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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너의 췌장이 먹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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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노 요루 원작, 츠키카와 쇼 감독  <너의 췌장이 먹고 싶어>


숫기 없는 외톨이 남학생이 시한부 여학생과 만나 한때의 아름다운 시절을 보내는 이야기입니다. 처음부터 결말이 눈에 그려집니다. 저는 평소 이런 이야기를 대할 때 예고된 대형 참사하고 합니다. ‘거봐, 거봐, 그럴 줄 알았어.’하고 말이죠. 하지만 누가 그걸 모를까요? 때가 되면 따스한 봄날이 찾아오듯 오랜만에 마주한 청춘 로맨스물입니다.



「러브레터」,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같은 청춘 연애물이니 그럴 만합니다. 이 이야기의 경우 주인공은 병약한 소녀와 미숙한 소년입니다. 그 둘이 찬란한 한 때 인생의 교차점에서 잠시 마주치고 또 빗겨 지나갑니다. 전형적이지만, 잘 매만져 만들면 언제나 저를 사르르 녹여버리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사랑이란 모든 이야기 속에 내재된 영원한 소재고, 게다가 청춘의 낭만과 로맨스라면 저에게 불발탄이었던 적이 거의 없습니다.


연인들의 영화, 특히 여성의 섬세한 감수성에 기댄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뻔하다고 여길 수 있죠. 사실 요즘 저도 이런 영화를 보기엔 심약합니다. 절절한 감성이란 어쩐지 두렵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보고 너무 설레는 건 좀 주책이고, 어쩔 도리 없이 눈물을 짜내니 마음의 준비가 좀 필요했습니다. 아껴두었다가 기꺼이 감정을 맡길 준비가 되어서야 꺼내 보았습니다. 한 번에 보긴 힘들어 이틀에 나누어 보았습니다.



소설 원작입니다. 신인 작가 스미노 요루의 작품으로, 인터넷 투고로 입소문을 타다가 정식 출간되었고 그것이 또 성공을 거두어 영화화되었습니다. 다들 끝을 짐작할 만한 이야기를, 고도의 집중력을 유지한 채 진지하게 끝까지 집중하여 보고 읽게 만드는 작가의 재능에 감탄합니다. 그건 매우 어려운 일이고, 그 재능을 제대로 엿보려면 아마도 원작 소설까지 읽어봐야겠으나, 일단 영화만으로도 충분히 수긍이 갑니다.


훌륭하기보다는 만족스러운 영화였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익히 많이 다뤄진 이야기이므로 관객이 이미 기대하는 바가 있고, 공식에 충실해 그 요소들을 옹기종기 잘 엮어 나가며 기대치를 충족시켜야 하지만, 또 그만큼 새로운 것이 없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 학교 도서관이 중심 무대로 나오듯 말이죠. 도서관과 책, 편지 등이 오가면 안심이 되지만, 또 한편으로 예전의 어떤 영화를 연상하게 만듭니다. (그나저나 남학생의 격자무늬 바지는 좀 미스 아닐까요…) 그렇다고 무언가 다르게, 특별하게 만들어 보려다가 살짝 궤도를 빗겨나가기도 합니다. 이 이야기도 약간의 방향 틀기를 시도하는데, 몇몇 부분은 다소 매끄럽지 않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다소나마 그럴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 이해는 갑니다.


반면 작가의 집요한 ‘울리기 작전’은 결국 성공을 거둡니다. 핵심은 ‘공병노트’를 읽으며 펑펑 울기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공병노트’만으로 약하니 또 다른 요소를 겹겹으로 충실히 준비해두었습니다. 마치 길목에 몇 단계 ‘눈물 부비 트랩’을 설치해놓고 ‘어디 울지 않고 견디나 보자’며 우리가 지나가길 기다립니다. 그리고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듯합니다.



한편 역시 이 이야기는 ‘췌장을 먹고 싶다’는 제목이 대번에 눈길을 끄는데, 내용을 들여다보기도 전에 제목 참 마음에 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쩌면 작가는 청춘 로맨스의 답습을 의식해 한눈에 사로잡을 제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또한 인상적인 제목, 첫 문장 등등은 한 번에 이야기 안으로 몰입시킬 ‘충격 요법’이기도 합니다. 서가에 넘쳐나는 서적들 가운데 최소 누군가 한 번 표지를 넘겨 내용을 들여다보게 하기 위해선 작명 센스가 중요합니다. 아무리 좋은 내용도 주목을 받지 못하면 쉽게 잊히곤 합니다. 그런데 제목을 접하는 순간부터 왜, 어떻게 그런 제목이 가능한지 궁금하게 만드니 대성공입니다. 또한 그 작명 센스가 억지라면 소용없는데, 초반부터 충분히 오해(?)를 풀고 수긍하게 만듭니다. 괴기하고 엉뚱하게 보이지만, 들어본 중 아마 가장 아름답고 (또 귀여운) 식인 제목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예견된 대로 소녀는 (어쨌든) 죽음에 이르고 소년은 성장합니다. 어른이 된 소년은 옛 일을 추억하며 또다시 성장하죠. 성장통 가득한 슬프고 안타까운 사연이지만, 인물들이 풋풋하고 명랑해 우울하지 않습니다. 끝으로 갈수록 슬프도록 아름다울 수밖에 없었던 전례를 넘어 이 이야기는 꽤나 희망적이기까지 합니다. 한 생명의 소멸이 다른 생명의 힘이 된다는 것, 어쩌면 픽션에서나 가능한 희망 사항일지 모릅니다. 사실 죽음과 그 여진 속에 희망 섞인 결말이란 실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니까요. 다만 지금은, 모두가 끝없는 절망보다는 희망가를 부르고 싶어 하는 건 아닐까요? 아무리 애절한 이야기라도… 그런 점에서 전 이 이야기의 결말에 공감합니다.


애니메이션도 나온다죠? 그 어렵다는 경쟁 관문을 뚫고 살아남는 청춘 로맨스 물입니다. 아직 시멘트처럼 굳지 않았을 스스로의 마음을 확인하기에 더없이 좋을 영화고, 이미 클래식이 된 앞선 작품들에 미칠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췌장’ 하면 절대 잊을 수 없는 이야기로 남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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