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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터

다시 사랑하기 위해 멀어지다

마이크 니컬스, <클로저>




“And so it is (그게 그렇지)…” 

런던의 혼잡한 출근길, 서로 엇갈린 방향으로 길을 걷던 두 남녀가 ‘운명의 교차로’에서 마주칩니다. (이미 이 시절부터 ‘M’므한 기색은 보여도) 잘 생기고 섬세해 보이는 영국 남성과 한눈에 띄는 빨간 머리를 한 여성입니다. 마주 오는 방향에서 점차 가까워지며 둘은 마치 아는 사이인 듯 얼굴에 미소를 머금지만 서로 간엔 일면식도 없습니다. 어쩌면 다가올 운명의 암시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 순간입니다. 낯선 건널목이 익숙지 않던 여성은 길을 건너다가 경미한 사고를 당합니다. 그녀가 쓰러지자 놀란 남자는 그녀 곁으로 다가갑니다. 아주 잠깐 동안 기절했던 여성은 정신을 차리고, 가장 처음 눈에 들어온 그를 향해 올려다보며 말합니다. “Hello, Stranger (안녕, 낯선 사람).” 댄(주드 로)과 알리스(나탈리 포트만)는 그렇게 만납니다.  

댄은 빨간 머리 알리스에게 끌립니다. 출근을 잊은 채 병원까지 동행한 둘은 대화를 나누며 서로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됩니다. 부고문 기자인 댄은 작가를 꿈꾸고, 뉴욕에서 자칭 ‘탐험’을 온 알리스는 스트립 댄서입니다. 바다에서 소변을 본다며 생선을 먹지 않는다는 여인이죠. 댄은 묻습니다. “짐은 없어요? 어디서 지내죠?” 하지만 원래 운명엔 짐이 없는 듯합니다. 다시 출근길에 나선 댄을 따라 둘은 시내의 한 공동묘지를 이릅니다. 타인을 위해 희생한 사람들의 무덤이죠. 거기서 다시 이층 버스를 타고 댄의 직장까지 향하며 서로에게 끌립니다. 댄에겐 여자 친구가 있고, 알리스는 실연을 뒤로한 채 떠나왔지만, 운명의 스파크 속에 그건 부수적인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댄이 묻습니다. “이름이 뭐죠?” “알리스요.” 댄과 알리스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됩니다.  



하지만 얼마 뒤, 댄은 또 다른 운명을 만납니다. 그는 이제 웨이트리스가 되어 런던에 정착한 알리스와 동거하며 그녀를 뮤즈 삼아 그녀의 이야기를 소설을 출간할 참이죠. 하지만 댄은 정작 새로운 뮤즈를 발견한 듯합니다. 표지 사진을 찍기 위해 만난 안나(줄리아 로버츠)에게 끌린 것이죠. 안나는 젊은 여성과 바람난 남편과 별거 중인 미국인 여성입니다. 수족관을 좋아하는 그녀는 낯선 사람들의 인물 사진을 찍는 사진가입니다. 운명의 이끌림에 낙엽처럼 가벼운 댄, 새로운 뮤즈에게 끌린 그는 이제 안나에게 내려앉으려 합니다. 알리스와 공통점이 있는 듯 다른 안나는 알리스보다 좀 더 성숙한 여인입니다. 둘은 순간을 교감하며 첫 만남에 한 번의 강렬한 키스를 나누죠. 하지만 댄을 찾아온 알리스가 안나와 마주치고, 댄과 안나의 대화를 엿듣은 알리스는 댄의 변심을 직감합니다. 안나와 단둘이 남은 알리스는 그 사실을 확인하며 눈물을 흘립니다. 안나는 그런 알리스의 모습을 순간의 사진으로 포착하죠. 댄은 알리스의 마음에 상처를 줄 뿐 둘 사이에 끼어 들 마음이 없는 안나의 마음을 얻진 못합니다.




댄은 안나를 골탕 먹일 생각으로 안나의 이름을 사칭해 음란 채팅방에 들어갑니다. 그곳에서 알게 된 남성과 애나가 마주치게 만듭니다. 안나가 수족관을 자주 찾는다는 걸 알고 그녀의 생일날 저열한 장난을 친 것이죠. 남자는 안나 앞에 의사 가운을 걸친 채 나타나 말을 겁니다. 래리라는 이름의 그 남자(클라이브 오언)는 의사입니다. 변태적이고 성적 욕망이 강한 그는 집착과 소유욕 또한 강합니다. 짓궂은 장난을 깨닫고 스쳐 지나갈 순간 래리는 안나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갑니다. 이 또한 운명의 장난인 듯 래리와 안나는 연인이 되어 결혼합니다. 댄은 의도치 않게 사랑의 큐피드가 된 셈이죠.   


