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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 좀비판 이니셜 D 인가?


#반도 #한국 #좀비 #영화 #넷플릭스 #이니셜D #좀비판




<반도> 재밌게 잘 봤습니다.

<부산행> 이후의 상황, 그 프리퀄이라는 <서울역>이 실사화되었다면 이런 분위기라는 느낌의 영화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 결국 좀비들은 철저한 단역이었습니다.

좀비 영화라고 하기엔 엄밀히 말해 좀비의 비중이 너무 적었죠. 이야기의 배경이었을 뿐입니다.

좀비의 등장 횟수를 말하는 건 아닙니다. 오늘도 우리 좀비들은 충실히 장면을 채우죠.

그런 부지런함이 제가 좀비들을 격하게 챙기는 이유죠. 열심히 산다고 매일 전쟁을 벌이는 인간의 러시아워나 뭐가 다릅니까.

다만 아무리 좀비라도 마구 달리는 건 아닙니다. 계속 달리는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이 영화는 그게 없네요.

이 영화가 <부산행>보다 아쉬운 점입니다.


어찌 보면 주로 한정된 공간인 기차를 배경으로 한 <부산행>보다 스케일이 크고 액션도 화려하죠.

<나는 전설이다>, <아이 앰 어 히어로>처럼 사연 있는 주인공 대 (사연 있는) 좀비들의 대결 구조로 그리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워킹데드>처럼 병풍 같은 좀비의 위협 속에 벌어진 생존 인간 사이의 갈등이라고 하기에도

집단이나 개인 간의 대립 관계는 다소 아쉽습니다.



한때 민간인들을 구조하던 군부대가 미쳐서 미치광이 집단이 된다는 것 자체는 그럴싸합니다.

극한의 상황에서 미친 군부대란 역시 많은 전설적 영화 작품 속에서 대대로 힘을 발휘해온 설정입니다.

다만 그 제대로 된 인과 과정이 없으니 좀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무능한 대위와 악랄한 상사, 그리고 맹목적으로 미친 부대원으로 그려진 부대를 보면

너무 자국 군인을 우습게 본다는 생각도 듭니다.

참고로 전 전경 출신입니다. 그리고 전 애국 영화나 국뽕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습니다.

물론 군이라는 조직이 과거부터 아쉬운 행동을 했다는 점 이해합니다.

하지만 다르게 보면 그 군대에 소속된 건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나 가족이었다는 점,

어쨌든 사회에서 필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집단이죠.


그런데 우리 군인들은 미쳐서 도움이 안 될뿐더러 오히려 악행을 서슴없이 저지르며

착한 사람들은 난데없이 유엔의 도움을 받는다는 식의 이야기 전개는 분명 이 영화의 가장 큰 자책골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위기 상황을 맞으면 우리 군대는 그럴 것이라고 망신 주는 의도 따위 절대 없겠지만,

그 구체적 인과 관계를 그리지 않으니, 빠져나갈 곳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건 주인공 정석(강동원)도 알고 보면 후회를 안고 살아온 군인 출신이라는 것만으로는 희석이 불가능하죠.

이미 균형이 기울었습니다.

어쩐지 영화를 보며 우린 왜 스스로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가란 묘한 기분까지 들었습니다.

물론 할리우드, 발리우드, 중국 영화처럼 자기들끼리 똘똘 뭉치는 영화, 진부합니다.

그러나 진부함도 그간 반복한 이유가 있어 진부해졌다는 점은, 또 상기할 필요가 있는 듯합니다.



문득 그런 질문이 바람결에 스치듯 지나갑니다.

"이등병, 한반도 문제 있어?"

문제가 많죠. 문제 많습니다. 그러므로 냉소적 시선과 비판적 시각이 아주 많이 필요한 듯합니다. 모든 창의적 예술은 보수적일 수 없죠.

다만, 좀 더 그에 상당하는 서사와 인물의 상징성, 이야기의 인과 관계가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명색이 군인이었는데, 왜 악인이 되었는가가 아니라, 그냥 악인들일 뿐입니다.

갇혀서 미쳐버렸다고 하는데, 사실은 군인은 일반인보다 악조건에서 버틸 수 있으니 군인입니다.

하지만 이런 걸 비틀어버리는 데에서 좋은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결국 미친 조직이 되는 이유를 만들어줬다면 충분히 훌륭했을 것 같습니다.

