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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너의 사진을 남기고 싶어

<연애사진>,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



삼류 사진가로 살아가는 마코토(마츠다 류헤이). 시원찮은 일거리까지 잃고 절망에 빠진 그에게 한 통의 편지가 전달됩니다. 뉴욕으로부터 온 봉투 속엔 편지와 함께 몇 장의 사진이 동봉되어 있습니다. 시즈루(히로스에 료코)의 초대장입니다. 그녀의 사진은 이제 미치도록 훌륭합니다. 예전보다 더욱…

마코토는 과거를 회상합니다. 사진가를 꿈꾸던 대학 신입생 시절의 마코토, 어느 날 그의 뷰파인더 속에 시즈루가 들어옵니다. 시즈루는 어여쁜 외모에 신비감을 자아내는 엉뚱한 매력까지 품은 캠퍼스의 인기녀입니다. 그런 그녀가 마코토에게 다가오고 둘은 사진을 매개로 가까워집니다. 서로를 응원하던 둘은 곧 연인 사이로 발전하죠. 하지만 운명은 가혹합니다. 혹은 사람의 인연이란 그런 것일지 모릅니다. 신은 사랑을 주는 대신 시련을 안깁니다. 마코토에게서 사진을 배운 시즈루는 일취월장해 마코토의 재능을 능가합니다. 그녀는 자신만의 독특한 시선을 가졌고, 대상에 한걸음 더 다가갈 줄 알았습니다. 함께 준비한 공모전에서 마코토는 낙선하지만 시즈루는 입상하죠. 이제 졸업을 앞둔 마코토는 막막합니다. 연인을 사랑하고 응원하지만 질투하고 시기할 수밖에 없는 자신에게 자괴감을 느낍니다. 모차르트를 보는 살리에리처럼 마코토의 노력은 천부적인 재능의 벽과 마주합니다.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프로 사진가가 되면 다시 만나자.” 둘은 그렇게 헤어집니다.

그렇게 3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마코토는 여전히 빛을 보지 못했죠. 사진가가 되어 당당해지려고 했지만 뜻대로 풀리는 일이 없습니다. 뉴욕으로 떠난 그녀는 이제 전시회 소식을 알립니다. 시즈루의 사진은 911 전후의 뉴욕을 배경으로 순간의 원더(Wonder)를 포착해내고 있습니다. 시즈루는… 이젠 더 이상 자신이 다가갈 수 없는 존재처럼 느껴집니다. 순간 울분에 시즈루의 초대장을 구겨버린 그는 크게 낙담합니다. 그녀가 보낸 사진들도 모두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말죠.


그런 우울의 동굴 속을 지나던 중 마코토는 동창회에서 우연히 시즈루에 관한 소문을 접하게 됩니다. “뉴욕에서 동양인 여자의 시체가 발견됐는데, 시즈루라는 소문이 있어…” 그럴 리 없습니다. 곧 전시회를 연다는 초대장을 보냈던 그녀입니다. ‘그럴 리 없어. 시즈루는 괜찮을 거야.’ 마코토는 이제 사진이 아닌 사랑을 간절히 떠올립니다. 그렇습니다. 그건 꿈과 좌절 이전에, 자격지심 이전에 사랑이었습니다. 그는 시즈루를 찾기 위해 서둘러 뉴욕으로 향합니다. 그녀를 찾을 수 있는 단서는 오직 그녀가 보낸 사진뿐이죠. 그 또한 스스로 분노한 나머지 모두 버려 버렸고 남은 오로지 한 장의 사진뿐입니다. 하지만 그 한 장의 사진이 여정의 나침반이 되어주죠.

낯선 뉴욕에서 시즈루의 소재를 찾는 사이 마코토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카시우스, 아야, 콘보이 등 기묘한 인물들과도 대면합니다. 그런 과정을 겪으며 마코토는 점차 시즈루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고 사진가로서 눈을 뜹니다. 그것은 한걸음 더 다가가 남들과 다른 자신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배우는 것과도 같습니다.


영화는 후반부로 갈수록 달달하고 아련한 분위기의 전반부와 달리 그로테스크해집니다. 캐릭터는 독특하고 이야기는 지금 보면 다소 과하다고 느낄 만큼 엉뚱한 구석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맛이 특이하지만 끊임없이 구미에 당기는 향료와 같습니다. 이것이 바로 2003년 작 <연애사진>의 줄거리입니다.