얼마의 시간이 흘러 댄과 안나는 재회 합니다. <Strangers>라는 안나의 전시회를 참관하게 된 것이죠. 그 사이 댄의 소설은 실패했고, 알리스와 함께 안나의 사진전을 찾은 댄은 다시금 안나에게 접근합니다. 댄과 안나, 래리와 알리스는 그렇게 한 지점에서 교차합니다. 이번엔 넷, 다시 한번 ‘운명의 교차로’에서 마주칩니다. 막상 알리스를 떠나보내지 않으면서도 댄의 마음은 이미 다른 곳에 걸친 상태죠. 알리스에 비해 자신의 삶을 성취해 나가는 안나에게서 성숙한 여인의 매력을 느낍니다. 그건 어쩌면 보잘것없는 자기 자신에 대한 보상 심리일지도 모릅니다. 집요한 댄의 접근에 안나는 또다시 흔들립니다. 거친 래리에 비해 셈세한 댄은 그녀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그렇게 댄과 알리스, 래리와 안나의 사랑과 운명은 뒤엉키며 절정과 파국으로 치닫습니다. 이것이 패트릭 마버가 쓴 동명의 희곡을 각색한 영화 <클로저>의 이야기입니다.  





사랑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지만, 줄곧 영화에 내재된 낯선 사람이란 모티브처럼 사랑한 사람, 잘 안다고 여긴 사람도 알고 보니 전혀 모르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이 혼잡한 사랑을 마치고 돌아가던 알리스의 본명이 실은 알리스가 아니라는 것에서 드러납니다.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곰곰이 돌이켜보면, 저도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이별하고, 시간이 흘러 뒤돌아 볼 때, 생각했던 만큼 그 사람에 대해 아는 게 없다는 느낌입니다.  


댄, 래리, 안나 그리고 알리스 아니, 제인… 이 이야기는 우리가 흔히 운명이라고 일컫는 사랑에 따끔한 일침을 놓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처음 이 영화를 보는데 많이 힘들었습니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적나라한 치정극처럼 보였습니다. 그런 느낌은 때론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하는 듯합니다. 제가 준비가 안 되었던 걸까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이 영화에 깊이 공감하는 분들이 많은 한편 저에겐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무슨 이런 사랑이 다 있을까 싶은 생각이 지나가자, 그다음엔 문득 부끄러워졌습니다. 첫 장면부터 몰입해 순식간에 영화 속으로 끌려 들어가지만, 좀처럼 불안했던 기억입니다. 어쩐지 아픈 부분을 찔린 것 같았습니다.  


물론 영화와 같은 사랑을 겪는 일은 드뭅니다. 현실에선 이처럼 운명의 실타래가 연이어지는 경우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현실의 사랑은 좀 더 서툴고 끝임 없이 망설입니다. 우연이 연거푸 거듭되지도 않을 듯합니다. 다만 영화의 어떤 부분은 마치 현실처럼 절절하게 와 닿았습니다. 제 경우, 이 영화를 볼 때 문득 땅콩을 생각했습니다. 회항에 얽힌 땅콩 이야기가 아니라, 한 사람이 제게 땅콩을 건네준 것으로 인연이 시작된 적이 있었기 때문이죠. 또 한 가지, 잘 안다고 생각한 사람이 끝내 알 수 없었던 일도 그렇습니다. 꽤나 서툴렀습니다. 부끄러운 것엔 고개 돌리고, 감정에 솔직하지 못하며 상대보다 자신에게 도취되었던 기억입니다. 어쨌든 영화 속 이야기에서 누군가 자신을 떠올린다는 건 영화의 공감대가 넓다는 것을 의미할 듯싶습니다.  