<워킹데드>가 그랬고. 좀비 시대의 이야기에서 제일 무서운 건 결국 인간이란 점도 좋습니다.

다만 <워킹데드>의 네간 경우 마치 타노스처럼 악인의 변(), 나름의 논리가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전작인 <부산행>에서는 하나하나 그럴 것 없이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잘 그려졌습니다.

아마도 그땐 '반도'가 아닌 부산행 '기차'라는 한정적 공간이 주는 이야기의 장악력이 달랐을 수 있겠단 생각도 듭니다.



아쉬움이 있다보니 아무래도 이야기의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보게 되는데,

차라리 그 주인공이 논쟁의 중심이 되는 부대의 부대원으로 그려졌다면 어땠을까,

가령, 민정(이정현)과 이래(준이) 등의 생존기를 중심으로 정석의 갈등이 존재하는 이야기라면 자연스러운 흐름을 이어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후 홍콩으로 바통을 넘겨줬어도 충분하죠(의도가 있겠지만 굳이 홍콩?으로 연결할 필요 없었을 것 같기도 하고요).


자연스럽지 못할수록 필연성이 떨어지고 사건은 우연에 우연을 거듭합니다.

과거 지나치는 아주 짧은 인연이 있던 주인공들이 다시 만나자마자 지난 오랜 기억을 다 떠올리고 위험한 모험을 위해 의기투합하게 되는 거죠.

그렇게 잘 모르는 사람에게 총을 쥐여주려면, 그래도 한 이삼일은 지켜봐야 하지 않을까요?

아, 이건 제가 잘못 생각했네요. 강동원 씨라면 가능하죠! <인랑> 생각이 나네요.

독야청청, 좀비 시대에도 여전히 멋집니다. 수염이 막 자랄 텐데...



한편, 이 영화는 <부산행>의 연장 선상에 있으므로 좀비에 대해 새로 배워야 할 시기(?)는 지났지만,

영화나 드라마마다 각기 꽤 다양한 좀비 세계관이 그려지는 만큼, 나름의 독특한 세계를 그렸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저 낮에 달려들고, 불을 지르면 달려들고, 소리가 나면 달려드는데...

이제 이 이야기에서 좀비란 요소를 뺐을 때 무엇이 남을까 생각해보면, 좀비를 빼도 별다를 게 없어 보입니다.

그렇다면, 그건 곧 굳이 좀비 영화일 필요가 없다는 얘기일지 모릅니다.

<부산행>, <킹덤> 등으로 얻은 한국 좀비를 잃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래도 <반도>의 액션, 자동차 추격신은 화려했습니다.

<분노의 질주>, <트랜스포터>... 아니 좀비판 <이니셜 D>라는 생각이 문득 들더군요.

시장 골목골목을 맘껏 드리프트 하는데, 볼만합니다.

역시 친숙한 장소를 영화에서 만나는 재미도 있습니다.

무대가 된 장소들을 잘 알아볼 수 있게 했다면 더더욱 흥미로웠을 것 같습니다.

한 가지, 결정적인 액션 신마다 슬로 모션으로 길게 끈 건 약간 거슬립니다. 물론 멋진 얼굴은 잘 보여야 하니까 이해합니다.



아무튼, 영화를 보며 잠깐 딴 생각도 했습니다.

팬데믹 다음 단계는 혹 좀비 아포칼립스가 아닌가 고민했더랬죠.

요즘은 영화처럼 되지 않은 일이 있는가 싶죠(얼마 전 뉴스 기사에서 영국군이 로봇 부대를 늘린다는 소식도 들었어요).

그러면 피곤하게 인간으로 생존할 것인가, 그냥 편히 좀비 무리 속에 갈갈거릴 것인가.

어디, 제 맘대로 되겠어요?


아무튼 재밌게 잘 봤습니다.

아무쪼록 재미있으면 되죠, 꼭 보시기 바랍니다. 물 들어올 때 노 젓고, 영화 올라올 때 보는 겁니다.

개인적으로도 오랜만에 보는 좀비물입니다.

영화 좋아하는데, 극장은 못 가고, 넷플릭스 등 OTT에 올라왔으니까 정말 반가운 마음으로 즐겼습니다.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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