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디터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준 세 가지 장면

벤 스틸러의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월터 미티(벤 스틸러)는 라이프(LIFE)지의 포토 에디터(Negative Asset Manager)입니다. 사진가가 보낸 네거티브 필름을 다루는 일이죠. 숙련된 기술자로 오랜 시간 음지에서 묵묵히 일해 온 인물이지만, 그에겐 한 가지 유별한 점이 있습니다. 멀쩡하다가도 어느 한순간 상상에 빠져 그 자리에 얼어붙는데, 인사불성 백일몽을 꾸니 기이하기 짝이 없습니다. 별종이라기보다는 소심하고 내성적인 까닭에 현실에선 망설이며 하지 못하는 것을 상상하는 것입니다. 그는 직장동료 셰릴(크리스틴 위그)을 짝사랑하지만 상상만 할 뿐 쉽사리 다가가지 못합니다.

한편 인터넷, 온라인의 시대적 흐름을 라이프 지 역시 거스를 수 없습니다. 독보적인 명성을 쌓아온 오프라인 잡지들이 구시대의 유물로 치부되며 폐간되어갑니다. 개편을 위해 합류한 새로운 경영진의 생각도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런 가운데 여전히 필름을 다루는 월터의 부서가 환대받을 리 없습니다. 정리 대상입니다. 월터 또한 디지털 시대에 맞지 않게 암실 속에 틀어박혀 있는 인물입니다. 오비이락, 월터도 새로운 상사와의 첫 만남에 살아있는 화석 같은 모습을 보여주죠. 말 그대로 찍히고만 것입니다.



월터는 지면 잡지의 마지막 발행을 앞두게 됩니다. 마지막 호에는 탐험 사진가인 션 오코넬(숀 펜)의 사진을 표지 사진으로 쓰기로 합니다. 션은 그 사진이 삶의 정수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보아도 션이 보냈다는 필름을 찾을 수 없습니다. 어쩌면 션이 잊고 보내지 않았을지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오지에 있을 션과는 연락이 두절된 상황이죠. 가뜩이나 어수선한 상황에 사진을 잃어버렸다는 보고는 할 수 없습니다. 월터는 직접 션을 찾아 나서기로 합니다. 마침 셰릴까지 용기를 주죠. 그렇게 월터는 아이슬란드로, 그린란드로, 아프가니스탄으로… 션과 사진을 찾기 위한 모험을 시작합니다. 그건 결국 윌터 자신을 찾기 위한 모험이기도 합니다, 여행은 월터를 모험으로 이끌고,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됩니다.

이것이 벤 스틸러의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제임스 서버 소설 원작)>의 내용입니다. 상상에 잠긴 월터를 보자 공감하며 영화에 몰입했습니다. 안 그래도 자주 상상에 빠지는 편입니다. 어릴 적엔 책상 아래로 들어가 우주선을 발사했고, 음악을 들으며 볼펜을 마이크 삼아 열창했으며, 월터처럼 좋아하는 사람을 떠올렸죠. 갑작스러운 인생 역전의 성공 스토리를 써나가는 상상은 조금 더 나이가 들어 하기 시작했는데… 월터의 상상은 전혀 낯설지 않습니다.

영화는 밝습니다. <매트릭스>의 한 장면과 같은 새로운 상사와의 육탄전,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등을 패러디한 상상 장면과 모험 극처럼 가미된 흥미진진한 액션 신은 가슴 뻥 뚫릴 쾌감을 선사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흔히 벤 스틸러에게 기대하던 것 이상의 무언가가 느껴졌습니다. 신나고 재밌지만, 못지않게 진지합니다. 코믹물로 생각하고 보기 시작했지만 점차 감동에 방점을 두며 진한 여운을 남겼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현실 속에 상상으로만 억제되어 있던 월터의 바람이 상상이 아닌 현실로 실천되며 느끼는 해방감 같은 것이었을지 모릅니다. 처음엔 월터의 상상법(?)에 공감했을 뿐이지만, 월터의 상상이 실제 현실이 되자 월터를 응원하게 되며 점차 마음이 움직입니다.


어찌 보면 서글플 수도 있었을 이야기입니다. 세월의 흐름, 시대의 변화에 자리를 내주고 도태되는 모습이 그려지니까요. 그런 면에서 영화는 극적 반전을 보여주진 않습니다. 가령, 경영진의 생각이 바뀌어 라이프 지가 지면 잡지로 살아남는다든가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 것이죠. 다만, 이 영화가 희망적일 수 있는 건 그럼에도 주인공 월터가 새로운 모험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월터는 돋보이지 않는 암실 속을 지켜온 숨은 공헌자이고, 각기 일상의 장인으로 살아가는 우리들도 월터와 다름없습니다. 힘을 얻게 됩니다. 상상이 언제나 현실이 될 순 없지만, 실제 두발로 그 꿈을 향해 나선다면 그 속에 답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를 보며 저는 세 가지 장면에서 세 번의 환희를 느꼈습니다. 월터가 분화하는 화산을 배경으로 스케이팅 보드를 타고 내려가는 순간, 눈 표범이 나타나자 션이 사진을 찍지 않고 지그시 눈으로만 바라보는 순간, 그리고 월터가 ‘삶의 정수’를 담은 마지막 표지 사진이 무엇인지 깨닫는 순간이 바로 그 장면들입니다.

첫 번째 장면에선 자유를 느꼈습니다. 한동안 글을 쓰지 않고 있었는데, 문득 쓰고 싶다는 의욕도 생겼습니다. 꼭 이 영화가 계기가 되었다는 건 아니지만, 상상을 현실로 만든 월터의 모습은 분명 도움이 되었습니다. 필요 없단 생각을 버리고 원하는 건 무엇이든 자유롭게 해보라는 내면의 목소리 같았습니다.


두 번째 장면에선 옛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제게도 사진이 아닌 눈으로 담으란 말을 해주었던 사람이 있습니다. 때때로 그 말의 의미를 되새길 때가 있습니다. 사진을 남기느라 그곳, 그 순간을 놓치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삶의 한 순간을 음미하란 의미가 아닐까요? ‘가끔 자신만을 위한 순간에는 사진을 찍지 않는다’는 극 중 션의 대사는 다소 느끼하지만, 숀 펜이니까 소화 가능한 장면인 듯도 합니다. 이 장면을 본 뒤 여행을 떠나고 싶어 졌고, 실제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눈으로만 보았다곤 말 못 하여도 사진 이상으로 눈에 선한 여행이 되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장면은 곧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정수’에 관한 것이니 직접 영화로 확인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삶의 정수'라며 션이 보내온 사진이 곧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이기 때문입니다. 음악 영화는 음악, 사진 영화는 역시 사진이어야 한다는 생각도 해보게 만드는 장면이었습니다.

과연 그 ‘삶의 정수’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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