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인채

[인도의 이야기들] 모든 것이 여기에 있고, 여기에 없는 건 어디에도 없다

2019년 11월 26일 업데이트됨


하스티나푸라의 쿠루족 왕 판두는 눈먼 형을 대신해 적법한 왕위를 계승하지만, 실수로 현자를 해한 죄로 스스로 왕좌를 내놓고 유배를 떠난다. 판두 일족이 유배를 떠난 사이 그 형인 드리타라스트라가 눈먼 왕이 되어 왕국을 섭정한다.

시간이 흘러 형제는 각기 자식을 얻는다. 판두의 다섯 아들을 얻고 형제들은 성장하여 판두족을 이루는 한편, 드리타라스트라는 백명의 아들과 한 명의 딸을 얻고 그 아들들은 카우라바족이 된다. 판두족에게도 적법한 권리가 있는바 평화를 추구하며 공존할 수 있지만, 카우라바들의 생각은 다르다. 대다수 쿠루족 세력까지 장악한 그들은 교활한 간계로 사촌지간인 쿠루족을 망신 주고 박해하며 척박한 땅으로 몰아내고 제거할 궁리를 한다. 그 아버지인 드리타라스트라 역시 눈이 멀어 선과 정의를 보지 못하고 아들과 그들의 지지 세력에게 휘둘린다.

비슈누의 화신인 크리슈나의 지지를 얻어 적법한 권리를 찾으려는 판두족이지만 당장은 일단 몸을 낮춰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우선이다. 카우라바에게 쫓겨 갖은 고초를 겪으며 암중모색의 지난한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불의를 물리쳐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쿠루크셰트라의 전장으로 나선다.

하지만 그들이 무너뜨려야 할 적은 사촌지간인 카우라바다. 게다가 그들을 호위하며 나선 쿠루족의 군대를 보자 가슴이 저며 오니… 그 속엔 어릴 적 스승과 동무가 가득하다. 피의 내전으로 동족상잔의 비극이 펼쳐질 참이다. 흔들린다. 설령 명분이 있다한들 이것이 옳은 일일까, 왜 이 전쟁을 치러야만 할까, 이 전쟁에 승리하더라도 그것은 과연 승리일까 패배일까…

이것은 대략적인 <마하바라타>의 줄거리다. <마하바라타>는 최초의 서사시 <라마야나>와 더불어 인도의 2대 서사시로 꼽힌다. 창작 시기가 기원전 4세기경으로 추정되는 <마하바라타>는 그 자체부터 신화적인 탄생 비화를 품고 있다. 저자 베다뱌스(베다의 편찬자라는 뜻, 브야사, 크리슈나 드바이파야나로도 불림)는 당 시대의 대 사건들을 기록해야 한다는 일념에 가네샤(코끼리 얼굴의 신)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는데, 가네샤는 쉬지 않고 읊을 것을 조건으로 그 청을 받아들여, 형성된 결과물이 바로 <마하바라타>란 것이다.

하지만 신화와 달리 단 한 명의 저자가 <마하바라타>를 집필했다는 것엔 이견이 따른다. <마하바라타>의 등장인물들과 밀접한 관계인 저자가 3년의 노력 끝에 그 첫 권을 완성했다고 전해지지만, 그 내용이 너무 방대해 저자 홀로 감당하긴 도저히 어려웠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또한 <마하바라타>가 최초 언급되는 시기는 기원전 400년인데, 기원후 인도 전역으로 전파되어 문자화 된 것은 기원후 4세기경 인도 문화의 부흥기였던 굽타 시대로 추정된다. 다시 말해 <마하바라타>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 연마와 단련을 거듭한 이야기고, 수세기에 걸쳐 많은 저자들이 참여한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이름에 대한 해석은 다양할 수 있다. <마하바라타>는 말 그대로 풀이하자면 ‘위대한 바라타 왕조’의 이야기다. 잠시 역사의 권역 밖으로 넘어가면, 여기서 바라타는 고대 인도의 신화적 왕으로 <마하바라타>에 의하면 인도 전역을 일대의 드넓은 지역을 정복해 전설적인 인도 최초의 제국을 세운 인물이다(물론 역사에서 언급하는 인도 최초의 통일 왕조는 ‘마우리아’다). 즉 <마하바라타>란 바라타 왕에 뿌리를 둔 후손들의 이야기한 것이고, 현재 인도의 국가 공식 명칭 또한 ‘바라트’로 같은 뿌리와 연결한다는 것을 상기하면, <마하바라타>는 위대한(마하) 인도의 역사로 풀이될 만하다.

