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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로스처럼, 농담은 챈들러처럼

십년의 친구, 프렌즈



“십 년 만이네?”

문득 생각이 나질 않는 것입니다. 그때 로스와 레이철은 어떻게 되었더라?

그래서 다시 처음부터 꺼내보기 시작합니다. 시즌1, 에피소드 1…

좀 허술하지만 순수한 로스, 예민하긴 해도 사랑방 주인처럼 모두를 받아주는 로스의 여동생 모니카, 여동생의 괴짜 룸메이트 피비, 엉뚱하기로는 둘째 가면 모자랄 로스의 대학 동창 챈들러, 챈들러의 환상의 짝이 될 무명 배우 조이, 그리고 철딱서니 없는 로스의 첫사랑 레이철까지… 세 남자와 세 여자, 도합 여섯 명의 친구들은 깊은 우정 속에 좌충우돌 이야기를 펼쳐나갑니다. 바로 <프렌즈>의 시작입니다.

그날의 일진이 좋든 나쁘든, 하루가 행복하든 몹시 외롭게 느껴지든, <프렌즈>은 언제나 맘 편히 찾아볼 시트콤입니다. 시트콤은 좀 가벼운 면도 있습니다. 나름의 메시지가 없을 수 없지만, 시종일관 유쾌 상쾌한 분위기다 보니 깊은 주제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 같다고 할 순 없겠죠. 다만 시트콤의 경우 또 촌철살인의 맛이 있습니다. 툭하고 살짝 건드리지만 무릎을 치며 공감하는 것이죠.


<프렌즈>는 그런 시트콤입니다. 엉뚱한 캐릭터와 사건들로 실소가 그치질 않지만, <프렌즈>가 매력적인 건 그 유머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막 세상에 나온 여섯 친구들은 매사 서툴고, 끊임없이 시행착오를 겪으며 낙담하지만, 그때마다 서로의 곁엔 친구가 있습니다. 좋은 일이 있으면 친구와 함께 그 기쁨이 두 배가 되죠. 그렇게 함께 겪고 성장하는 모습이 그려지는 것이 <프렌즈>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해봅니다. 오히려 유머는 그 위에 가미한 향료라고 할까요? 벌어지는 사건들을 너무 진지하게 묘사되지 않은 것도 꽤 근사하게 느껴지는데, 마치 누군가 시큰둥한 척 툭 던진 말에 크게 위로받는 듯합니다.

한바탕 소동을 겪은 친구들은 항상 아지트에 모여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커피숍이나 모니카의 집은 <프렌즈>의 아지트이자 시트콤의 거의 모든 배경이 되는 장소죠. 그런 모습은 몹시 설레는 장면인데 세월이 흐를수록 부럽고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삶이 시트콤 같을 수야 없지만 기회가 된다면 한 번쯤 그들처럼 살아보고 싶단 생각마저 듭니다. 특히 사랑은 로스처럼, 농담은 챈들러처럼 살아온 저에겐 말입니다.



<프렌즈>는 1994년 시즌1의 방영을 시작해 2004년 시즌 10을 끝으로 종영했습니다. 그야말로 십년지기, 처음부터 함께 했다면 이제 삼십년지기도 멀지 않았죠. 지금 생각해도 절로 미소가 번집니다. 방영 시간을 기다려 챙겨 보고, 지나가다 봐도 '와, 프렌즈다!'하며 그대로 채널을 고정했죠. 한참 물이 올랐을 땐 <프렌즈>를 보려 귀가를 서둘렀고, 심지어 어학 교재로 삼기도 했습니다. 여러모로 추억을 남겼는데, 그 십 년 동안 <프렌즈>를 지켜본 시청자도 같이 성장한 셈입니다.

그나저나 헷갈립니다. 로스와 레이철은 어떻게 됐던가요? 결과는 나왔는데… 세월이 로스와 레이철에 관한 기억을 왜곡시킨 것 같습니다. 현실 속의 <프렌즈>는 달콤한 로망이라는 건 조금 슬프게 느껴집니다. 맺어진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엉킨 기억 가운데 둘 사이에 조이가 끼어들었던 것만은 확실합니다. 조이는 결코 싫어할 수 없을 무척 사랑스러운 탕아지만, 그땐 좀 원망했던 기억이 납니다. 더욱이 답답한 로스와 경쾌한 조이는 비교되기에, 로스의 첫사랑을 응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훗날 다시 보니 조이도 조금은 이해가 되더군요.



문득 예전에 누가 이런 질문을 한 기억도 납니다. "너는 레이철, 모니카, 피비 가운데 누가 제일 좋아?" 그건 은근 ‘너도 레이철이냐’는 유도 심문 같았습니다. 남녀의 입장을 바꾼다면 거꾸로 로스와 챈들러 그리고 조이에 대해서 그런 선택 의문문을 던지는 것과 같죠. 아마도 그래서 그때 “뭐 다들 개성 넘치고 좋지!”라며 에둘렀던 것 같습니다. 레이철… 좋습니다. 첫사랑 좋습니다. 다만 레이철 같은 여성이 제 첫사랑이었는지도 모르겠고, 게다가 <프렌즈>에는 멋진 카메오들도 많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여전히 그 질문에 대해서는 노코멘트… “잘 모릅니다.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며 묵비권을 행사합니다.


이뤄지거나, 이뤄지지 않거나 사람의 기억은 참 재미있습니다. 그래서 첫 시즌부터 끝까지 다시 봅니다. 마지막 에피소드만 찾아봐도 되지만, 그건 너무 쉽습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다시 보기의 핑계가 되어줍니다. 친구들이 모이던 센트럴 퍼크, 모니카의 집이 나옵니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밤새워 보아도 익숙해진 모든 것들이 끝난다니 또 아쉬워 저도 몰래 읊조립니다.

“조금만 더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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