현대의 과학에선 그런 사랑조차도 특정한 뇌의 신호라고 합니다. 하지만 본능적이라고 할 만큼 그 신호는 즉각적인 듯합니다. 그래서 마비된다는 표현을 쓸 듯싶습니다. 실상 그것조차 뇌의 신호더라도 그 신호를 해석하고 제어할 수 없으니, 그러므로 사랑인 듯합니다. 영화의 이야기는 그러한 본능을 자극하며 되새기게 만듭니다. 좀 더 본능을 본능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것에 눈과 마음을 맡긴 채 영화 속을 방황해도 무방할 듯합니다. 어차피 사랑에 대해 논할 만큼 사랑해본 사람은 드물 것입니다. 서투른 저도 그저 사랑의 실패를 성공할 뿐입니다. 또한 영화는 압축된 표현입니다.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는 이상 <클로저>는 치정극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압축된 사랑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자 이 영화를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대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문득 <클로저>를 다시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의 백미는 역시 인물입니다. 연극 원작이듯 사인사색의 인물은 마치 연극 무대 위에 오른 듯합니다. 댄은 가볍고, 래리는 포악합니다. 애나는 수동적이며 알리스는 말 그대로 미궁 속 인물입니다. 처음엔 알리스를 이해해간다고 생각했지만 종국엔 그녀에 대해 모르게 되고 맙니다. 댄과 래리는 뻔뻔하고 일면 비겁한 남성들입니다. 하지만 어찌 보면 애나와 알리스도 그런 그들에게 끌리며 휘둘립니다. 누군가는 이들을 비난하며 돌을 던지겠지만, 동시에 그들 모두 감정에 솔직한 것만큼은 사실입니다. 결국 잘 모르는 낯선 사람들일 뿐이지만, 우리는 사랑하고 운명을 믿으며 본능에 따릅니다.  


한편, 처음엔 ‘달라진 마틸다’에 적응하지 못했던 것도 고백해야 할 듯합니다. 부지불식간에 알리스가 아닌 마틸다였던 시절의 나탈리 포트만을 떠올리며 영화를 보았습니다. 아직 <레옹>의 이면을 알지 못했고, 시간의 간극을 헤아릴 줄도 몰랐기에 여전히 제게 익숙한 모습의 배우로서 그녀를 바라본 것일지 모르겠습니다. 안다고 생각했지만 몰랐습니다. 적어도 <클로저>의 알리스 아니 제인은 제게 너무 갑작스레 성숙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실상 연기에 대한 찬사나 다름없습니다. 성장하는 배우의 폭은 깊고 넓어지고 있었고, 또한 그녀는 얼마 후 백조와 흑조를 오가는 <블랙 스완>에 이를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돌이켜보면 그 재능에 감탄할 따름입니다. 스마트한 배우고 좀 유쾌한 수다쟁이라고도 들었습니다. 




한편 <클로저>의 이야기는 영화 바깥으로 연장됩니다. 또 한 가지 이 영화에서 주목하게 되는 건 음악입니다. 데미안 라이스는 이 영화의 주제곡 <The Blower’s Daughter>를 ‘읊은’ 장본인입니다, 부르지 않고 읊었다고 얘기할 만한 곡입니다. 마음만큼은 음유 시인인 저도 이곡을 부르다가 “얜 쏘주 줘…”로 시작하는 부분부터 아유를 받곤 합니다. 데미안 라이스는 노래가 아닌 시를 쓴다고 칭송받는 아일랜드의 싱어송라이터입니다. 대표곡으로 손꼽히는 <The Blower’s Daughter>는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곡이기도 한데, 이 곡의 주인공이 실제 누구냐에 대한 추측으로 설왕설래하기도 했습니다. 영화와 음악에 얽힌 이야기가 절묘하게 포개어지는 것이죠. 


실제로 데미안 라이스에게도 사랑은 가까워지고 또 멀어집니다. 그는 마찬가지로 아일랜드 출신의 싱어송라이터인 리사 해니건과 2002년부터 음악적 동반자(혹은 그 이상의) 관계를 맺었습니다. 백 보컬로 참여한 그녀의 목소리는 데미안 라이스의 음악과 절묘한 궁합을 이루었던 것이죠. 노래를 완성하는 마지막 방점 같은 목소리라 둘의 조합은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점차 그녀의 비중이 늘어난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죠. 하지만 2006년 이후 둘의 관계가 급격히 냉각되며 돌연 결별을 수순을 밟았고, 리사 해니건은 이후 솔로 활동을 시작합니다. 공식적으로는 부인했지만 일찍이 연인 관계라는 설이 있었듯, 훗날 데미안 라이스도 결별의 주된 이유 가운데 하나로 둘 간의 애정사가 연관되었음을 인정합니다.  


두 사람이 다시 가까워질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합니다. 팬들은 아직도 뮤즈를 잃은 데미안 라이스가 리사 해니건과 재결합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현실을 몰라서 그러는 건 아닐 것입니다. 다만 그런 염원은 어쩐지 익숙한 것입니다. 저도 간혹 그런 희망을 품습니다. 그리고 데미안 라이스는 말합니다.  

“다시 사랑하기 위해 때로는 사랑하는 것에서 멀어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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