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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워한 사랑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노파가 끄는 수상한 유모차에 대해 알게 된 츠네오(츠마부키 사토시). 그는 유모차 안에 묘령의 여인이 타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조제(이케와키 치즈루)라는 이름의 여인은 하반신을 쓸 수 없는 장애인이고, 노파는 그런 손녀를 돌보며 줄곧 유모차에 싣고 다녔던 것입니다.

운명인 듯 조제와 마주친 순간 마음이 끌린 츠네오는 자꾸만 그녀가 신경 쓰입니다. 관심을 가지면 자꾸 생각나고 생각할수록 마음은 깊어집니다. 하지만 조제는 그를 거칠게 밀어냅니다. 책임지지 못할 동정, 서툰 희망을 경계한 것입니다.

하지만 얼마 후, 조제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조제는 홀로 남습니다. 츠네오는 그런 그녀를 걱정하며 찾아가죠. 그렇게 츠네오는 어두운 장막이 내려앉은 조제의 마음속에 스며듭니다. 바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이야기입니다.


둘은 행복한 한때를 보냅니다. 조제는 꿈같이 달콤한 사랑을 맛봅니다, 그 행복은 두꺼운 커튼 사이 창틈으로 한줄기 빛이 스며들어 그 빛 속에 잠시 점멸하던 묵은 먼지를 밀어냅니다. 그리하여 창문을 열자 불어온 바람은 머릿결을 쓰다듬고, 조제는 그 달콤한 바람을 만끽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너무나도 어쩔 수 없이…

늘 그렇듯 불어온 바람은 지나갑니다. 절정의 균형이란 영원히 유지되지 못하고, 강렬한 섬광일수록 빠르게 지나가며, 만족과 충만함은 또 다른 결여를 낳습니다. 물론, 찰나의 바람일지라도 시원하게 해갈했다면 그만이지만, 그럼에도 그 행복, 사랑에 대해 다시금 의문을 품습니다.

‘이건 사랑일까, 동정일까,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일까, 아니면 단지 가벼울 수밖에 없었던 청춘의 무책임함일까?’


소설과 영화로써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보면 볼수록 사뭇 다른 감상을 남겼습니다. 처음엔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답다고 느꼈지만, 씁쓸한 여운을 남기더니 곱씹을수록 여러 가지 감정이 오가는 것입니다. 어느 날은 보다가 문득 화가 났습니다. “츠네오, 나쁜 자식… 그럴 거면 차라리 가만 놔둘 것이지.”하고 말이죠. 물론 그럴 거면 이 이야기는 성립되지도 않았습니다. 이야기 자체를 부정하자면 직접 이야기를 만들어볼 일입니다.

다만 청년의 성장에 있어 조제는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츠네오의 사랑'에 대한 오해라면 오해일 것입니다. 연민의 감정을 사랑으로 착각한 건 아닐까 의심합니다. 스물에 가까운 나이에 보았을 때는 그저 아름답더니 서른 즈음엔 츠네오를 바라보는 시선에 의심이 가득해지는데, 어쩌면 츠네오가 아닌 제가 더 이상 순수하지 못한 까닭일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츠네오의 모습을 보면서 마치 조제는 성장을 위해 잠시 거쳐 가는 '과정'처럼 보였습니다. 조제에겐 잔인하다고 느껴졌습니다. 이미 많은 것을 잃은 그녀는 한 번이라도 버림받으면 안 될 대상입니다. 그럼에도 결국 조제를 떠나는 츠네오에게 저는 분노감을 느끼고 만 것입니다(실상 츠네오에서 제 자신을 돌아본 때문일지도 모를 일이죠). 이미 애잔한 삶에 무지의 조약돌을 던진 츠네오는 순수함이라는 핑계를 댈 수 있지만 지고지순하다고 믿기엔 한없이 가볍고 무책임합니다. 특히 조제와 이별하며 통곡하던 츠네오의 눈물은 용납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이별 뒤 마치 확인사살처럼 마중을 나온 카나에(우에노 주리)를 보자 잔인함마저 느낍니다. <아마겟돈>에서 방금 아버지를 잃은 딸이 남자 친구의 생환에만 기뻐 날뛰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장면입니다.


이참에 다시 영화를 꺼내봅니다. 사랑엔 여러 얼굴이 있으니 동정과 연민 또한 사랑의 한 방식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반면 피 끓는 젊은 청년과 장애인의 사랑 이야기는 정해진 결말로 향합니다. 가끔 영화를 보며 다소 이르게 행복한 장면이 나오면 러닝 타임의 어느 지점에 있나 확인하고는 합니다. 영화의 초입부터 잘 풀리면 그 뒤는 필연적인 비극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도 그렇습니다. 아름다운 둘의 사랑은 위태롭습니다. 결국 바람은 지나가고, 해는 저물어 어두워지며 열었던 창을 닫고 커튼을 치게 될 것입니다.

극적은 반전은 어려워도 그 끝에 어떤 희망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몇 번이나 다시 보는 영화면서 그 기대감은 늘 되풀이됩니다. 그러다 보니 저는 조제와 츠네오에게 참으로 여러 가지를 요구하는 관객이 되어버렸습니다. 제가 원하는 결말은 비극 이후에도 삶은 계속된다는 암시입니다. 역시 영화는 극적인 희망을 제시하진 못합니다. 다만 이 이야기가 그들의 끝이 아니란 점을 보여주며 저를 안도하게 만들어 줍니다. 츠네오는 츠네오대로, 조제는 조제대로 인생의 한 과정에서 마주친 두 남녀는 호랑이와 물고기들 사이 어딘가에서 각자의 인생을 살아갈 것입니다. 다만 조제가 조금 걱정될 뿐입니다.

한동안 저는 이 영화를 미워했습니다. 괴로움이 엄습했고 다시 영화를 찾아보기까지 오랜 공백을 두기도 했습니다. 문득 “그래도 조제도 평생 단 한번 달콤한 꿈을 꿀 수 있었던 거야.”라며 스스로를 위안해보았습니다. 적당한 타협 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또한 온전한 답은 되어주지 못합니다. 어쩌면 앞으로도 명확한 결론을 짓기 어려울지 모릅니다.


한편, 미워했지만 오래도록 마음에 품어온 영화입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미워하던 시절에도 한 번쯤은 주위에 권하게 되는 영화였습니다. 소설이든, 영화든… 이 영화는 좋은 작품의 영속성을 보여줍니다. 2003년 작임에도 잔상이 많이 남아 이미 15년이 지난 지금도 같은 화두를 두고 여러 가지 생각과 말이 오갈 수 있다는 자체가 이 영화 가진 미덕일 듯합니다. 가능하다면 그런 영화는 가급적 오랜 시간 곱씹어 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영화는,

다시 꺼내 보아도 잘 그린 수채화처럼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여백이 넓고 아날로그적 감성이 넘칩니다. 이야기의 흐름은 다소 느리지만, 그 행간은 솔직 담백하며 섬세하고 깔끔하게 가득 채워집니다. 쫓기는 마음을 버리고 느긋하게 볼 만합니다.

그리고 영화를 다 본 뒤엔,

바다로, 동물원으로 가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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