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인채

평론가들이 사랑한 영화 <퀸>, 여왕의 해방

7월 25 업데이트됨


*사진 : <퀸> 중에서


시대가 바뀌었다고 하지만 인도는 여전히 성에 대해 보수적이다. 특히 여성의 경우 수동적인 태도로 사회적 풍토 속에 스스로를 맞추고 자신을 억제하는데 익숙하다. 굳이 금욕적인 종교와 문화적 배경 등 복잡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아도 남녀칠세부동석이 엊그제 같은 우리에게도 이젠 생소해진 모습을 일상속에서 발견하게 된다. 가령 친척이 아닌 이상 남녀가 머리를 맞대고 밥을 먹는 일이 드물고, 클럽 출입구에서 파트너없이 입장 불가라는 푯말을 발견하거나 도심에서 민소매에 치마를 입은 여성이 대단한 구경거리가 되어버리는 것이 그렇다. 오죽하면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성이 뭄바이의 거리를 하루종일 걸었을 때 일어나는 일을 소재로 찍은 동영상이 회자될 정도일까? 사회도 사회지만 이를 지극히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인도 여성들에게서 순진함과 답답함 그리고 제아무리 호감이 생겨도 언감생심 다가가기 어려운 벽을 느낀다. 바로 이러한 모습을 위트있게 다루며 한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평론가들에 의해 올해 최고의 영화로 손꼽히는 영화 한편이 있어 소개해본다. 일찍이 2013년 부산 국제 영화제에서 상영된 바 있고, 2014년 3월 개봉한 영화로 인도를 알고 보면 무릎을 탁 치는 재미가 있고, 모르고 봐도 즐거운 영화 <퀸>이 그 주인공이다.


비카스 발 감독 연출의 영화<퀸>은 결혼식을 앞두고 약혼자에게 파혼 당한 라니(캉가나 라넛 분)의 이야기를 다룬 코미디 영화다. 그런데 파혼을 당한다니! 인도에서는 너무 가혹한 상황이다. 인도 남자 특유의 오글거림으로 라니(여왕이라는 뜻)를 ‘나의 여왕’이라고 부를 때는 언제고 그녀를 커피숍으로 불러낸 비제이는 폭탄 발언을 한다. 그녀가 이유를 묻는 것 조차 피하며 나중에 전화하겠다고 무마한다. 인도에서 결혼은 가진 재산의 반을 털어넣을 정도로 절대적인 의미를 지니는 일생일대의 축제다. 며칠에 걸쳐 진행되고 많은 사람들이 초대되어 성대한 잔치도 벌어졌으니 라니와 그녀의 가족은 절망적인 상황에 내몰린 것이다. 어찌 이야기가 비극적인 기운이 역력하다. 하지만 <퀸>은 코미디 영화다. 불길했던 이야기는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흘러 유쾌하고 발랄하게 전개된다. 충격에 빠진 라니는 홀로 파리로 허니문을 떠난다. 보수적인 집안에서 순진하게 자란 그녀는 항상 남동생과 외출하고 술이라고는 입에 대지 않으며 키스는 커녕 약간의 스킨쉽에도 겁을 먹는다. 그런 그녀가 이제껏 살아온 곳과 전혀 다른 낯선 세상 속으로 나선 것이다. 쉬울 리가 없다. 허니문처럼 평소 품어왔던 파리의 환상은 곧 깨지고 문화 충격 속에 예기치 못한 상황에 연거푸 처하면서 서둘러 인도로 돌아가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라니는 위기의 순간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고 교감을 나누면서 낯선 세상 속에 서서히 적응한다. 파리에서는 인도인 아버지를 둔 혼혈아로 자유분방한 영혼을 지닌 비제이락쉬미와 만나고, 암스테르담의 호스텔에서는 러시아인, 프랑스인, 일본인의 다양한 국적과 인종의 남자 친구들과 우정을 나눈다. 또한 음식에 남다른 자부심을 가진 이태리 음식점 주인과의 만남도 흥미로운데 꽉 막힌 인도 여성이 자유롭고 개성 넘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겪는 좌충우돌은 재미있다. 시종일관 라니의 모험은 유쾌하면서도 진지하고, 쓰면서도 달콤한 경험으로 충만해진다. 처음에는 약혼자의 이름으로 예약된 방에서 그의 전화를 기다리던 그녀는 점차 자립하여 스스로를 가둬왔던 틀을 하나씩 깨어 나간다. 술에 취해 속상한 마음을 달래도 보고, 실컷 춤을 추는가 하면 두려워 했던 것을 직면하고, 새로운 친구들과 못해본 일을 하는 등 모르는 것을 경계하고 두려워하던 수동성에서 벗어나 선택하는 것은 자기 자신임을 깨닫는다. 여정의 끝에서 자신을 매몰차게 밀어냈던 비제이가 다시 그녀에게 돌아오라며 손짓하면서 그녀는 귀국행 길에 오른다. 하라는대로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은 포기하며 살아왔던 여왕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과거가 살아 숨쉬는 인도에 우리는 매력을 느끼면서도 불편한 모습을 목격하는데 그 불편함을 이토록 통통 튀는 신선함으로 표현해 낸 영화는 드물다. 심리를 잘 짚어 낸 섬세한 대사와 연기는 물론, 영화 속 세세한 요소와 장치들이 오밀조밀 꼼꼼하게 모여 정교함이 엿보였다. 여배우는 주로 보조적인 역할에 그치는 발리우드에서도 최근 여성을 주연으로 여성의 이야기를 직접적이거나 과격하게 다룬 영화들이 있었지만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져 변방에 맴돌았던 게 사실이다. 일부에서는 거부반응도 있었다. 반면 <퀸>은 적은 예산에 주목받지 못했음에도 호평은 물론 훌륭한 흥행 성적을 남겼다. 종속으로부터 여성의 자립을 다루고 있는데도 말이다. 물론 영화 속에는 정서상 거부감을 일으킬만한 몇몇 위험을 적절히 피해나가는 요령도 보여준다. 요즘 인도에는 사랑하지만 가족이 허락하지 않아 결혼하지 못해 비극에 놓인 청춘들이 적지 않다. 남녀상열지사란 무릇 자연스러운 일인데 로미오와 줄리엣이 따로 없다. 어쩌면 <퀸>은 고정관념의 낡은 틀 속에서 바깥으로 한걸음 나아가고픈 절은 세대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도 같다. 인도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무척 새롭고, 어두운 이야기를 밝게 풀어낸 점은 세련되었다. 특유의 뮤지컬적인 요소도 코요테 어글리의 한 장면처럼 풀어내면서 위트속에 진지함을 품은 영화의 완성도를 높였다. 인도 내 주요 매체의 영화 평점을 토대로 <퀸>은 비평가들이 뽑은 2014년 최고의 영화다.


#퀸 #여성영화 #인도여성 #발리우드

#인도영화 #여성

​대한민국

  • Twitter Basic Black
  • 블랙 인스 타 그램 아이콘
  • 블랙 대표자 아이콘

Copyright © emoTure,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