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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몰리션] 슬픔을 허물기 위한 춤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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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상 깊은 영화 속 장면은

많아서 막상 하나 꼽기가 어렵지만,

오늘은 문득 <데몰리션>의 한 장면이 생각납니다.

영화는 약 한 시간 반, 그러나 겨우 1~2분 남짓한 그 장면 하나로도 영화를 거듭 돌려볼 가치가 있습니다.


불의의 사고로 아내를 잃은 데이비스(제이크 질렌할),

그는 아내의 죽음에도 비정상적이라고 할 만큼 차분함을 유지하는데요.

분명 이상한 일입니다. 그는 아내를 무척 사랑했는데, 슬프지 않을 리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억누릅니다.

대신 점점 이상한 상상을 하며 돌발 행동을 벌이죠.

출근길 열차의 비상 레버를 당긴다거나, 총을 난사하는 장면을 상상하다가,

고장 난 자판기에 집착한 그는 자판기 회사에 계속해서 항의 메일을 보내기도 합니다.

이상을 감지한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상담을 권합니다.



그러니까 데이비드의 상처는 너무 깊은 것입니다.

우린 흔히 겉으로 눈물을 흘리지만,

인체의 60~80%가 수분이니까, 그것이 어디서 흐르고 있는지 두 눈으로 다 확인할 수 없습니다.

멀쩡해보지만, 멀쩡할 리 없습니다. 표현의 방식이 다를 뿐입니다.

그리고 데이비스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속 어디에선가 긴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너무 깊은 상처는 때로 겉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같은 사고에서 아내를 잃고 자신만 살아남은 데이비스는

사고의 순간을 떠올립니다. 행복했던 순간도 떠올립니다.

그때까지 미처 몰랐던 아내의 진실과도 직면하죠.

망연자실한 슬픔과 고통, 상실감과 죄책감, 분노가 뒤섞인 감정 속을 헤맵니다.

하지만 주변에선 슬픔을 겉으로 표현하지 않는 그를 두고 수군거립니다.



그러던 중 데이비드는 자판기 회사의 직원인 캐런(나오미 왓츠)으로부터 온 전화를 받습니다.

집요한 항의 메일 끝에 돌아온 연락인 것입니다. 사실 그런 집요함은 마치 데이비드 자신에 대한 '클레임' 같아 보이기도 했죠.

캐런은 자신이 고객 상담실 직원이라고 했지만, 사실 영세한 자판기 회사에 그런 자리를 따로 둘 리 없습니다.

그리고 비 전문적인 '고객 상담 직원' 캐런은 아내를 잃은 남자의 이야기를 들어주죠.

정신과 상담을 받으랬더니...

자판기 회사의 넘치는 고객 사랑입니다.



그리고 데이비스는 캐런 그리고 그녀의 아들과 어울리며 비로소 억제해왔던 슬픔과 대면하고, 고통을 허물어 갑니다(데몰리션).

그렇다고 이야기가 LP 판위의 바늘처럼 갑자기 유별난 방향으로 튀는 건 아닙니다.

때때로 어울리지 않는 록 음악이 흐르고 묘한 분위기도 느껴지지만, 이건 스릴러나 멜로가 아닙니다.

상처한 홀아비의 새로운 사랑이 아닌, 슬픔의 깊이에 관한 애깁니다. 이야기는 잔잔하고 차분하게 진행됩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힘이 느껴집니다.

월스트리트의 성공한 투자가였던 그는 이제 양복 대신 카고 바지에 멜빵을 매고 공사판에서 집을 부수는 일을 자청합니다.

어쩌면 다시 살아가기 위해 그에겐 충분히 허물 시간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최고의 장면은 그즈음 나옵니다.

헤드폰을 끼고 Free의 <Mr. Big>을 들으며 뉴욕의 출근길로 나선 데이비스, 제이크 질렌할은 여기서 신들린 연기를 펼치죠.


슬픔을 허물기 위한 드럼 비트가 이어지고,

미쳐서 발광하는 듯, 실은 진실한 감정의 리듬에 맞춰 폭발적인 춤사위가 폭발합니다.

마치 망자를 향한 이름 모를 어느 도시 부족의 추모 의식 같았습니다.



PS.

자연스러운 연기를 위해 뉴욕 한가운데에서 안면 몰수하고 진행된 촬영이라고 하더군요.

워낙 인상 깊은 장면이다 보니, 이때 데이비스의 의상에 눈이 가더군요.

카고 바지, 멜빵, 선글라스, 쓰고 있는 헤드폰을 검색해본 건 필시 저 혼자만이 아닌 듯합니다.

특히 오늘따라 유독 헤드폰에 눈이 갑니다.

하만카돈의 '소호'라고, 유선과 무선이 있더군요.



음질은 유선이고 영화에서도 유선인데, 이제 무선을 쓰다 보니 그 편리함을 포기할 수 없네요.

영화는 2015년 작품인데, 물욕이란 언제나 신작이군요.

뒤늦은 갈등입니다. 이러다가 자칫 강남역에서 헤드폰 쓰고 춤추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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