좀 엉성한 영화인데 이상하게 너무 마음에 든다고 느꼈습니다. 그 이야기엔 풋풋한 로맨스가 있고, 공감할 만한 아픔이 있으며, 다시 잃어버린 사랑을 찾아가는 여정이 있습니다. 그 모든 걸 이어주는 매개체로 사진(예술)이 멋진 역할을 해주고 동서양의 넘나드는 배경 속에 예술가로서 한 인간의 성장에 대한 이야기도 다룹니다. 영화는 성기고 엉뚱한 매무새에 다소 서툰 솜씨를 가졌지만 매우 날이 선 감각적인 사람을 만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합니다. 마치 날것처럼.


이 영화를 처음으로 보았을 때 전 뉴욕에 있었습니다. 한국을 기점으로 매번 서쪽으로 여행하던 제가 생애 처음 미국으로 향한 건 뉴욕 때문이었습니다. 은연중에 가던 방향을 틀고 싶다는 심리도 있었죠. 가벼운 배낭 하나를 메고 손에는 카메라 한대를 든 채 두 발로 걸어서 이곳저곳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사진에 조예가 깊진 않지만 마침 글을 위해 항상 기록해야 한다고 믿던 터였습니다. 그러던 중 지인을 만났는데, 우연찮게 이 영화를 추천해 그날 밤 그의 집에서 본 것입니다. 아마도 카메라 한 대를 들고 뉴욕을 여행하는 제 모습에 그렇게 뉴욕을 여행한다면 꼭 봐야 할 영화라고 생각했을 듯싶습니다. 감사하게도 그건 아주 시의적절한 아이디어였습니다.

내친김에 이어 <연애사진>를 개작한 2006년 작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까지 보았습니다. 두 영화는 같은 원작, 같은 인물(명), 유사한 설정에서 출발 하지만 이야기는 다릅니다.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이 <연애사진>에 비해 더욱 잘 정리된 영화입니다. 다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쪽은 <연애사진>인데, 사진은 두 영화 공히 중요한 매개체지만, 사진(예술)에 대한 열망이 사랑 이야기와 잘 어우러진 <연애사진>에 비해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는 사진보다 사랑에 무게를 두었습니다. <연애사진>이 준 어떤 신선한 충격을 못 잊어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를 본다면 아쉬운 면이 있습니다. 물 흐르듯 정갈한 드라마에 화면은 더 아름다우며 매개체이자 감동의 한 방인 사진이란 요소도 잘 활용되지만, 어찌 보면 신파극으로 흔한 면이 없지 않습니다. <연애사진>만의 원더(Wonder)를 놓친 것 아닐까 생각했었습니다. 그만큼 <연애사진>의 거친 질감과 기묘하게 끌린 면도 있습니다.


여행 중 보았던 <연애사진>은 어떤 마법과 같은 영향을 발휘했습니다. 마침 찬란한 가을을 맞이한 뉴욕,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골목골목을 배회하며 가는 곳마다 셔터를 눌렀습니다. 아마 평생 찍어온 사진수보다 더 많은 사진을 찍었던 듯한데, 걷는 내내 삼류 사진가 마코토 또한 시즈루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나만의 시선’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상기했습니다. 사진가는 아니지만 어떤 그러한 열정이 좋았습니다. 한때는 사진보다 눈으로 기억한다며 한 장의 사진조차 남기지 않은 때가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사진 한 장 남기지 않은 게 아쉽습니다. 저의 마코토와 저의 시즈루가 함께 했던 순간 말입니다.

물론 이 또한 개인의 감상에 불과합니다. 누군가에겐 또 다를 수 있습니다. 저 역시 항상 <연애 사진>만 되풀이해 꺼내보다가 시간이 흘러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를 다시 보는데, 그 나름의 감동을 진하게 느낍니다. 영화를 본 지난밤, 잠시 마코토가 되어 시즈루를 떠올렸습니다. 사랑과 사진이 모두 있지만 이번엔 사진보단 사랑입니다. 어쩌면 사람의 인연처럼 영화를 만난 장소가 달랐던 것은 아닐까 생각도 해봅니다. 그때는 뉴욕, 지금은 한국이니까요. 아무쪼록 제 경우 사진이라면 <연애사진>, 애틋한 사랑이라면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를 택할까 합니다.

사진과 사랑이지만, 사진이냐, 사랑이냐의 선택은 각자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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