화의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입니다. 그 예술성으로 영상미에 그치지 않고 문학성을 추구한 부분도 그렇습니다. 단지 그런 생각을 한번 해보았다는 것입니다.


복잡한 말은 필요 없을지 모릅니다.

어느 날, <언어의 정원>을 보고 눈이 말끔히 정화되었습니다. 무덤덤하게 마른 제 가슴에 떨군 눈약 한 방울 같은 영화로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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