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인채

[인도의 건축 ⑭] 18세기 스티브 잡스의 천문대, 잔타르 만타르

2019년 11월 26일 업데이트됨


코나라크 태양 사원이 은유라면, 라자스탄 주 자이푸르에 위치한 잔타르 만타르는 인도 과학의 직유다. 800여 년 전 건설된 코나라크 태양 사원은 전설을 품고 은근한 방식으로 인도의 천문 기술에 신비감을 자아내는 한편, 그보다 잔타르 만타르는 좀 더 명확한 형태로 인도인의 과학 기술력을 우월함을 과시해 보여주는 증거라 하겠다.

*사진 : 잔타르 만타르의 해시계, searchaboutindia.com

사실 천문학에 관심을 두지 않는 여행자라면 특별한 감흥 없이 스쳐지나갈 탐방지가 될 수도 있다. 관심을 기울여 자세히 들여다보려 해도 누군가 해설해주지 않는다면 어렵고, 얼핏 원형과 직삼각형 모양의 독특한 구조물만이 반복적으로 눈에 띌 뿐이다. 자이푸르엔 주목할 만한 많은 문화 유산이 있으니 쉽게 발걸음을 옮긴다. 또한 자이푸르는 발걸음이 다소 급해지는 곳이다. 인도 여행의 관문으로 델리, 아그라와 더불어 황금 삼각지에 꼽히는데, 델리로부터 접근성이 좋고, 라자스탄의 관문으로 색다른 면모도 조금 접할 수 있는 곳이니 여행자들의 단골 코스다. 그만큼 어수선한 면이 있고, 취하기 쉬우면 희소성도 떨어지는 법이라 어떤 여행자들은 본능적으로 그곳을 벗어나 고요한 인도로 돌아가고파 조바심을 내며 탈출하려 드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평정심을 유지한다면 자이푸르, 잔타르 만타르는 공을 들여 들여다볼만한 유적이다.

잔타르 만타르는 얀트라와 만트라에서 유래된 단어다. 얀트라는 기구, 만트라는 공식을 의미하는데, 천체의 위치를 계산하며 기구와 공식이 이용되었다는 뜻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것이 현지어인 잔타르 만타르로 바뀐 것이다.

이곳의 건설에도 전해지는 일화가 있다. 무굴 제국 치세인 1688년, 이곳 지방 왕국인 쿠시바하 왕조의 비샨 싱 왕이 아들을 낳았다. 왕실의 점성가들은 그가 왕국의 명성을 드높일 비범한 아이일 것이라고 예견했는데, 그 예견은 틀리지 않아 왕위를 계승한 자이 싱(1688-1743년)은 18세기에 이르러 잔타르 만타르를 건설하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자이 싱은 과학자이자 사상가로 빼어난 자질을 지닌 인물로 어릴 적부터 천문학에 관심이 많았다. 이전까지 쓰이던 천체 관측 기구는 기록과 측정값이 정확하지 않다는 것을 안 그는 잔타르 만타르를 통해 기구의 정확도를 개선시키고자 했다. 그는 외국의 과학자들을 초청하고, 과학자들을 해외에 파견하는 등 기술 발전에 대단한 열의를 보였는데, 이는 단순히 과학적 탐구욕이 아닌 통치의 문제로 민생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결국 잔타르 만타르는 당 시대상을 반영한 과학 인프라였던 것이다.

자이 싱은 자이푸르의 위치를 위도와 경도로 확인하려는 욕구에서 이곳을 만들기 시작했고, 정확한 달력을 만들고자 했다. 주변 도시인 델리, 우자인, 바라나시, 마투라에도 네 개의 관측소를 설치했는데, 당시 무굴 제국의 황제 아우랑제브는 그의 명석함에 감명을 받아 ‘사바이’란 칭호를 주었다. ‘사바이’란 우월한 사람을 뜻한다. 그가 과학적 소양은 있었음 물론이고, 앞을 내다보고 필요한 기술을 현실에 반영한다는 점에선 18세기 스티브 잡스라 불러도 무방할 듯하다.

*사진 : 잔타르 만타르의 내부도, lbb.in

잔타르 만타르는 각기 용도가 다른 16대의 기구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핵심이자 기준점이 되는 것은 관측기구로 북극성 관측기가 있다. 북극성 관측기는 이곳에 세워진 첫 기구이기도 한데, 북극성과 북극 방향을 확인, 북극성은 특정 각도와 위치에서 선명하게 관측한다. 이와 더불어 일종의 오차 수정 기구인 람 얀트라와 차크라 얀트라가 있는데, 지구의 축이 기울어졌다는 것을 감안해 측정의 오차를 줄이고 기록을 정확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나머지 기구들은 이들을 기준으로 제작되었다.

획기적인 기술의 발전은 외국의 과학 이론과 기술의 접목에서 비롯되었다. 해외로 나간 과학자들이 프랑스 과학자인 프톨레마이오스(90-168년)의 연구 결과를 가져왔던 것인데,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있다고 주장했던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에 영향을 받았다.

그 밖의 기구 중엔 왕의 이름을 딴 자이 프라카시 얀트라는 기구가 있는데, 점성학이 중요했던 시대에 행성의 배치를 해독, 힌두력(인도의 날짜체계) 별자리와 길일을 계산했고, 또 다른 기구인 라즈 얀트라와 연동해 출생 천궁도를 만들었다. 라즈 얀트라는 이름 그대로 관측기의 왕인데, 200 킬로그램의 금속 원반으로 태양과 행성의 위치, 자전, 공전을 측정할 수 있었다.

한편 이곳에는 세계 최대의 해시계가 위치해 있다.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시간을 알려주는 것은 다른 해시계들과 동일하나, 자이 싱은 태양이 멀리 있기 때문에 해시계가 가능한 커야 정확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구상에 이르렀고, 그 결과 세상에 존재해온 다른 해시계들은 25-50초 단위로 시간을 알려준 반면, 브리하트 삼라트 얀트라라는 이름의 이 해시계는 2초 단위로 정확한 시간을 알려준다. 크기가 큰 해시계다 보니 금속이 아닌 벽돌과 석회 및 대리석으로 만들었는데, 형태는 두 개의 대리석 아치 사이에 큰 경사로를 설치한 모양새다. 태양에 비친 이 경사로의 그림자가 대리석 판에 떨어져 시간이 표시되는 것이다.

300여 년 전 관측소가 지금도 활용된다. 매해 6~7월 보름달이 뜨는 날, 풍속과 풍향을 확인하는데 잔타르 만타르를 이용한다고 한다. 바로 인도에서 가장 중요한 강우량 예측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곳에 깃발을 꽂고, 깃발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펄럭이면 강우량이 많고, 동쪽에서 서쪽으로 펼럭이면 강우량이 적다고 한다.

산업 비율의 논리에서 인도 농업의 산업적 비중은 점차 줄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절대적으로 많은 인구가 생업으로 농업에 종사하기에 이는 민생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거기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강우량의 측정이 오랜 관측 장비에서 아직도 유효하게 이뤄지고 있는 건 실로 놀라운 일이다.

#과학 #건축 #유적 #천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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