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인채

[인도영화] 다시 문을 연 인도 극장

#인도 #영화 #서 #sir #코로나 #씨네21


인도 극장이 다시 문을 열었다. 지난 3월 이후 반 년이 훌쩍 지나 연말이 되었으니, 인도 극장가는 긴 여름과 우기를 지나 마침내 희망의 기지개를 켰다. 물론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상황이 크게 호전되지 못한 가운데 객석의 반을 채워 걱정과 불안감이 적지 않다. 게다가 다가오는 연말 연시, 그간 미뤄둔 국내외 대작들의 개봉 예정으로 극장가는 큰 시험대에 올랐다.

그럼에도 일단 고무적이다. 단지 영화가 인도 사람들의 낙이란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그만큼 영화 산업의 타격이 컸다. 리즈를 거듭 경신하며 호황기를 누려왔지만, 예기치 못한 동면에 들며 영화계는 전례 없는 위기를 맞았다. 무수한 작품의 개봉이 연기되거나 제작 취소되고 전설적인 배우를 잃는 아픔도 겪었다. 그런 가운데 스트리밍 서비스가 대안으로 떠오르며 관객과의 접점을 유지했으나, 많은 신작을 공개하기에 어려움이 따르는 한편, 지난 영화들로 목마른 팬들의 갈증을 해소하기엔 모자람이 있었다. 그러므로 극장 문을 다시 열며 개봉 일정이 속속 업데이트되고 새 영화의 제작 소식까지 들려오는 건, 아직 인도 영화 시장은 살아있다는 반가운 생존 신호다. 방역이 더 중요하지 않냐는 의문을 제기한다면 물론이다. 우려가 크다. 다만 그에 대한 대답은 일찍이 강력한 조치를 취했던 인도가 왜 화를 자초하며 코로나의 가장 큰 피해국이 될 수밖에 없었냐에 대한 이유와 같다. 생존의 적은 바이러스 만이 아니었다. 인도의 영화 산업은 거대하고, 관련 종사자는 어마어마하다. 멈춰 선 영화계가 다시 역동적인 제 모습을 되찾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과연 예전처럼 모두가 열광하며 극장에 모일 날이 올까? 아직은 조심스레 많은 물음표를 단 첫걸음을 뗄 뿐이다.



한편, 블록버스터에 대한 갈증은 크지만, 이런 시기에 비로소 빛을 보며 눈길을 끄는 영화도 있다. 가령 일찍이 칸 영화제(2018년)에서 소개*되었지만, 정작 인도에선 이제야 개봉한 영화 <서(Sir)>가 그렇다. 현지 정서에 맞지 않거나 큰 영화에 밀린 탓이다. 유럽에서 먼저 알려졌는데, 프랑스와 인도 이중 국적의 영화기도 하다. 지금도 큰 흥행을 거두는 건 아니지만, 충분히 재조명을 받을만한 완소 작품이다.




영화는 건축가와 그의 집에서 상주하며 일을 하는 가정부의 오묘한 로맨스를 그린다. 한 마디 대사로 내용을 추릴 만하다. 친구가 말한다. "넌 네 가정부와 데이트를 할 수 없어!" 다만 그렇게만 요약하면 자칫 오해를 살 수 있다. 신분 차이를 넘어선 사랑을 그린 진부한 로맨스, 또 하나의 <신데렐라>나 <귀여운 여인>라고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는 뻔한 패턴을 반복하지 않는다.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는 여인은 어디에도 없다. 부유한 남성과 교육받지 못한 가난한 가정부. 그러나 젊은 과부로 굳세게 살아오며 확고한 꿈을 가진 여인은 오히려 자신의 고용주에게 영감을 주는데, 서로가 서로를 완성시키는 소울메이트다. 인도가 배경이란 걸 생각할수록 둘의 조합은 더욱 절묘하다. 동화나 판타지가 아닌 실제 생활에서 늘 마주치는 사람이 다름 아닌 '나의 가정부'다. 영화는 계급 사회에 대한 화두도 던지지만, 꼭 그런 관점으로만 보지도 않을 일이다. 인도는 집안일을 도울 사람을 몇몇 쓰는 게 보통이다(집사, 요리, 청소 등 각기 역할을 세분해 도움을 받기도 한다). 혼자 모든 가사를 감당하기 어려운 환경인 반면 인건비는 부담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날은 무덥고 동작은 굼뜨다. 사소하게 돌봐야 할 일은 많다(하루 이틀만 집을 비워도 수도가 막히고, 전기가 나가고, 인터넷이 끊어지는 등등 이것저것 고장이 난다). 그런 일을 자주 반복적으로 겪으면 점차 납득하게 된다. 그렇게 끝내 두 손들고 누군가 도와줄 사람을 부르면, 그들이 다가와 꺼내는 첫 마디가 바로 "서?"일 것이다. 뭘 도와줄까 묻는 것이다. 이제 실감하는 바가 다르다. 요즘 영화로는 드물게 노골적인 감정 표현이나 묘사는 거의 없다. 하지만 절제된 표현 속에 그들이 주고받는 미묘한 감정은 상상해볼수록 아슬아슬 긴장되고 매우 관능적이라고 평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말한다. "언제까지 날 '서'라고 부를 거야?"

*gan foundation award 수상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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