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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영화] 영화 대 영화 '트리방가' 와 '백호'
#씨네21 #인도영화 #발리우드 #인생은트리방가처럼 #화이트타이거
아래 내용은 얼마 전 <씨네 21>에 기고한 인도 영화 소식 원고의 원문입니다.
연초 동향과 주목할 만한 영화를 담았습니다. 일정상 2월 작성한 글이 3월에 게재되었다는 점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정식 기사 내용은 아래 씨네21 및 네이버 기사 링크를 꼭 확인해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씨네21 링크 :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97311
네이버 TV연예 기사면 링크 : https://entertain.naver.com/read?oid=140&aid=0000043992
기사 원문
절반의 객석을 연 인도 극장가가 예전의 모습을 찾으려면 시간이 필요해보인다. 백신 접종이 이뤄지는 가운데 허용된 객석을 모두 채우지 못하고 지역에 따라 문을 열지 못한 상영관들도 있다. 다시 활기를 얻으려면 코로나의 종식 뿐아니라, 영화팬들의 마음에 다시금 불을 지필 영화가 필요하다는 반응이다. 일단 연초 극장가 특수인 공화국의 날(1월16일)은 예년과 달리 조용했다. 향후 기대작의 개봉이 중요할 것으로 보는데, 반전의 계기를 고대하고 있다.
한편 연초 온라인 개봉작 중 흥미로운 영화 두 편이 눈에 띈다. <인생은 트리방가처럼>과 <화이트 타이거>가 그 주인공이다. 먼저 <인생은 트리방가처럼>은 카졸 주연의 '여성 삼대'다. 소설가인 어머니 나얀, 전통춤 무용수로 홀로 딸을 키운 주인공 아누, 보수적 사회로부터 몸부림친 선대와 달리 보수적인 집안에 시집간 손녀 마샤. 이렇게 세 여성이 영화를 이끈다. 말년에 이르러 자서전을 집필하던 나얀은 쓰러져 혼수상태에 빠진다. 원망한 나머지 남처럼 대했던 어머니, 모녀는 과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아누(카졸)는 그 관계를 돌아보고, 이야기는 나얀의 첫 결혼 아누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기에 둘 사이의 균형 같은 마샤의 이야기가 더해져 영화는 인도판 '삼대'가 된다.
막나가는 모녀인 줄 알았는데 실은 세상을 향해 각자 몸부림칠 뿐이다. 인도에선 다소 파격인 장면과 대사도 눈에 띄지만** 좀 거칠어도 따뜻한 드라마다. 나얀이 아이들에게 자신을 맘껏 비난할 기회를 주고 싶다했듯, 딸에게 보낸 한 통의 서툰 편지 같은 이 영화는 어머니가 자식에게 자서전의 남은 부분을 채우게 하며 화해의 손을 내민다. 어머니가 어떤 사람이냐는 질문에 아누는 아방가란 춤동작에 비유한다. 천재지만 살짝 괴짜일 수밖에 없다. 이에 반해 자신의 딸 마샤는 사마방가, 완전한 균형을 지니고 있다. 그러면 아누 자신은? 바로 트리방가. 괴상하고 삐딱하고 미쳤지만, 섹시하다. 방가란 오디시 춤동작의 자세고, 트리방가는 그 하나로 몸을 삼중(트리플)으로 구부린 자세를 말한다. 아누 역을 맡은 카졸은 이 작품에서 그 어느 때보다 카졸답다. 남성 중심의 발리우드에서 히로인이었던 그녀가 배우의 진면목을 드러낸 작품이 아닐까. 원래 지역어의 작은 영화로 만들려던 것이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제작되어 지금처럼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화이트 타이거>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엉뚱하게도 영화는 성공한 사업가가 국빈 방문 예정인 중국 후진타오 전 주석에게 이메일을 쓰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러며 일개 하인이었던 그가 어떻게 성공했는지의 과정을 돌아본다. 시골에서 릭샤 기사의 아들로 태어난 발람은 가난하지만 영민한 소년이다. 그러나 인도엔 두 가지 인도가 있다. 바로 빛의 인도와 어둠의 인도. 가족은 지주에게 착취당하고 아버지는 대가족에 대한 의무로 시달리는 사이 소년 또한 그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아버지는 결핵으로 병들어 죽고 소년은 학업도 포기하는데, 그때부터 가난을 벗어나겠다는 일념을 가진다. 한 세대에 단 한 번 나타난다는, 정글에서 가장 희귀한 짐승인 백호가 되고자 다짐한 것이다. 기회를 노리던 그의 눈에 지주의 막내 아들이 들어온다. 어렵사리 그의 운전 기사가 되어 함께 델리로 상경한다. 하지만 그는 하인일 뿐이다. 인도에서 하인은 닭장에 갇힌 닭 신세로 다음이 자기 차례란 걸 알면서 눈앞에 죽어가는 동족을 바라보는 처지다. 주인에게 충실했지만 멸시만 당하며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고 해고될 처지가 되자, 마침내 그의 두 눈은 정글의 한 마리 백호처럼 날카롭게 번득인다.
한 사내의 성공기지만 가히 아름다운 얘기는 아니다. 다만 소설 원작인 영화는 그 정도가 아니면 벗어나기 어려운 사회적 한계를 강조하려는 듯하다. 발람은 신분을 극복하는 방법이 범죄 아니면 정치라고 말한다. 요즘 인도 영화는 좀처럼 웃고 떠들며 춤추지만 않는다. 두 영화는 각기 남녀 주인공을 내세우고 분위기와 문제의 해결 방식 또한 판이하지만, 지난 일을 회상하며 사회 이면의 문제를 이야기에 녹여낸다는 점에서 문제적 영화 대 영화로 함께 두고 비교해볼 만하다. 노골적인 현실이 드러나지만, 한 발 물러서 냉소적으로 흘겨 보기에 영화는 차디찬 쓴 맛 끝에 긴 여운을 남긴다. 무엇보다 반가운 건 한국의 인도 영화팬들도 당장 이 두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해설
*결혼과 작가의 인생 사이에서 불화를 겪으며 선택해야만 했던 나얀, 아이들과 집을 나선 그녀는 아이들로부터 전 남편의 성을 지우려 긴 법정 싸움을 한다. 결혼 생활과 달리 그녀의 문학은 찬란하게 빛난다. 한편 이혼이 터부시되던 시대, 엄마의 싸움은 딸에게 큰 상흔을 남긴다. 아누는 결혼을 하지 않고 외국인과의 동거로 가진 아이를 홀로 키운다. 엄마는 딸의 상처를 뒤늦게 깨닫는다. 그녀가 보수적인 가정에 딸을 결혼시키며 상견례 하는 장면은 압권이다.
**어머니는 술을 즐기고 딸은 담배를 피우며 거친 욕설을 입에 달고 산다. 남자는 좋지만, 결혼은 싫다. 일부일처제는 건강에 해롭다며 아누는 말한다. "남자는 티슈 같은 거야. 아무리 시원하게 풀었다고 코를 푼 휴지를 간직하진 않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