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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점프

번지 점프를 하다



다시 태어나도 널…

비 내리는 캠퍼스의 어느 여름날, 인우(이병헌)의 우산 속으로 한 여학생이 뛰어듭니다. 당돌한 행동에 쭈뼛쭈뼛 잠시 당황한 인우는 이내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맙니다. 아직 덜 마른 수채화 속 물감 같은 머릿결 사이로 곱디 고운 얼굴의 윤곽이 드러납니다. 나와 당신을 제외한 세상 따위 바삐 움직이든 말든… 상관없을 순간입니다.


그렇게 불쑥 인우에게 둥지 튼 여학생의 이름은 조소과 퀸카 태희(이은주)입니다. 첫눈에 흠뻑 빠진 인우는 풋풋한 세레나데를 바칩니다. 국문학도인 인우의 구애는 풋내 가득 어설프지만, 도도한 태희는 바로 그런 순수한 모습에 서서히 마음을 엽니다.

둘의 봄날이 시작됩니다. 새콤달콤한 둘의 사랑은 뜨겁고 차갑다가 두근거리며 미소 짓게 만들죠. 하지만 좋은 건 영원할 수 없다는 듯 때마침 시련이 닥쳐옵니다. 인우에게 입영 통지서가 도착한 것이죠. 폭주하던 둘의 사랑은 그렇듯 입영 열차 앞에 가로막힙니다. 결국 어쩔 도리 없습니다. 젊은 연인은 변치 않는 사랑을 약속합니다. 입소까지 함께하기로 둘은 기차역에서 만나기로 합니다. 먼저 도착한 인우는 태희를 기다리고, 태희는 인우에게 가기 위해 부랴부랴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하지만 결국 그 날 태희는 인우에게 닿지 못하죠.



영화의 다음 장면은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흐릅니다. 인우는 이제 학교 선생이 되었습니다. 삶은 화려했던 청춘의 꽃을 시들게 합니다. 인우 또한 그렇습니다. 그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주어진 삶을 꾸역꾸역 살아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그런 그의 뇌리에 찌릿한 기시감이 훑고 지나갑니다. “넌 대체 누구야?” 그건 분명 태희입니다. 그러나 태희지만 태희가 아닌 몸과 얼굴로… 낯선 학생에게서 익숙한 연인의 향기가 느껴집니다. 바로 한국 로맨스 드라마에 한 획을 그은 영화 <번지 점프를 하다>의 이야기입니다.


영화의 전반부는 사실 다소 고전적인 방식의 청춘 로맨스입니다. 영화가 나온 당시(2001년)에도 이미 사골 같은 소재였죠. 하지만 <번지 점프를 하다>는 이제 그런 류의 드라마에서도 수작으로 꼽히는데, 오랜 시간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아왔고, 지금 봐도 여전히 달달하니 설레는 영화입니다. 흔하고 흔한 사랑 이야기들 중에서 흔치 않은 사랑 이야기의 하나로 남은 셈이니까 엄청난 경쟁을 이겨낸 작품인 셈입니다. 일견 정석, 정공법이 통했다는 생각도 드는데, 기본에 충실하다면 역시 통할 수 있다고 느낍니다. 에피소드와 장면 하나하나가 섬세하지만, 특히 배우들의 궁합이 돋보입니다. 대근(이범수)과 같은 주변 인물도 감칠맛을 더해주죠. 원래 낙점받은 주연 배우는 이병헌과 이은주가 아니었으니 전설의 완성엔 역시 우연이 작용하는 모양입니다. 볼수록 배우 이은주가 몹시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단지 잘 만든 로맨스이기만 한 건 아닙니다. 수많은 사랑 이야기 중 다르고 새로워지기 위한 시도가 가미되었죠. 흔치 않기 위한 신선한 변주가 후반부에 이어집니다. 고전적 멜로물은 점차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어 꽤나 파격적인 결말을 향해 달립니다. 소설적인 면이 돋보이는 전개입니다. 이 영화의 발단 자체가 감독의 개인적 일화에서 출발했다고도 합니다. 다음 생에 태어나도 사랑할 것이냐는 아내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자, 그럼 남자로 태어나도 다시 사랑할 것이냐는 질문을 받은 것으로부터 아이디어가 번뜩인 것이죠.



한편 익숙한 것을 다르게 만들어냈다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결국 윤회와 환생의 개념이 접목된 것입니다. 유사 문화권에선 무난히 이해될 만하고, 다른 문화권에서도 신선한 요소입니다. 다만, 다른 사람, 다른 성으로 환생한다 보니 현실적인 관계가 신묘해졌습니다. 이 영화가 새롭고 남다르며 돋보이게 만드는 요소가 된 동시에, 일반적인 않은 사랑을 다룸으로써 다소 마이너 한 감성으로 흘렀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을 경우 이야기는 다소 진부했을 것입니다. 이미 동양의 신화 전설 속에 유사한 환생 담은 무수히 회자되어왔습니다. 그러니 인우와 태희의 환생 담에서 태희가 현빈이 아닌 태희 혹은 다른 여인으로 환생했다면 <번지 점프를 하다>의 이야기도 무난해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나저나 이름 참 잘 지었습니다. 선견지명이 있습니다. 태희 씨가 현빈으로 다시 태어난다면 지훈 씨는…


물론 그러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해야만 합니다.

자, 이제 그만 상상하고 다시 번지 점프를 추억합니다. 비올 때면 우산을 펴고 누군가를 기다리게 만든 영화, 그리고 아무나 내 우산 속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만든 영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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