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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성이 없으면 모두 잃을 것이다

우먼 인 골드



“만약 인생이 달리기라면 언니가 이겼지만, 복싱 경기라면 아직 여기 서있는 제가 승자겠죠.”

마지막으로 언니를 떠나보내며 무뚝뚝한 듯 위트 넘치는 추도사를 읊는 노부인. 그녀는 장례식이 끝나자 동향의 친구에게 변호사를 소개해달라고 부탁합니다. 마침 그 친구의 아들이 풋내기 변호사인 것이죠. 아무리 풋내기라도 같은 핏줄을 믿고 의지하려는 점에서, 아주 조금은 이 영화의 혈통과 정체성을 짐작할 만합니다.


그녀는 유대인 이민자입니다. 원래 오스트리아인으로 히틀러 나치의 발톱이 오스트리아를 움켜쥐자 고향을 탈출해 미국으로 건너온 지 어언 60여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언뜻 어지간한 일이면 잊고 흘려보낼만한 긴 세월입니다. 그러나 어떤 종류의 일이란 결코 흐르는 시간과 함께 흘려보낼 수 없습니다. 언니의 유품을 정리하던 그녀는 편지 몇 통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잃어버린 무언가를 되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풋내기 변호사를 찾습니다.



노부인의 의뢰는 길고 먼 이야기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오스트리아에서 그녀의 부모는 부유한 유대인 사업가였습니다. 예술에 조예가 깊어 많은 예술가들이 수시로 집을 드나들었는데, 그곳엔 삼촌 내외도 같이 머물렀죠. 특히 아델레 숙모에 대한 기억이 또렷합니다. 아이가 없던 숙모는 언니와 자신을 친자식처럼 살뜰하게 보살폈습니다. 안타깝게도 숙모는 병으로 일찍 세월을 떠났고, 생전의 모습은 아름답고도 고독해 보이는 한 점의 그림으로 남았습니다. 그건 바로 삼촌이 구스타프 크림트에게 의뢰해 그린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이죠. 한때 본래의 이름을 잃고 ‘우먼 인 골드’로 불렸던 크림트의 대표작. 경매가 1500억, 오스트리아의 모나리자. 그녀가 되찾으려 하는 건 바로 그 그림입니다.



물론 그녀에겐 예술적 가치 이전에 그리운 숙모의 초상화, 고향집 벽에 늘 걸려 있던 가족 소유의 그림입니다. 나치로 인해 세상이 혼탁해지자 평화로운 가족의 삶은 급격히 파탄에 이릅니다. 그즈음 오페라 가수와 결혼한 그녀는 집과 고향을 잃고 부모와도 생이별한 채 도망칩니다. 당시 예술품에 대한 나치의 집착적 수집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밖에 모든 재산을 몰수당했죠. 하지만 잃은 게 그뿐이라면 오히려 다행이던 시기입니다. 또한 살아남아 낯선 타지에 버티며 새롭게 뿌리내리는 사이, 슬픔과 상실감은 가슴 깊이 묻어 두어야 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몰수당한 예술품은 엉뚱한 주인의 품에 안겼습니다. 엄연히 주인이 있는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은 오스트리아 정부의 소유가 되어 있죠. 뻔뻔하게도 적법한 절차를 통해 기증받았다는 주장과 함께… 하지만 양심이 있다면 그게 터무니없다는 건 모두가 압니다. 남의 것을 강탈하고도 돌려주지 않으려는 것일 뿐이죠. 세월이 흘러 비난과 압박을 받던 오스트리아 정부도 국가 이미지 개선 차원에서 조금은 태도를 물려 검토 위원회를 열게 됩니다. 마침내 돌려받을 ‘기회의 문’이 아주 조금 열린 것입니다. 언니의 유품에서 발견한 편지는 작은 단초가 되어주고, 깊숙이 파고들자 초상화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됩니다. 어떤 작가가 말하길, 결국 남는 건 작품뿐이라고 하던가요? 엄청난 가치의 미술품을 소유할 권리가 조카에게 있습니다(삼촌, 숙모도 곧잘 따라야 합니다). 물론 그녀에게 그림의 가치는 단지 얼마면 되냐며 돈으로 매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처음엔 사심 가득 겉돌던 풋내기 변호사도 결국 진심으로 사건에 몰입해갑니다. 미국에서 자란 그 역시 자신의 뿌리 문제에 직면했다고 할까요? 아마도 그건 단지 그림이 아닌 잃어버린 고향과 가족을 되찾으려는 여정인 까닭입니다.



다만, 오스트리아 정부의 태도가 걸림돌입니다. 애초 국제 사회의 눈치를 본 형식적인 검토였고, 자신들의 모나리자를 쉽게 포기할 리 없습니다. 정당하게 해결하려는 어떠한 노력과 진정성 없이 비겁한 방식으로 가능한 문제를 회피하려고 듭니다. 게다가 이젠 미국인이 된 한 개인이 오스트리아 정부와 법적 분쟁을 벌이는 데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가는 곳마다 암초와 마주치죠. 반면 노인에겐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여생을 싸우며 보내기엔 이미 지쳐 그만 포기하길 원합니다. 과연 그녀는 그림을, 아니 고향과 가족을 돌려받을까요?

사실 이 영화를 보며 자꾸 생각이 떠오르는 건, 요즘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대체 누가 누구의 화이트리스트인가요? 같다고 할 순 없지만, 빼앗고도 뻔뻔한 건 매한가지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화가 많다고들 하는데, 사실 거기엔 누구보다 그들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만큼 빼앗았고, 여전히 뻔뻔합니다. 만약 일찍이 진정성을 가지고 사과하고 정당한 대가를 치렀다면, 지금과 같진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역사의 교훈을 살피지 않으니 증오의 역사는 되풀이됩니다. 이 영화를 보고 저희 집 노부인께서도 제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진정성이 없으니 결국 모두 잃는 거란다.”


(영화의 스포일러가 되어버려 죄송하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의 결말을 보면 정말 그렇습니다. 오스트리아는 모두 잃습니다. 만약 오스트리아 정부가 과오를 직시하고 진정성을 가졌다면 ‘우먼 인 골드’는 그들의 모나리자로 남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무쪼록 싸움이 거칠어져 걱정입니다. 어쨌거나 모두 상처를 입게 되니까요. 다만 전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그래도 마지막에 서 있는 건 우리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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