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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마텔, 파이 이야기



조난자가 되는 것은 우울하고 지친, 상반된 것들 속에 불잡힌 것과 같다. 환할 때는 트인 바다가 눈멀게 하고 두렵게 한다. 어두울 때는 어둠이 폐소공포증을 일으킨다. 낮에는 더워서 시원하기를 바라며, 아이스크림을 꿈꾸면서 바닷물을 뒤집어쓰고 싶어진다. 밤이면 추워서 따스해지기를 바라며 뜨거운 카레를 꿈꾸고, 담요로 몸을 감싸고 싶어진다. 더울때는 살이 타들어가서 물을 뒤집어쓰고 싶어진다. 비가 내리면, 거의 익사 상태가 되면서 물기 없는 곳에 있고 싶어진다. 음식이 있을 때는 너무 많아서 잔치를 벌여야 한다. 음식이 없을 때는 하나도 없어서 굶어죽을 지경이다. 바다가 잔잔해서 움직임이 없을 때면 바다가 움직이기를 바란다. 바다가 일어나서 나를 에워싼 원이 집채만 한 파도에 부서질 듯하면, 거센 바다가 주는 고초를 당해야 한다. 숨이 막힐 지경이 되면, 당신은 바다가 다시 잔잔해지기를 바라게 된다. 그 순간, 상황은 그 반대로 흘러간다. 쨍쩅 내리쬐는 태양빛에 쓰러질 정도가 되면, 줄에 널어놓은 생선 조각을 말리고 태양 증류기에서 물을 얻는 데는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비가 물을 확보하게 해주면, 습기가 손질해놓은 물고기를 상하게 해서 초록색으로 변해 흐물흐물해질 거라는 사실이 생각난다. 거친 날씨가 가라앉고, 하늘의 공격과 바다의 배반을 이기고 살아나면, 신선한 물이 바다로 쏟아져버렸다는 분노에 환희가 가라앉게 된다. 이것이 당신이 보게 될 마지막 비일지, 다음번에 비가 내리기 전에 당신이 갈증으로 죽게 될지 걱정이 되어 환희가 가라앉아버리는 것이다. - 파이 이야기 중에서

영화를 보고 원작소설을 읽는다는 건 그만큼 영화가 좋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가끔 원작 찾아보기를 망설이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영화에서 촉발된 최초의 풍만한 감정이 도리어 식지 않을까하는 우려 때문이다. 원작보다 못한 영화라면 몰라도, 영화보다 못한 원작은 못내 아쉽다. 건드리지 않으니만 못한 일도 있다.

그런 면에 비하면 <파이 이야기>는 드문 일이다. 보고 또 읽어도 무방하다. 영화를 보고 원작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사실 영화의 엔딩이 모호 했기 (혹은 당혹 했던) 때문이다.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웠으나 리처드파커가 곧 파이 파텔이라는 건 원작을 읽고서 비로소 납득했다. 또한 원작을 찾은 건 영화를 연출한 이안 감독 뿐 아니라 작가 얀 마텔의 메시지를 다시금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혹 영화와 다른 메시지는 없을까?' 그러한 관점 포인트도 원작 읽기의 재미를 더해 주었다.  

영화 보기와 원작 읽기는 약간의 시차를 두고 이뤄졌는데, 다소 시차를 두고 보아도 영화와 소설 각기의 장점이 상호 보완해주는 듯했다. 특히 글을 읽는 내내 영화의 아름다운 장면들이 배경 화면처럼 눈에 어른거려 좋았다. 아마 영화를 먼저 보든, 원작을 먼저 읽든 무관할 만큼 서로가 좋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경우 약간의 시차를 두는 것도 효과가 있다.  

마지막으로 영화에 이어 원작 소설까지 <파이 이야기>의 의미에 좀 더 깊이 심취한 이유는 '표류'라는 소재 때문이었다. 이 이야기를 접한 건 마침 (주인공 파이 파텔의 고향인) 인도에서 고독한 이방인으로 지내던 때였다. 비축된 음식도 바닥 났고, 얼룩말, 하이에나, 오렌지주스 그리고 리처드파커 같은 인도 사람들과 하루하루 보내며 파이 파텔이 되었다. 그리고 227일간의 표류에서 살아난 그를 이해했다. 그 이야기의 결말을 이해하고 몸서리치면서도 아이러니하게 희망 같은 걸 느꼈다. '나도 생존할 수 있다!' 일종의 표류 공감이다. 

생존의 끔찍한 사투가 우화와 풍자를 통해 멋지게 표현된 작품이다.

저자 얀 마텔

역자 공경희

출판사 작가정신 | 2004.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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