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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코 GR3] ㅎㄲ3, 원래는 몰랐던 느낌

#리코 #ricoh #GR3 #최고의 #콤팩트 #카메라


제 손에 들어왔습니다.



이 카메라, 항상 원하면서 주저하다가 직접 구매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항상 원한 이유는 분명합니다. 작고 가볍습니다.

주저하며 구매하길 망설인 이유 또한 명백합니다. 보기에 비해 무척 고가입니다.


연탄불에 빠트려 그을린 벽돌 같은 볼품없는 디자인. 그에 반해 사진 전시회를 해도 무방한 충분한 센서 판형에 괴물 같은 성능이라지만, 내장 뷰파인더가 없고, 겉보기엔 영락없는 똑딱이라 어쩐지 소비의 포만감을 만끽하지 못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듭니다. 속되게 말해, 사실 사진기 좀 사봤다는 사람이 이 가격에 쫄 이유는 없습니다. 다만 거기에 조금 더 보태면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것이죠. 카메라를 사서 이것저것 배우려는데 뷰파인더가 있었으면 하고, 버튼 하나하나 누르며 조작하는 손맛을 느끼고 싶으며 한 번 렌즈를 교체해가며 써보고 싶은 바람도 있습니다. 그렇게 카메라를 선택하고, 기변을 하며, 렌즈를 추가하다 보니, 전 GR과 소개팅해보기가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물론 대개의 경우 상대가 먼저 파투를 놓는 법이니, 이참에 카메라라도 사지 말고 튕겨보자 싶은 것일지 모릅니다. 매사 급하다가 간혹 뺑 돌아서 걷는 날이 있습니다. 게다가 이 카메라, 좀 은밀함을 넘어 음침한 구석도 있습니다. 아마 조금만 더 밝은 성격(?)이었다면 - 외장 뷰파인더라도 촬영 정보를 어느 정도 표시한다면 - 좀 더 급히 손에 넣어 써보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카메라의 디자인이 그만큼 중요하냐마는, 그건 아닙니다. 카메라는 취향대로 편하게 쓰며 사진이 제대로 잘 찍히는 것이 중요하죠.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보기 좋은 게 더 끌리고 써보고 싶은 기분도 들긴 하지만, 그게 즐거운 사진 생활을 위한 카메라 선택에 가장 중요한 이유가 될 순 없습니다. 어찌 보면 사진의 '도구'로써 좋은 카메라란, 겉모양보단 매일 편하게 가지고 다니며 자주 꺼내서 찍는 것이 핵심 조건일 것입니다. 화려한 기능과 성능에 멋진 카메라를 가지고 있어도 고이 모시고 다니며 무겁다고 느끼면, 아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GR은 완벽한 답입니다. 여행 좋아하고, 가볍게 다니길 원하면서, 사진도 좀 제대로 남기고 싶다면 가장 먼저 물망에 올릴 만합니다. 마치 제가 인도에 주로 가져간 군대 비상식량처럼 만약의 사태에도 이런 것 하나 있으면 든든하겠다 싶은 것이죠. 또한 저처럼 재미나 기록의 용도로 여기는 건 '즐거운' 사치이기도 합니다. 프로 사진가라면 진지한 작품도 충분히 만들어내니까 실력에 따라 천차만별의 결과물을 낼 아주 도전적인 도구이기도 합니다. 뷰파인더가 없이 뒷면 액정을 보고 전자 버튼 같은 셔터를 누르지만, 또 다른 사진의 손맛을 느낄 수 있는데, 그건 도구가 아닌 사진의 결과물 자체에서 오는 손맛일 것입니다. 외양보다 풍기는 개성에서 매력이 느껴질 때가 있다면, 리코 GR이 바로 그런 경우일 것입니다.



가만 뚫어져라 보면, 무미건조해 보이는 오랜 패밀리 룩 또한 납득하게 됩니다. 굳이 눈치 보며 카메라 로고 가리겠다고 테이핑 할 일도 없습니다. 결국 주력은 따로 두더라도, 하나 더 추가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전 주말 저녁에 술 한잔하다가 그렇게 됐었는데, 며칠 써보는 사이 충동구매의 죄책감이 사라졌습니다. 충동구매가 아닌 동물적 육감에 따른 필수 본능 구매... 장비병은 있어도 수집벽은 없고 뭐든 가급적 1인 1용도 1장비 주의를 잘 유지하려는데, 이렇게 어긋날 때가 종종 자주 있습니다. 뭐, 이 세계가 원래 그런 것 같습니다.


일단 첫 느낌은,

① 아주 작고 가볍다(전작보다 훨씬 작아져서 겨우 이거야? vs. 작아서 샀는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② 조작은 직관적이고 쉽다(가뜩이나 리코인데 거기에 더한 터치 조작은 날개).

③ 모든 성능이 전반적으로 개선되었다(낮은 셔터속도에 손떨림 방지, 특히 어둠 속에도 가지고 다닐 만해졌다).

GR2도 사진을 잘 못 찍는 제게 좀 어려웠을 뿐 훌륭한 카메라였지만, 확실히 더 잘 찍힌다. 이제 나도 찍을 만해졌다는 느낌을 확 받았습니다. 자연히 예전에는 미처 몰랐지만, 이제야 조금 이 카메라의 쓰임새와 사용법을 알 것 같습니다. 이건 반칙입니다.

전 되도록 작고 간단한 걸 선호하는데, 솔직히 요즘 카메라는 그런 걸 만족시켜준 경우가 드물긴 했습니다. 그런 제 로망이 실천되었다고 할까요? 개인적으로는, 어디든 한걸음 더 과감하게 다가가서 똘깍 찍고 빠지면 그만일 것 같습니다.



조금 불안하게 느낀 면도 없진 않았습니다.

① 모든 부위(버튼, 뚜껑)가 아주 견고해 보이진 않는다.

② 먼지 잘 들어가겠다.

③ 손떨방 기능 때문에 손에 들면 달랑거린다.

였습니다. 워낙 최근엔 방진 방적에 단단한 카메라들을 썼으니 상대적인 느낌일 수도 있겠습니다. 작은 만큼 손을 자주 타며 자칫 험하게 다루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엇보다 이걸 손에 쥔 사람들의 양심과 도덕심이 절실히 필요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손에 쥔 자유를 잃는 건 결국 자신의 업보니까요.


아무쪼록 이것저것 써보고 싶어 몸이 근질거리니, 오랜만에 물치항에 가서 회 한 점 먹고 왔습니다.



제게 물치항은 그쪽으로 여행을 떠나기에 앞서 하루 정도 머무는 조용한 베이스캠프 같은 곳인데, 그러면 안 될 시기니까 줄곧 차 안에 머물다가 한산한 곳에만 잠시 내렸네요.



근래엔 좁은 곳에서 하루 종일 글 쓰고 번역하는 일이 전부라 어딘가 도시로 나선 기억도 오래되었는데, 흔한 풍경은 싫증이 나고 마음 같아선 한 번 나온 김에 어딘가 계속 움직이고 싶어도 그럴 수 없습니다. 실컷 장작을 쌓았더니 불이 없더라는 것이죠.


그럼에도 일단 첫 사용은 매우 만족스러웠습니다. 익숙하게 잘 찍으려면 시간이 걸리니 사진 자체보다는 일단 사용하는 느낌이 '처음 만나는 자유'랄까? 몰랐던 느낌을 받습니다.

참고로 처음이니까, 모든 사진은 기본적으로 무보정 JPG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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