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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점프를 영원히 기억 해

뤽 베송 <그랑블루>



영화는 소년의 어린 시절을 흑백으로 회상하며 시작합니다. 자크(장 마크 바)는 자연을 벗 삼아 사는 작은 바닷가 마을의 소년입니다. 어머니 없이 자라 소심한 성격이지만 다이빙에 관해서는 재능이 있습니다. 같은 동네의 엔조(장 르노)와도 자웅을 겨룰 만하죠. 엔조는 자크와 반대로 아이들을 이끄는 골목대장 같은 소년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크는 다이빙 사고로 아버지를 눈앞에서 잃습니다. 엔조 또한 그 장면을 목격합니다. 그리고 영화는 시간이 흘러 마치 바다의 색을 다시 얻듯, 두 소년이 성장한 이후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뤽 베송의 88년작 <그랑블루>의 이야기입니다.


어릴 적, 제가 살던 동네는 88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개발이 한창이던 곳이었습니다. 뽕밭을 갈아엎고 옛 주택을 허문 자리엔 조금씩 높은 아파트와 공원이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이제 막 그 동네로 이사 온 전 아직 초등학생이었는데, 주변엔 웬일인지 낮엔 일하지 않는 공사장과 아직 무엇도 들어서지 않은 채 방치된 황량한 벌판이 많았습니다. 통학버스가 있었지만 걸어서 다니는 게 좋았습니다. 어린 나이에 걸어서는 멀다면 먼 길일지 모르지만 학교와 집 사이의 그 길은 제 어린 시절의 보물창고, 세상의 모든 곳이었습니다. 비가 오는 날에 그곳은 뻘로 변했습니다. 뻘이 되면 무릎 높이까지 빠졌는데, 마치 머드 축제라도 되듯 아랑곳없이 허우적대며 뛰어놀았습니다. 자연을 벗 삼지 못한 도시 아이들에겐 마치 육지 한가운데 생긴 해변의 양식장 같기도 했습니다. 온몸이 흙투성이가 되어 집에 돌아가면 어머니는 문간에서 옷을 홀라당 벗기셨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늘 그렇다는 듯 호쾌한 미소를 지으며 단 한 번도 화를 내시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날의 일들을 마치 무용담처럼 어머니께 들려 드렸죠.


그곳엔 올림픽 준비를 위해 아직 쓰지 않고 모아놓은 건축 자재들도 가득했습니다. 지금은 올림픽 공원이나 근처 어느 길가의 벽돌과 보도가 되어 있겠지만, 그 이전엔 우리들의 아지트의 일부였습니다. 쌓아놓은 벽돌이나 보도블록을 몇 장씩 빼내어 그 속에 아지트를 만들었고, 밤낮없이 머무르며 우리만의 장소를 꾸몄습니다. 그러다 배가 고프면 나와 동네 슈퍼에서 아폴로를 빨아먹거나 길가의 좌판에서 뽑기, 달고나를 사 먹었습니다. 어찌나 달던 지… 맛도 좋았지만 만드는 과정 또한 신기해 각양각색의 모양으로 찍어내는데 매료되어 이번엔 어떤 모양을 해 먹을까 설레었습니다. 아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던 그곳은 그야말로 올인원의 핫플레이스였습니다. 그곳이 근사한 건 오직 달고나 때문은 아니었는데, 좌판 옆엔 ‘황야의 유원지’처럼 트램펄린(텀블링)이 하나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학교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겨우 꿈이나 꾸라고 했지만, 아이들은 트램펄린을 타고 직접 하늘로 날아올라 꿈을 이뤘습니다. 동전 몇 닙이면 하루가 훌쩍 가고 천 원 한 장이면 부자였던 시절입니다.



