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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이 항쟁, 반란에서 항쟁으로?

2019년 11월 26일 업데이트됨


세포이(Sepoy)는 영국 동인도 회사에 고용된 인도인 용병으로 주로 힌두와 무슬림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세포이 항쟁이 발발한 1857년 당시 전체 영국군 병력에서 세포이가 차지하던 비율은 80%에 달했다. 이들의 불만은 점차 가중되었는데, 군대에 선교사가 부임하고, 순장 금지와 재혼 합법화 등 종교와 관습 상의 문제로 반감을 가지게 되었고, 세포이의 규모가 커지자 재정 부담을 이유로 처우가 나빠지는 것을 비롯해 기본적으로 한계가 있을 수 있는 진급 체계에도 불만을 품게 되었다.

이렇듯 불만이 가중되고 있던 상황에서 항쟁의 방아쇠를 당긴 것은 우연찮게도 새롭게 지급된 장총 때문이었다. 문제는 탄약통이었는데, 화약이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탄약통을 싼 종이에 방수 목적으로 동물성 기름이 첨가되었던 것이다. 총을 장전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 종이를 입으로 물어뜯어야 했는데, 소나 돼지의 기름이 쓰이므로 소(힌두)를 신성시하고 돼지(무슬림)를 금기시하는 세포이들은 반발하기에 이르렀다.

세포이들은 이를 종교적 멸시라고 받아들였고, 탄약통의 수령을 거부했다. 지휘관과 정면 대치하는 상황에서 몇몇 세포이들이 항명했고, 주동자가 사형되는 등 가담자들에게는 가혹한 처벌이 내려졌다. 탄약통 거부하면 발생한 군사 반란은 동인도 회사에 합병되었던 토후국과 민간 세력 등이 참여하며 대대적인 항쟁으로 발전했다.

항쟁이 진행되며 일부 지역은 영국의 지배력이 마비되기도 했지만 지역에 따라서는 동인도 회사를 지지하거나, 중립에 머무르기도 했다. 무갈 제국의 회귀를 명분으로 삼은 까닭에 종교, 종파 간의 이해가 다른 경우도 있었다. 결국 1857년 말 영국이 교전의 주도권을 잡았고, 세포이 항쟁은 완전히 진압되었다. 이후 동인도 회사는 해체되었고, 1877년 영국령 인도 제국이 출범하며 영국 정부가 인도를 직접 관할하기에 이르렀다.

#식민지 #영국 #세포이 #반란 #항쟁 #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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