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인채

[센티멘털 인디아 ⑧] 인도도 통역이 되나요?

2019년 11월 26일 업데이트됨


“인도는 어때요?”

무뚝뚝하니 말수가 적은 편이지만, 이런 질문엔 그의 얼굴도 환해진다. 얼마 전에도 인도를 다녀온 터였다. 마치 달변의 신이라도 내린 듯 신이 나서 이야기를 꺼낸다. 에피소드라면 무궁무진하다.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중에서

하지만 곧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다. 호기심 가득했던 상대의 눈길이 점차 시큰둥해진다. ‘그래서 인도는 어떻다는 거지?’라는 표정이다. 열변을 토하던 그도 주춤한다. 꼬리를 물고 이어진 이야기는 홀로 히말라야를 넘었다. 듣는 이의 기대는 이만큼, 그가 풀어놓은 이야기는 저만큼… 너무 멀어져 있다. 그는 생각한다. ‘흥분을 가라앉히자. 관심은 있어도 미친 건 나 혼자야.’ 쉼표와 마침표 사이 어딘가에서 하던 이야기를 얼버무린다.

곧잘 이런 말도 듣는다. “가본 사람들은 꼭 그러더라.”

인도를 다녀온 사람들은 침이 마를 새 없이 인도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강렬한 곳이다. 한번 가면 두 번 가고 두 번 가면 세 번 가는 곳이다. 처음은 충격적이고 두 번은 애증이 생기며 세 번은 급기야 (무언지 몰라도) 뭔가를 깨우칠지도 모른다. 그도 그랬다. 그는 어디에 살든 인도 여행자였다. 인도만이 그를 바꾸어 놓은 건 아니지만, 그가 맞이한 인생의 변곡점엔 늘 인도가 있었다. 자연히 고개를 끄덕인다. 부인할 수 없다. 영향을 받는다. 받다 못해 앓는다. 인도앓이다.

그건 평생 안고 가야 할 상사병 같은 것이지만, 낫고 싶지 않은 희귀한 질병이기도 하다. 앓아본 사람끼리는 통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그래서 인도 삼매경에 빠진 사람은 때때로 외로운 독백을 읊조린다. 세월이 흐르고 더 많은 사람에게 인도를 이야기할수록 그 기분을 이해하게 된다. 관심은 있어도 모두가 인도에 미치는 건 아닌 것이다. 그것은 누군가의 인생에 인도가 있냐 없냐의 문제다.

이 세상은 간명한 것이 좋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간단명료하게 인도를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인도에 관해 묻는 이가 있으면, 때로 ‘일단 가보면 안다.’고 답한다. 사정상 적당히 둘러대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은 처신이다. 어차피 지금은 직접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너무 많이 알아야 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그러지 않는 것 하나쯤 있으면 어떠한가! 그리하여 일단 가보면 안다. 그러면 긴 말 필요 없이 서로 얼굴을 마주하며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마치 길고 긴 여로 위를 스쳐 지나가는 여행자들처럼…

그러나 모두가 여행자가 될 순 없다. 궁금해하는 누군가 긴 이야기를 들어준다면, 인도 이야기의 화자(話者)가 되는 건 기꺼운 일이다. 인도로 가는 길에 누군가의 등을 떠미는 것도 좋은 일이다. 좋은 걸 혼자 알면 이기적이다.

다만 말하다 보면 수사(修辭)가 자못 수상해진다. 아니면, 인도 이야기의 주어는 다양한데 술어는 모자라다고 할까? 다양하다, 특별하다, 신비 하단 식의 표현을 자주 쓰게 되는데, 분위기가 무르익어 좀 더 화려한 수사를 붙일 수는 있어도, 인도 감상의 ‘기본형’이란 대체로 그 안에 수렴된다. 특별하고 신비하다는 표현은 인도에 어울리지만, 무엇이 어떻게 신비롭고, 왜 특별한지 설명해주지 못한다. 미묘한 무언가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무마하는 느낌이 든다.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중에서

이러한 수사의 수상한 모호함 속에 구전되는 이야기는 때로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흐른다. 기이한 인상만 남기고 오해를 낳는 것도 그런 것과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언뜻 현실을 초월한 세상 같지만, 실은 결코 무언가를 초월한 적 없는 지극히 현실적인 곳이다. 모순적이고 불합리하게 보이지만, 매우 논리적이며 합리적인 곳이다(벌써 모호해진다). 인도 역시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곳이다.

모두 다 모자란 수사 탓이다. 그만큼 인도를 표현할 충분한 어휘가 없다. 때문에 돌고 돌아 얘기하다 보면, 괜히 복잡하고 난해한 인상을 심어준다. 어려운 건 재미없고 재미없는 건 길게 들어줄 여유가 없다. 그 또한 관심이 멀어질 이유가 된다. 간단한 인도는 너무 추상적이고, 세세한 인도는 장황하다. 그러니 되도록 긍정적으로 좋은 이야기만 한다. 냉철한 이성과 날카로운 시각으로 인도를 논하는 건 현실적으로 버거운 일이다.

상대는 벌써 따분하다는 표정이다. 어지간한 관심이 없다면 계속 이어나가기엔 무리다. 어떻게 할까 잠시 망설이던 그는 다시금 말수가 줄어든다. 문득, ‘인도도 제대로 통역이 되는 걸까?’하고 생각해 본다. 결국 그의 몫이지만.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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