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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타노스가 싫다고 하셨어

타노스에 공감하는 시대의 우, <인피니티 워>



요즘 영화는 망가가 너무 많네!

오랜 영화 팬인 어머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한 반백년은 넘게 보셨을 텐데, 장르를 가리지 않는 편입니다. 요즘엔 너무 놀라셔서 피가 낭자하는 공포 영화는 좀 피하지만 세간에 정평이 난 영화나 인기작은 빼놓지 않고 보십니다. 그 취미를 물려받아 평소 행동이 살갑지 못한 제가 어머니와 공유하는 시간도 영화 한 편을 함께 감상하는 것이죠. 요즘엔 ‘너무 늦으면 내일 보자’고 하시지만, 흥이 나면 여전히 ‘한 편 더!’를 외치며 연속 상영하거나, 그러다가 (어떤 미드에) 꽂히면 그날 밤을 올 나이트를 하기도 합니다. 물론 클릭 한 번으로 쉽게 영화를 간택하는 지금보단 예전이 더 감질 맛이 났지만요.


그런 어머니의 반응을 살피는 건, 작은 극장을 연 저의 즐거운 의무입니다. 관객의 반응을 살피는 것처럼 흥행을 거두면 매우 뿌듯해집니다. 간혹 정말 잘 봤다는 말씀도 해주시죠. 물론 흥행에 참패를 해도 무언가 잘못될 리는 전혀 없습니다. 어머님은 그저 담담히 한 숨을 내쉬며 ‘그래, 참…’ 하고 극장을 나설 뿐입니다. 그럼 저도 ‘그러게요, 참…’ 하면 그만입니다. 영화가 별로라고 극장을 탓할 순 없습니다. 단, 영화에 대한 평은 참으로 냉정한 편이십니다. 일단 보기 시작하면 끝까지 보시고 중도에 감상을 포기하시는 법 없지만,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재미없으면 주무십니다.

드라마부터 코미디는 물론이고, 과격한 액션 영화과 SF나 판타지도 즐기지만, 만화를 원작으로 한 SF 히어로물일 경우, <스파이더맨>이나 (아마도) <아이언맨>까진 보시다가, 그것이 계속되며 영웅들이 무더기로 등장한 이후는… 자꾸 잠이 드십니다. 그러니까 처음과 달리 점차 흥미를 잃어가는 것입니다. 요즘엔 어떻게 맨날 망가냐… 어머니의 개취입니다.



반면 제 경우엔 원래 큰 관심을 두지 않다가 점차 마블의 세계에 깨어나고 있죠(마음만큼은 거의 닥터 스트레인지입니다). 예전엔 생각이 좀 달라 슈트 입은 영웅들이란 결코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시대마다 그 시대에 적합한 모습으로 분할뿐 박쥐 같은 존재에 이야기도 거기서 거기 고만고만하다고 여겼던 것입니다(그래서 차라리 배트맨은 마음에 들었습니다). 옛 슈퍼맨도 그랬고, 그 자체로 근사한 근육 슈트를 입은 람보도 그랬습니다. 지금의 아이언맨과 먼 훗날 (분명 돈이 되므로) 재등장할 아이언맨도 아마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인피니티 워>에선 뭔가 통해 비로소 ‘아, 그런 거구나.’ 싶습니다. 물론 <인피니티 워>도 대단히 새로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결국 세상의 인구를 절반으로 줄이려는 정복자에 대항한 히어로들의 이야기로 요약되니까요. 단, 상당히 의미심장한 화두를 던집니다. <시빌 워>가 공존을 위한 이념적 대립이었다면, <인피니티 워>는 생존 방식에 대한 이념적 대립을 논하는 것입니다. 생존을 위해 파괴해야 하느냐, 그럼에도 공생을 모색해야 하는가… 그와 같은 화두를 던진 뒤, 결말을 향해 관객을 일 년 더 기다리게 한 배짱도 마음에 듭니다.


타노스는 파괴가 곧 재생이란 사상을 떠올리게 만드는데, 다분히 역사적 인물을 상기시키기도 합니다. 위태로운 시대가 잉태한 괴물, 그는 마치 히틀러 같죠. 돌이켜보면 1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이 패하고 과도한 전쟁 배상금을 부과하자 히틀러라는 인물이 등장해 당시 유럽 사회의 표적인 유대인을 탄압하고 2차 세계 대전을 일으켜 수없이 많은 생명을 앗아간 것처럼, 마블의 세계에선 타노스라는 불온한 사상가가 나타나 자원이 고갈된 우주의 인구를 반 토막 내려합니다. 일종의 ‘정화’인데, 사실 역사상 수많은 전쟁이 그런 ‘정화’의 의미로 발발했습니다. 1차 세계 대전도 그렇습니다. 사라예보의 테러 사건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지만 결국 막을 수 있었던 전쟁을 키우게 되죠. 그 내막엔 ‘이쯤 해서 전쟁 한 번 터뜨려야…’ 하는 당시 유럽 전제 국가들의 안이한 접근이 있었습니다. 결국 엄청난 살상의 참극이 벌어지고, 그로 인해 유럽의 왕가들도 대부분 몰락합니다. 더불어 연이은 세계 대전으로 식민지 시대로 대변되는 유럽의 전성기도 끝을 맺죠. 타노스도 위태로운 시대의 불온한 사상가 그리고 정화를 빙자한 전쟁광을 떠올리게 합니다.