당시 친구들과 함께 즐겨하던 놀이가 또 하나 있었습니다. 다름 아닌 담력 테스트인데, 아마도 공사판에 모아놓은 것으로 보이는 수 미터 높이의 모래 언덕 절벽 위에서 점프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누가 멋지게 날아올라 멀리 착지하느냐를 두고 게임을 했습니다. 말하자면 기술 점수와 예술 점수가 전부 매겨진 끝에 승자를 가리는 것이었지요. 날아간 거리, 공중에서의 기술과 예술 점수, 마무리 자세까지… 종종 잘못 떨어져 발목이 꺾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며칠을 발을 절뚝거리고 돌아다녀도 마냥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발목이 나으면 트램펄린 위에서 하늘로 솟아오르고 다시 모래 언덕으로 달려가 친구들과 함께 뛰어내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거침없이 모래 언덕을 뛰어내리던 꼬맹이는 어느덧 중년의 나이가 되어있습니다.

영화 <그랑블루>를 보면 그 시절이 떠오릅니다. 마침 <그랑블루> 또한 공교롭게도 올림픽이 있던 88년도 작품입니다. 이제 프리다이빙 챔피언이 된 엔조는 자크의 행방을 수소문해 다이빙 대회에 초대합니다. 자크의 재능을 잘 알던 엔조는 그를 이겨야만 진정한 챔피언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한편 돌고래를 벗으로 살아가던 자크는 극지 연구소의 다이버로 일합니다. 그곳에서 그는 보험 조사원인 조안나(로잔나 아퀘트>와도 만나 사랑에 빠지죠. 이후 엔조는 자크를 찾아오고 이제 둘은 우정을 다지며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다이버의 타이틀을 두고 경쟁을 펼치게 됩니다. 누가 더 오래 숨을 참고 더 깊이 잠수할 수 있는가… 그리고 결국 자크가 엔조를 능가하지만 엔조는 무리수를 두기에 이르고 죽음을 맞이합니다.

무모합니다. 엔조는 끝내 자크를 넘어설 수 없고, 자크는 또다시 누군가를 잃습니다. 게다가 엔조를 잃자 조안나의 만류마저 뿌리치려 하죠. 상실을 통해 또 다른 상실을 부른다는 건 안타깝습니다. 그래서인지 누군가는 이렇게 평합니다. 숨 참고 깊이 잠수하는 게 워라고 저렇게까지… 과연 그럴지도 모릅니다. 영상과 음악이 아름답지만, 목숨 걸고 잠수한다니 부질없는 경쟁심에 모든 걸 건 듯합니다. 그걸 우정과 뜨거운 열정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달리 표현할 말이 궁할 뿐, 충분한 표현은 아닐 듯합니다. 자크와 엔조를 말리고 싶습니다.



그럼에도 <그랑블루>는 제가 마음 깊이 간직한 영화입니다. 전 지금도 간혹 모래 언덕에서 뛰어내리던 시절을 떠올리곤 합니다. 그 또한 제발 말리고 싶습니다. 소중한 추억이지만 그게 재미있다고 여기진 않습니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인생은 이미 그런 점프들의 연속이란 걸 배운 까닭입니다. 적어도 애써 다시 해보고 싶진 않습니다. 나이가 드니 발목도 욱신거립니다. 그래도 돌이키면 절로 미소가 번집니다. 무척 행복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과 달리, 그땐 경쟁하다가 싸움이 붙더라도 실상 누가 이기든 별 상관이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사심 없이 저를 불러내 아지트를 만들고, 트램펄린을 타고 하늘로 솟구치며, 함께 모래 언덕을 뛰어내린 엔조가 있었습니다. 그 엔조 또한 저를 세상 밖으로 이끌어 더 높이 멀리 뛸 수 있도록 자극했습니다. 이해하기 어렵지만, 조안나에겐 미안하지만.

그런 엔조와는 어느 날 갑자기 멀어졌습니다. 더 이상 아지트도 찾지 않게 되었습니다. 전날 수업까지 빠지고 아지트로 가자던 그를 외면했기 때문입니다. “배신자!" 아지트에 대한 엔조의 마음은 저보다 더 깊었습니다. 이후 우린 트램펄린 장, 모래 언덕에서 마주쳐도 서먹해졌습니다. 학년이 바뀌고 공사가 재개되자 아지트도 허물어졌습니다. 비 오는 날의 뻘도, 불량 식품도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지금 그곳엔 세상 멋진 건물들과 올곧은 길이 나 있죠.

아마 그래서, 어쩌면 대신 <그랑블루>를 제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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