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인채

[인도의 이야기들] 그때도 패밀리 비즈니스였다

2019년 11월 26일 업데이트됨


<리그베다>에 관해

<리그베다>에 대해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리그베다>는 곧 아리아인의 정착 과정을 배경으로 종교, 사상, 사회, 문화 등 당 시대적 상황을 운문(시)으로 표현한 것인데, 여러 가문에 흩어져 있던 것을 하나로 모은 결집서다. 결집한 형식은 총 열 권(만달)으로 나뉘고, 각 만달은 가문별 작품을 모아놓았다. 즉, 인도인의 정신적 뿌리를 이루는 찬가도 패밀리 비즈니스에 바탕은 둔다. 만달 별로 간략히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첫 번째 만달 : 군소 가문의 성자(리쉬)들의 작품 모음

-두 번째 만달 : 그리트스마드 가문의 작품 모음

-세 번째 만달 : 비쉬바미트라 가문의 작품 모음

-네 번째 만달 : 바마데브 가문의 작품 모음

-다섯 번째 만달 : 아트리 가문의 작품 모음

-여섯 번째 만달 : 바하라드와즈 가문의 작품 모음

-일곱 번째 만달 : 바시스트 가문의 작품 모음

-여덟 번째 만달 : 카나브 가문, 앙기라스 가문의 작품 모음

-아홉 번째 만달 : 소마(신들을 부르는 의식)와 관련된 주문(만트라)의 모음

-열 번째 만달 : 군소 가문의 성자(리쉬)들의 작품 모음

여기서 두 번째~일곱 번째 만달이 오래되었는데, 그중 일곱 번째 만달이 가장 오래되었다. 첫 번째와 열 번째는 그 이후의 작품으로 내용이 길다. 그중 특히 열 번째가 후기 작품으로 아리아인의 철학 및 세속적 의식이 드러난다. 작자 중에는 여성도 포함되어 있다.

역사보다 오랜 신들의 이야기 <인도는 이야기>

이렇듯 집안 별로 모은 것을 다시 신에 따라 정리했다. 먼저 아그니(불의 신, 가정의 번영 상징)에 관한 것을 두고 이어 인드라(비의 신, 전쟁의 신), 그다음에 나머지 신들에 관한 찬가 순으로 배열한 것이다. 하나의 신에 관한 내용의 세분은 긴 것이 먼저 오고 다음이 짧은 것 순으로 두는데 예외는 거의 없다. 또한 <리그베다>는 각각의 파(派)에 따라 따로 결집되었다고 전해지는데, 현존하는 건 시시르 파의 사칼 본뿐이다. 사칼 본은 총 천여 수의 시(1,028)로 구성되어 있다. 여러 작가가 만든 작품의 결집서이니 문체는 다양하고, 모호한 암시가 많으며 반복되는 찬가가 많아 언어는 베딕 산스크리트어가 쓰였다.

그 내용과 성격을 살펴보면, <리그베다>는 종교의식의 관점에서 중요하며 사제와 관련되었지만, 단지 종교적 이유만을 위해 결집되고 보존되었다고 보긴 어렵다. 그 근거는 종교와 무관한 관련성 없는 시들도 포함되어 있을뿐더러, 포함되어야 할 내용(<브라흐마> 즉, <범서>엔 포함된 내용들)이 모두 포괄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내용은 종교적이지만, 기본적으로 <리그베다>는 문학 작품으로 본다. (오늘날 이야기의 소재가 대개 사랑으로 귀결되듯) 당대의 소재란 종교였으므로 그 내용이 주로 신을 숭배하며 종교 의례화 되지만, 그 자체는 주어진 삶과 환경 속에 겪은 모든 경이로움을 시의 형태로 표현한 문학인 것이다. <리그베다>엔 제사 의식과 관계없는 다분히 문학적인 표현, 인간의 감정이 충만하게 표현되어 있다. 가령, 사랑의 감정 묘사는 이후 가창 시의 원형이고, 사랑과 더불어 대화, 독백, 찬양에서 드러나는 유머, 연민, 용맹 등 인간 감정은 훗날 영웅 대서사시, 희곡의 초기 형태를 이룬다. 그러한 관점에선 사제들만의 작품이라거나, 비록 출처를 논하기 어렵다 해서 <리그베다>가 신의 작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 내용은 단지 종교뿐 아니라 여러 세대를 걸쳐 아리아인이 인도에 정착하며 벌어지는 정치, 문화 등 역사적 상황을 표현했다. 역사적으로 10개 종족, 10명의 왕들이 펀자브 일대 지역에서 비 아리아계 토착 문명의 종족들과 싸워 이기는 역사적 기록으로, <리그베다>는 그러한 역사적 사건에 관한 기록이 최초로 등장한 문헌이기도 하다. 여기서 아리아인뿐 아니라 토착민의 문화 또한 묘사되니 고대 인도의 중요한 역사 문헌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들의 편견이 반영되어 토착민들은 종교와 제사 의식이 없고 관습이나 규칙도 없는 종족으로 묘사된 면이 있다.