오늘날엔 또 다른 해석도 가능할 듯합니다. 가령 지구의 포화, 자원의 감소 상황에서 출산 기피와 인구의 감소는 주어진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한 본능적 반응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인간의 지성은 계속된 번영을 위한 대책을 내놓겠지만, 동시에 지극히 동물적인 본능이 있어 몸에 ‘바이러스’가 들어오면 자연히 ‘항체’가 생기듯 균형을 맞추려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타노스 입장에선 우주의 균형을 되찾기 위해 스스로 일종의 ‘항체’를 자처한 셈입니다. 위험한 ‘항체’입니다. 그럼에도 영화이기에 상당히 매력적으로 느껴지는데, 현실이라면 용납할 수 없지만 가상의 인물이기에 그렇습니다. 영화를 본 뒤 ‘어이구, 저런…’하면서도 다들 한 번씩 손가락을 튕겨 봅니다. 저도 미운 사람 앞에서 몇 번 튕겨 봤지만… 거기 그대로 잘 있더군요. 아무쪼록 그가 취한 방식엔 동의할 수 없지만, 그 논리를 한 번쯤 살펴보게 됩니다. ‘할 일’을 마치고 힘겨운 듯 몸을 추스르는 그 뒷모습은 인상적이기까지 하죠. 하지만 그런 극단적인 ‘항체’에 어떤 식으로든 공감한다는 건 무척 두려운 일입니다. 그런 우를 범하는 건, 그럴 만한 시대에 산다는 의미일 수 있으니까요.


희망이 필요할 때 응답하는 건 역시 슈트 입은 히어로들입니다. 영화에 영웅이 많이 등장하는 건 그만큼 영웅을 필요로 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라던데, 그들을 다 모아놓으니 ‘대체 세상이 어떤 꼴이기에 이렇게 많은 영웅들이 필요하나…’란 생각도 듭니다. 새삼 언제 그러지 않았던 적도 없긴 합니다. 어쨌든 이런 관점에선 타노스가 ‘바이러스’고 히어로들이 ‘항체’입니다. 타노스가 ‘항체’란 논리보단 무언가 정상으로 되돌린 느낌이 듭니다. 바이러스가 들어왔으니 영화처럼 모두 달라붙어서 덤비는 것이죠. 예전엔 모두 일당백이었는데… 타노스 앞에선 초라합니다. 악당 하나에 얼마나 많은 영웅이 필요한가 싶지만, 그것이 극적입니다. 더 뼈저린 패배일수록 반전의 묘미가 있고, 막판 뒤집기 한판이 원래 더 짜릿하니, 타노스는 그만큼 어려운 상대여야 합니다.


독보적인 타노스의 존재감에 어벤저스, 영웅의 총합으로 그 균형을 맞추지만, 일단 <인피니티 워>는 히어로들의 패배로, 비극으로 끝을 맺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절반이 희생된 참담한 상황임에도, 그다지 우울하진 않습니다. 그루트가 가루로 사라질 때 좀 찡하지만 (어차피 사춘기니까) 대수롭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어질 반전에 대한 기대감이 커집니다. 비극이라도 좀 밝은데, 비극의 톤(?)이라면 디씨의 영화들도 생각납니다. 마블과 여러 가지 차이가 있겠지만 제가 느끼기에 그중 하나는 마블의 톤이 디씨보다 밝은 것입니다. 각기 의도와 매력이 있지만, 히어로 물의 비극이란 결국 권선징악의 결말로 향하는 길에 넣는 변속 기어와 같으니, 힘을 빼고 부드럽게 변속해야 덜컹거리지 않을 것 같긴 합니다.


그런 마블이든 디씨든 ‘세계관’이란 표현은 때로 거창하게 느껴집니다. 물론 그만큼 족보가 있으니 거기엔 그런 표현을 쓸 수 있습니다. 부작용이라면 덕분에 너도나도 ‘세계관’을 자칭하는 것이죠. ‘세계관’이 너무 많아도 곤란하니까 그건 좀 그렇습니다. 그 ‘세계관’이 얼마나 깊고 넓은 지도 궁금합니다. 아직 갈 길이 멀었지만, 언젠가 그 세계의 곳간이 비면 과연 무엇을 보여줄지… 아니면 영원히 고갈되지 않는 걸까요? 아무튼 배부른 얘기고, 슈퍼맨도 한 철이니 있을 때 즐겨야 할 것입니다.

다만 어머님이 자꾸 잠이 드셔서 참 곤란합니다. 앞으로도 수많은 망가 히어로들을 만나셔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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