한편 <마하바라타>의 바라타를 대 전쟁이란 뜻으로 보고 ‘위대한 전쟁’이란 제목으로 풀이하는 경우도 있다. 전체 이야기 중 실제 18일간 벌어진 쿠루크셰트라 전쟁의 시간적 비중은 극히 짧음에도, 많은 분량을 전쟁 신에 할애한 점에서 이해해볼 만한 해석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용상 고대 바라타 왕조와 연결되는 건 다를 바 없어, 제목 자체를 어떻게 해석하든 군웅할거 바라타 왕조의 후손들이 펼친 전쟁 이야기로 보면 될 것이다.

실제 전쟁의 시기는 기원전 6세기(학자들에 따라 기원전 2세기 혹은 4세기로 본다)로 보는데, 역사적 사건이라지만 까마득하다. 저자가 옛 찬가를 모아 결집한 것을 수세기의 발전 단계를 거치며 많은 역사적 일화가 추가되고 다듬어져 지금에 이른다. 그 발전단계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되는데, 순서대로 판두족의 승리를 묘사한 ‘자야’, 전쟁에 관한 주제인 ‘바라타’고, 그 마지막이 ‘마하바라타’다. 여기서 ‘마하바라타’는 백과사전처럼 수록된 이야기에 덧붙어 상세 자료의 역할을 한다. 또한 오랜 기간 사제 계급에 전승되며 종교적 이야기도 덧붙여지는데, 가령 신이 <베다>와 <마하바라타>의 무게를 재어보니 <마하바라타>가 더 무거워 <마하바라타>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그런 예다. 그렇듯 <마하바라타>의 가치는 문학을 초월해 경전으로 자리 잡아온 것이다.

양적으로도 방대해진 현재 전체 18권의 총 십만 송이 전해져 ‘십만의 결집서’라고 일컫는데 길고 거대한 시(詩)의 축적이니 문학적으로는 그야말로 시적 거탑이다. 18권은 첫 권부터 아디, 사바. 바나, 바라타, 우드요가, 비슈마, 드로나, 카르나, 살야, 소우프티카, 스트리, 산티, 아누샤사나, 아쉬와메디카, 아쉬라마바시카, 모우살라, 마하프라스타니카, 스와르가로하나로 구성되어 있다. 각 권은 다시 여러 장으로 나뉘어 있다. 단순히 양적 가치만 바라볼 수 없다.

18권 중 인도 사상과 철학의 정수로 일컫는 <바가바드 기타>가 포함된 것이 비슈마 권이다. ‘신의 노래’, ‘신을 향한 송가’인 <바가바드 기타>는 <마하바라타>의 철학적 클라이맥스라고 부를 만하다.

한편 가장 긴 권이 산티인데, 전장에서 화살을 맞아 죽어가는 쿠루족의 원로 비슈마가 통치 윤리에 대해 암송하는 내용이다. 이는 오랜 세월 인도 사람들에게 각기 계층이 다해야 할 의무에 대해 가르치는 일종의 도덕서 역할을 해왔다.

아울러 판두족이 제 자리를 찾아가기까지 우여곡절의 재밌는 에피소드들이 가득하니, 역사, 문화, 종교를 아울러 인도의 모든 것을 담게 된다. 그리하여 <마하바라타>는 ‘세상 모든 것이 여기에 있고, 여기에 없는 건 세상에도 없다,’는 말로 갈음된다. 실로 모든 인도 이야기의 원천 재료 같은 것이다.

#마하바라타 #대서사시 #문학 #문화 #경전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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