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디터
글렌도 끝까진 못가는구나
워킹 데드

총상을 입고 쓰러졌던 보안관 릭은 병상에서 의식을 되찾습니다. 살아난 것입니다. 그러나 극적인 생존을 반길 새가 없습니다. 릭의 시선에는 불온한 풍경이 들어옵니다. 이상합니다. 사람들로 붐벼야 할 병원은 텅 비었고, 마치 폐허가 된 전쟁터를 방불케 하듯 사투의 흔적들이 가득합니다. 심박 수가 빨라지며 긴장감이 고조됩니다. 릭은 병원 밖으로 빠져나갑니다. 하지만 바깥 풍경은 더욱 충격적입니다. 세상은 마치 종말을 고한 듯합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걸까요? 아마도 몇 달은 지난 듯합니다. 그간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릭은 서둘러 집으로 향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그곳에서 생존자와 마주치고 그간 벌어진 충격적인 사건들의 전말을 전해 듣습니다. 세상은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잠식되었고 죽은 자들은 잠시 후 깨어나 기억과 이성을 잃은 채 살아있는 생명체를 물어뜯는 ‘워커’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물어뜯긴 사람은 또다시 감염되어 ‘워커’가 되고 맙니다.
릭은 가족이 어딘가에 살아있을 것이라고 믿고 아내와 아들을 찾아 길을 떠납니다. 그리고 위기 속에 글렌 일행을 만나 도움을 받게 되고 그들이 속한 생존자 집단에 합류하죠. 몰랐지만 릭의 가족은 바로 그곳에 있습니다. 절친한 친구이자 동료였던 셰인의 보호를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가족은 극적으로 상봉합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이제 겨우 시작일 뿐입니다.
세상이 종말로 치닫자 셰인은 릭의 가족을 챙겨 겨우 생존하고, 나름의 생존자 집단을 꾸립니다. 그는 그곳의 리더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총상을 입은 릭을 포기하고 병원에 방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릭의 아내에겐 그가 이미 숨을 거두었다고 단언했죠. 죽은 친구의 가족을 몸과 마음을 보살피다가 그의 가족까지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는데, 릭이 살아 돌아온 것입니다. 혹 당시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해도… 바이러스는 세상의 균열을 만들고, 인간은 그 균열을 돌이킬 수 없이 벌여 놓습니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어느 날, 좀비 드라마를 꺼내봅니다. 가만히 누워있는데, 스스로 좀 좀비 같다는 기분이 듭니다. 평소 직설적인 공포보다는 스릴의 외다리를 즐겨 타는 편입니다. 다른 공포물은 몰라도 좀비는 좀 질퍽질퍽하지만, 유독 그럴 때가 있습니다. 또 다른 맛, 평소와는 다른 육질이 끌립니다.
그렇게 좀비를 위한 마음의 공간이 열고, <부산행>이나 <아이엠 어 히어로>도 좋지만, 그간 참아왔던 <워킹데드>를 몰아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첫 시즌부터 차근히 시작합니다. 미국 드라마가 그렇습니다. 2010년부터 시작해 지금껏 이어지는데, 이걸 언제 다 볼까 싶더니 또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습니다. 원작 만화가 있고, 호불호가 갈릴 장르임에도 대단한 인기를 끌어왔습니다. 바꿔 말하면, 절대 실패할 리 없는 선택, 걸작 미드인 것입니다.
그리고 좀비도 자꾸 보니 정이 든다고 할까요? 결코 익숙해질 순 없지만, 보면 볼수록 놀라는 횟수가 줄어듭니다. 겁도 눈물도 많은 편인데 볼 만합니다. 그냥 분장일 뿐이니까요…

게다가 가만 보면 은근 마음에 드는 구석이 있습니다. 그들은 세상 누구보다도 꾸준합니다. 좀비의 속성, 그들의 숙명을 공감합니다. 죽어도 잘 죽지 못하고, 끈질기게 다가와 물어뜯듯 그들만의 강단을 보여줍니다. 어릴 적 은사님께서 말씀하셨죠. “죽어도 포기하지 말고 성실히 한 우물을 파 거라.” 세상은 과연 그런 곳이란 걸 배워가기에 절로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들의 노고란 정말이지… Walking이 Working이 됩니다.
그런데 보고 있으려니 뭐랄까요… 좀비보단 산 사람들이 더 무섭습니다. 드라마는 처음엔 좀비와 싸우는 인간의 처절한 생존기를 그리다가, 점차 인간과 인간 간의 적자생존의 이야기로 전개되어 갑니다. 한순간 세상의 종말, 좀비 아포칼립스로 치닫고 거기서 생존한 인간들은 또다시 서로에게 총과 칼을 겨누게 되는 것이죠.
어떤 의미에선 세상의 파괴 시점에서 출발해 (적자) 생존 다시 공존을 모색하는 이야기라고도 볼 수 있을 듯합니다. 파괴와 재생이라니 심오합니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심오한 의도까진 없었을지 모릅니다. 장수하여 득도하듯 갈수록 다양한 소재를 담는 사이 살포시 그런 의미성도 곁들여지는 것일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그런 확대 해석 없이 그 자체로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재미 외에 종말, 좀비, 생존한 인간들을 통해 적나라한 인간 세상을 묘사한 건 처음 방영된 이후 오랜 세월이 흘러서도 이 드라마가 '언 데드'한 이유가 되어줄 것입니다.
한 가지 보면서 씁쓸하고 아쉬운 게 있다면, 죽지 않길 바랐지만 죽어야만 했던 인물들입니다. 저도 몰래 읊조리곤 합니다. ‘에휴, 결국 가는구나… 게다가 그런 인물들은 하필 좋은 사람들이죠. 단지 드라마일 뿐이고, 죽은 시체들이 걸어 다니니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기 마련인데, 정든 인물들이 하나씩 죽어 가면 영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살리면 살린다고 뻔하다 할 거면서…
그러다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 세상을 산 자와 좀비로 나눈다면 나는 어느 쪽일까…’ 생각건대 이미 좀비일 듯합니다. 얼리어답터라 그런 건 빨리 서두르고 말죠. 최근엔 그 성실한 좀비의 대열에서 잠시 이탈했지만, <웜 바디>처럼 진정한 로맨스에 심장의 불씨를 지피지 않는 한… 한번 좀비는 영원한 좀비일 듯합니다. 아무튼 그런 닭살 돋는 좀비의 입장에서 <워킹 데드>를 보니, 점차 좀비만도 못한 산 자의 이야기가 더 눈에 들어옵니다. 저 역시 급한 마음에 민낯을 드러내고, 신뢰와 믿음도 저버리곤 했습니다. 마음속 깊이 숨겨온 그런 부끄러운 기억들이 하나씩 떠오릅니다. 돌이킬 순 없지만 앞으로도 부끄러워할 것이죠. 아! 좀비물을 보고 자성하는 건 처음입니다. 마침 방망이를 휘두르는 니건을 향해 말합니다.
“네가 좀비보다 나은 게 뭐야?”
좀비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이야기니 나름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 계속 좀비처럼 이 드라마를 아끼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