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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채의 인도읽기] 캘커타에서 델리로, 인도의 수도 이전

2019년 11월 26일 업데이트됨


신민하 박사 (한국외국어대학교 인도연구소 책임연구원)의 연구 논문 <1911년 영령 인도의 수도 이전에 관한 연구 -델리 수도이전 결정의 역사적 배경과 식민정부의 논의 과정을 중심으로>를 읽고.

"델리가 원래 수도였던가?"

"아니지, 원래는 캘커타가 수도였어."

인도의 수도에 관한 논쟁에서 자주 엿듣게 되는 문답이다. 한때 캘커타(콜카타)였던 것도 틀림없지만, 따지자면 더 오래전에는 델리도 수도가 다름없었다. 이슬람 지배 시대에는 델리가 중심이었고, 식민지 시대에는 캘커타가 오랜기간 중심이었다. 아니, '인도'라는 하나의 나라를 논하기 전에 이곳에는 애초 수많은 토후국과 통일왕조가 존재했다. 자, 이런식으로 논의의 범위를 넓힐 경우 이야기는 더욱 아득해 진다. 그러는 사이 나도 정작 중요한 의문을 잊고 있었다.

"그래서 왜 수도를 옮긴 것일까?"

미처 살펴보지 못했던 부분이다.


수도 이전에 관해서는 표면적으로 알려진 명분이 있다. 캘커타는 영국의 인도 진출 이후 충실한 교두보 역할을 해왔지만, 지리적으로 너무 서 편향된 거점이었다. 이에 수도 이전을 결정한 식민 정부는 그 이유로 동서를 잇는 델리의 유리한 지리적 위치, 기후적 장점(여름 수도 심라에서 가까움), 사회 간접 자본(철도, 우편, 전보) 등의 유기적인 연결 등을 손꼽았다. 틀린 말은 아닌데, 그 이면에는 벵갈분할령 시행의 철회라는 정치적 상황이 얽혀 있었던 것이다.


벵갈분할령 역시 낙후한 벵갈 지역에 대한 행정적 효율성 제고라는 명분이 있었다. 그러나 실상은 식민 정부의 효율적 지배를 위한 의도가 숨은 것인데, 당시 벵갈 지역에 거세게 대두되고 있던 민족주의운동에 대해 그 기세를 꺾고, 무슬림 인구 다수의 행정 지역을 신설하는 등 힌두-무슬림의 분리 통치 개념을 활용한 벵갈 쪼개기를 시도했던 것이다. 분리 통치란, 수적으로 열세인 식민 지배 세력이 큰 인도를 다스리기 위한 통치 기술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의도를 품은 벵갈분할령은 인도인의 반발을 사고, 힌두와 무슬림의 갈등만 초래한다. 결국 식민 정부는 거센 역풍을 맞게 되고, 벵갈분할령 시행의 철회를 선포하기에 이른다. 민심을 가라앉히기 위한 조치(사안의 심각성을 암시한다)로 델리에서 개최된 조지 5세의 즉위식에 국왕이 직접 벵갈분할령 시행 철회를 선언하는데, 이는 당시 식민 정부 입장에선 상당한 실패이자 굴욕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나온 묘책이 바로 수도 이전이었던 것이다. 철통보안 속에 극비로 준비(졸속에 가까웠다)된 수도 이전 계획은 벵갈분할령 철회와 함께 즉위식에서 기습적으로 선포된다.


워낙 갑작스러운 일이라 처음에 인도인들은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미처 인지하지 못했다고 한다. 다만 이것이 묘책인 것은 수도 이전의 여러가지 명분 외에도 델리는 힌두와 무슬림 모두에게 마음의 고향으로써 종교, 역사적인 의의를 지닌 곳이기 때문이다. 비밀 문서에서 당시 식민 정부의 총독 하딘즈는 델리로의 수도 이전과 관련하여 콘스탄티노플이나 고대 로마의 재림을 언급한다.

논문 원문 다운로드 : http://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07058970

#인도 #캘커타 #델리 #수도이전 #신민하 #영국 #식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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