<리그베다>을 통해 당시 사회상 또한 엿볼 수 있다. 가족을 사회 기본 단위로 한 4 계급의 계급사회(바르나, 카스트)로 여성의 신분과 지위는 자유로워 남편을 선택할 수 있었으며, 교육은 구전으로 이루어졌다. 오락으로는 음악, 춤, 달리기이 있었고, 이를 통한 도박도 성행했다. 농경 사회로 농업, 소(특히 암소)가 중요했으며, 옷을 만들어 입고 금속과 가죽을 가공하며 마차를 만드는 목수도 존재했다. 왕실엔 두 개의 조언 기관이 있어 상원(사바)은 상층 계급, 특별 계층을 대변하고, 하원(사미티)은 그밖에 계층을 대변했다. 마을 등 행정 단위가 존재했고, 범죄자에 대한 형벌은 비교적 관대했으며 사람들은 낙관적이고 건강한 삶을 누렸다. 지금과 비교하면 어쩌면 인간의 사회란 고도로 발전해갈수록 그 삶의 질은 도리어 퇴화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리그베다>에는 발전해가는 그들의 사상과 의식 또한 표현되어 <리그베다>에서 인간은 신의 존재에 대한 최초의 의문을 제기한다. 우주와 창조에 대한 그러한 성찰이 인도 철학의 시작이니, 인도 철학은 <리그베다>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리그베다>는 종교적 성향이 강하지만, 종교 문헌은 아닌 것이다.

역사보다 오랜 신들의 이야기 <인도는 이야기>

한편, <리그베다>에는 다양한 신이 등장한다. (앞서 결집 방식에서 언급했듯) 아그니와 인드라 신이 주요 위치하고, 그밖에 바루나(인간 행위, 윤리의 신), 아쉬비농(치료의 신), 수르야(태양 신) 등이 나온다. 즉, 그 시대 사람들은 자연의 힘에 좌지우지되며 대개의 신들이 자연을 상징하는 ‘인격화‘된 모습으로 등장하며, 이를 통해 고대 사회 자연 신을 숭배했던 문화가 표현된 것이다. 또한 등장하는 신들은 다양하지만, 당대 현인들은 점차 모든 신을 하나로 보는 범신론적 관점을 발전시킨다. 결국 모든 신들은 하나의 전능한 존재며, 하나의 신이 다양한 이름으로 나타난 것으로 본 것이다. 오늘날 인도는 섬기는 신이 너무 다양해 얼핏 혼잡해 보이지만, 실제 자세히 들여다보면 질서와 체계가 갖춰져 신계가 막상 혼잡하기만 한 건 아닌 것과 같다.

<리그베다>에 표현된 신계는 당대의 역사적 현실을 잘 드러낸다. 가령, 평화기엔 윤리의 신 바루나가 앞서지만, 점차 인도와 중앙아시아 일대가 투쟁기로 접어들자 전쟁의 신 인드라가 바루나를 앞서는 것이 그런 것이다. 바루나는 아수르 마다비라고도 부르는데, 요즘 우리가 바로 ‘아수라‘라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드라와 경쟁할 뿐 결국 나쁘고 멀리할 것, 적이 아니며 원래 ‘아수라’도 원래 반길 만한 것, 바람직한 것인 셈이다.

<리그베다>에는 인드라와 브리트라의 싸움에 대한 내용도 자주 나온다. 브리트라는 구름을 상징하는데, 이에 견주어 인드라는 비의 신인 것이다. 그러나 해석은 여러 가지로 인드라를 빛의 신, 역사적 인물로 보기도 한다. 또한 인드라는 도시의 파괴자로 불리는데, 당시 아리아인들이 인도로 유입되는 과정에서 토착민 즉 기존 정착된 문명의 성과 성벽을 함락시켰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기존 인더스 문명이 패퇴하며 그 도시가 파괴되고 <리그베다>의 아리아인이 정착하는 역사적 상황이 설명되는 것이다.

이후 신화에서 힌두 삼주신의 하나인 비슈누(유지의 신)의 화신이 인드라를 압도하지만, 아직 훗날 힌두교의 신들은 <리그베다>에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인간의 문명이 자연을 극복해 가며 <리그베다>의 주요 신, 자연 신들도 점차 그 중요성을 잃어가고, 대서사시, 푸라나에서 그 존재감이 약해지는 것이다.

역사보다 오랜 신들의 이야기 <인도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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