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디터

Mary Ellen Mark

매리 앨런 마크 (Mary Ellen Mark, 1940-2015)



미국의 사진작가다. 세상의 변두리, 사회의 소수자, 주류에서 소외된 인물 등에 주목하며 광고 및 인물 사진 외에 다큐멘터리 사진, 포토저널리즘을 추구했다. 필라델피아 교외에서 태어나 자란 그녀는 아홉 살의 나이에 처음 카메라(박스 브라우니)를 손에 쥐었다. 앨런 마크는 매우 모범적이고 학구적인 이력을 지녔다. 고교 시절엔 치어리더를 맡기도 했는데, 미술에 소질이 있었던 그녀는 펜실베니아대에 진학해 미술 및 예술사를 전공해 학사를 수료했다(1962년). 졸업 후 잠시 필라델피아 시 도시 계획과에서 근무하기도 했던 그녀는 포토저널리즘으로 석사 학위를 획득(1964년)했다. 이듬해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아 일 년간 사진을 찍으며 터키에 머물렀는데, 이때를 계기로 유럽의 여러 나라(영국, 독일,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를 여행하며 사진을 찍었고, 이때의 사진들로 이후 자신의 첫 사진집인 <Passport(1974)>를 발간한다.


귀국 후 뉴욕으로 활동 무대를 옮긴 앨런 마크는 베트남전 반대 집회, 여성 인권 운동 집회 등 시위 사진을 찍으며 점차 소수자, 약자, 소외층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노숙자, 마약 중독자, 매춘부, 정신병자 등에 주목했고, 특히 아이들은 그녀의 주요한 피사체였다. 이에 대해 그녀는 “아이들이 아이가 아닌 ‘작은 사람’이라는 느낌을 항상 받아왔다.”고 술회했다. 그녀는 평생 동안 전 세계의 아웃사이더들을 사진에 담았다. 그녀는 자신의 피사체, 즉 사진에 담은 인물들과 돈독한 유대관계를 쌓아온 것으로도 유명했다. <Ward 81(1979)> 작업을 위해 환자의 병동에 6주간 머물렀고, <Falkland Road(1981)>에선 석 달간 뭄바이(봄베이)의 매춘부와 어울렸다. 인도의 뒷골목, 사창가는 지금도 범접하기 어려운 위험천만한 곳으로, 그녀는 장기간의 인내와 용기로 이해와 허용을 이끌어 냈고, ‘잊힌 사람들의 거리’에 관한 그녀의 화두는 세인의 주목을 이끌어 내며 결실을 맺는다. 그녀는 마더 테레사의 모습을 담은 사진가로도 유명하다. 대상에 대한 접근법, 강렬한 사진의 비결에 대한 질문에 그녀는 단도직입적인 솔직함을 꼽았다. 단지 사진을 찍는 의도를 솔직히 밝히고 진심으로 다가가 그들의 영혼을 조금 취하는 것이다.


다큐멘터리 사진 이외에도 앨런 마크는 영화스틸작가로 100여 편의 영화에 참여하기도 했는데, 그 가운데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1979)>이 포함되어 있다. 1977년 매그넘 포토에 가입한 그녀는 1981년에 탈퇴해 아카이브 픽쳐스에 합류했다가 1988년 독자적인 에이전시를 열었다. 총 18권의 사진집을 내고 전 세계에서 전시회를 열었으며 <라이프>, <뉴욕 타임즈>, <뉴요커>, <롤링 스톤즈>, <베니티 페어>지 등에 사진을 기고했다. 2015년 75세의 나이에 형액 질환으로 사망했다.


주로 필름을 사용한 필름 사진가였고, 35미리, 중형, 4×6인치, 20×24인치 폴라로이드 등 다양한 포맷을 썼다. 흑백 필름으로는 주로 코닥 Tri-X를 애용했다. 


http://www.maryellenm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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