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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미의 사랑

냉정과 열정 사이



이탈리아 피렌체의 공방에서 복원 일을 배우는 쥰세이 아가타. 유명 화가의 손자이자 스승 지오바나의 총애를 받는 그의 인생은 모자랄 것 없어 보입니다. 그의 곁엔 매미라는 헌신적인 연인도 있죠. 하지만 그런 그에겐 오래도록 채우지 못한 공허함이 있습니다. 바로 서투르게 이별해야 했던 아오이와의 추억입니다. 쥰세이는 여전히 아오이를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학창 시절 만나 연인으로 발전한 쥰세이와 아오이. 둘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둘은 함께할 미래를 꿈꾸며 약속하죠. 아오이는 말합니다. “내 서른 번째 생일에 피렌체 두오모(대성당)의 큐폴라에서 만나.”기로 합니다. 하지만 영원할 것만 같던 둘의 사랑은 불현듯 깨지고 맙니다. 그래선 안 된다는 걸 알지만 어쩔 수 없이 찾아온 서툰 사랑의 시련입니다. 이제 쥰세이에게 남은 건 안타까운 이별의 기억 뒤에 남은 두오모의 약속뿐입니다. 사람은 떠났지만 그 약속만큼은 지울 수 없을 강렬한 흔적이 되어 그를 붙잡습니다. 아오이를 보낸 건 돌이킬 수 없을 실수였습니다. 아마도 그는 미술가 대신 수복가의 길을 택해 피렌체로 향한 것도 아오이 때문일 것입니다. 과거 복원 그리고 약속의 도시로…



원작 소설을 처음 읽은 건 군 생활의 말년을 보내고 있을 때입니다. 깔깔이를 입고 한창 ‘감수성’이 예민해졌던 그때, 26개월은 너무나도 길어 세상에 주어진 시간 전부를 빼앗긴 듯했죠. 전 끈에 묶인 망아지처럼 전역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멜로 소설을 손에 들고 다시 만날 날을 꿈 꾸며…

입대를 앞둔 여행 중에 길에 떨어진 땅콩을 줍던 모습을 보고 반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여행을 끝낸 이후 딱 한번 재회했을 뿐인데, 어쩐지 영원히 알았던 사람 같고, 그래서 입대 뒤에도 수시로 편지를 주고받곤 했습니다. 작가 츠지 히토나리와 에쿠니 가오리가 서로 편지를 교환하듯 이어나간 <냉정과 열정 사이>은 당시의 저에게 와 닿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실제로 두 작가는 월간지에서 각기 남녀 주인공의 시각으로 교대 연재하는 방식으로 이 소설을 써나갔습니다.


‘아오이는 그때의 약속을 기억할까?’ 쥰세이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로부터 아오이가 밀라노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갑니다. 하지만 아오이의 곁엔 이미 다른 사람이 서 있습니다. 부유한 사업가인 마빈입니다. 그녀 또한 예전과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것만 같습니다. 결국 둘은 응어리진 서로의 상처만을 확인한 채 각자의 길로 헤어집니다. 다시 보지 않는 게 차라리 나았을 것입니다. 밀라노에서 돌아온 그는 공방에서 일어난 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그가 머물던 공방도 문을 닫습니다. 그 또한 복원될 수 없을 사랑 앞에 좌절하며 모든 걸 접고 도망치듯 일본으로 돌아갑니다. 매미 또한 그런 쥰세이를 묵묵히 뒤따릅니다.


하지만 일본으로 돌아간 쥰세이는 뒤늦게야 자신과 아오이가 이별하게 된 이유를 알게 됩니다. 거기엔 할아버지의 유산을 노리던 탕아와 같은 아버지와의 불편한 관계도 얽혀 있었던 것입니다. 자초지종을 모두 알게 된 쥰세이는 모든 것이 자신의 불찰과 오해에서 비롯되었음을 깨닫고 아오이에게 속죄와 마지막 이별의 편지를 보냅니다. 그리고 얼마 후, 스승 지오바나 선생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피렌체를 다시 찾은 쥰세이는 마침내 공방에서 일어난 사건의 전모를 이해하게 되죠. 그 또한 시선이 엇갈린 사랑에서 비롯된 일입니다.

다시 피렌체로 돌아가 복원 일을 계속하기로 결심한 그는 메미에게 이별을 고합니다. 오직 쥰세이가 자신을 바라보기만을 바랬던 메미 또한 그것으로 모든 것을 분명해집니다. 쥰세이는 절대 아오이를 잊을 수 없습니다.

한편 쥰세이의 편지를 받은 아오이의 마음 또한 흔들립니다. 그런 마음을 눈치챈 마빈은 붙잡고 싶다면 하지 말아야 할 실수를 하고 맙니다. 잠시 떨어져 아오이가 다시 생각할 시간을 준 것입니다.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준 마빈은 곧 미국으로 떠나게 되고, 아오이에게 비행기표를 건네며 자신과 함께 가자고 합니다. 아오이는 선택의 기로에 섭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오이의 서른 번째 생일이 다가옵니다. 쥰세이는 피렌체 두오모의 계단을 오릅니다. 아오이는 아직도 약속을 잊지 않고 있을까요?


마치 영화의 주인공이 된 듯했습니다. 그만큼 <냉정과 열정 사이>는 쥰세이의 마음, 아오이의 시선으로 보았습니다. 물론 현실은 영화가 아닙니다. 다만 영화에 몰입하니 무의식 중에 그 영화와 같은 삶을 모방하는 것일지 모릅니다. 저의 첫사랑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군에서 제대를 한 뒤 그 ‘땅콩 첫사랑’과 연이 닿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쥰세이와 아오이의 이별처럼 애절했고, 둘의 약속은 저의 뇌리 속에 꽤 강렬하게 각인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서른 살 즈음, 전 정말 피렌체 두오모의 큐폴라에 올랐습니다. 물론 주변을 방문하는 기회에 그곳을 잊지 않고 찾은 것입니다만, 만사 제쳐두고 꼭 찾아가야만 했습니다. 자초지종을 모르는 동행자는 저 때문에 야간열차로 피렌체로 향했고, 삼백 개가 넘는 계단을 공복에 올라야 했습니다.

그렇게 큐폴라에서 바라본 피렌체는 멋졌습니다. 아오이는 없지만.


그런 약속한 적 없으니 당연합니다. 또 시간이 흘러 그 시절을 뒤돌아보다가 문득 깨닫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저는 쥰세이가 아닙니다. 또한 아오이도 아닙니다. 돌이켜보면 저의 사랑은 주인공인 쥰세이가 아닌 아오이 곁을 지키던 마빈과 더 닮았던 것 같습니다. 반대 역할로 보아도 실제 인생의 사랑이란 주인공 아오이보다는 조연 메미에 더 가까울 것입니다. 이제야 이해해 봅니다. 그에겐 이미 평생 사랑해온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주연이 아닌 조연일 수 있다는 것을

실례 많았습니다. 열정적인 사랑, 냉정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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