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인채

[대국의 거짓말 ⑥] 인도와 중국, 대륙의 관점


2002년 나는 인도와 중국 두 곳 모두에 머물렀다. 겨우내 인도에 머무르다가 일정상 불가피하게도 귀국하자마자 곧바로 짐을 정비해 중국으로 건너갔던 것이다. 다시 반년 가량 중국 서안에서 체류했다. 마침 한국은 월드컵으로 들썩이던 시절인데, 나의 인생은 전혀 다른 이유로 요동치고 있었다. 그땐 아직 역마살과도 데면데면한 사이였는데, 돌이켜보니 그때가 중국과 인도를 오가며 혼자만의 핑퐁 라이프를 시작한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모래사장에 앉으니 인생의 밀물이 들어와 발을 적시기 시작했다. 인도와 중국이라… 나름 살 길을 도모한 것이지만, 둘 다 취하는 건 하나만 못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긴 젊은 혈기에 당찼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들쑤시고 다녔으니까… 두 대국을 바라보던 나는 무모하고 다소 오만하기까지 했다. 모르면 용감하다. 그래도 그건 옳았다. 무모하고 오만한 것이 항상 틀린 건 아니었다. 그래서 분명 그때가 나의 리즈 시절이었다.


*사진 : Encyclopedia Britannica


난생 처음 두 국가를 연달아 경험한 소감은 이랬다. ‘환상적이면서도 참혹하다.’ 감탄과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해야겠다. 자학적인 성격은 아니지만 제대로 강펀치가 두 대 들어왔을 때의 기분이다. ‘망했구나. 그런데 와! 대단하긴 대단한데?’ 그런 느낌으로 인도와 중국의 공존을 시작했다. 이 시점의 에피소드도 많다. 하지만 난 달변가가 못된다. 대륙에서의 일들은 말재주 부족한 이가 함부로 꺼내면 두서없다. 그래서 말 대신 글로 시간을 두고 천천히 그리고 가감 없이 써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일단 여기선 인도, 중국의 초창기에 겪고 느낀 바에 대해 밝혀두면 좋을 듯하다. 가벼운 시작이다. 나는 그때 어떤 느낌을 받았던가?


버거웠다. 무력감도 느꼈다. 비행기에 오를 때만해도 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인도 건너 중국에 이르자 어서 할 일을 마치고 귀국하고픈 심정이 되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 인도를 갔을 때도 델리에 도착하자 이미 긴 여정을 마치고 집에 돌아간 기분이었다.) 하지만 인도는 두 번째, 중국은 초행이었으니 적어도 재차 인도를 대할 때는 약간의 익숙함을 느껴 자신감이 있었는데, 그 자신감은 그만 두 번째 인도에서 깡그리 깨지고 말았다. 한 차례 주욱 봤다고 생각했는데, 난 아는 게 별 없는 여행자였다. 그리고 중국. 중국은 더 말할 필요없이 처음이었다. 아직 설익은 난 이질적인 두 개의 공간을 한 번에 소화하기엔 턱없이 모자란 사람이었다. 두 곳 모두… 너무 크고 넓었다.

그리고 그 두 곳은 또 서로 너무 달랐다. 하나의 대륙 속에서도 내 존재는 미미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두 장소에 공존할 수 있을까? 전혀 인도와 중국에서의 연이은 장기 체류에 활명수를 자주 찾는 지경이 되어갔다. 그땐 ‘일단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철수다. 돌아가서 재정비를 한 뒤 돌아오자고 마음먹었다. 인도든, 중국이든 하나하나를 제대로 바라봐야한다고 생각했다. 만약 둘 다 지속하려면 두 배의 노력을 거듭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본능적으로 어떤 무력감 한계 같은 걸 느꼈던 것이다.

*사진 : The Indian Express


하지만 정작 사회의 숙련공이 되어서도 인도와 중국에서의 일은 공존시키기 어려웠다. 역량이 부족한 내 탓만은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처한 여건 속에서 중국과 인도를 동시에 바라보는 건 거창했다. 중국이면 중국, 인도면 인도하는 식으로 하나를 선택하고 순차적으로 맞닥뜨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까 개인이나 기업이나 대개 그러했다. 그리고 나 또한 다시 두 곳을 연이어 경험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대개 그러하듯 먼저 중국을 경험하고 긴 시간이 기다려 인도로 향했다. 여기서 중국이냐 인도냐를 두고 선택했는데, 사실 여기서 상당한 오류가 생기곤 했다. 선택은 자유지만, 인도와 중국은 전혀 다른 대상이었다. 그 두 곳을 두고 어디로 갈까 저울질 한다는 것이 일면 맞고 일면 틀리다. 각각의 고유성이 너무나도 분명하기에 하나의 경험이 다른 하나의 경험이 되지 않는다. 갈 길을 선택했을 때 선택하지 않은 다른 한 곳도 계속 눈여겨보아야 옳았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했다. 일단 선택하지 않은 곳은 잊혀져갔다. 그러므로 동시에 두 곳을 추구하는 일도 극히 드물었다.



그렇기에 2002년의 내가 겪었던 ‘공존’은 다시 오지 않을 더욱 중요한 경험이 되었다. 그때만큼 직관적이고 객관적으로 인도와 중국을 동시에 바라본 적이 없다. 이런저런 공력이 생긴 뒤엔 표현만 더 거창하고 복잡해질 뿐 근본적으로는 당시의 직관이 유지되었다. 그때 나는 가능한 그곳에서 오래 버텼어야했다.

당시 인도와 중국에 대해 가졌던 직관적 느낌을 정리해보면 이렇다. 인도는 크고 넓으며 다양했다. 그리고… 알수록 더 미궁에 빠졌다. 그리고 중국. 중국도 크고 넓었다. 주어진 환경은 인도보다 익숙하고 적응도 쉬운 듯했지만, 갈수록 그 이면에 도사린 문제들이 하나씩 보였다. 언뜻 가깝고 익숙하니 속은 더욱 복잡했다. 두 곳의 사람들도 확연히 달랐다. 인도는 처음부터 거리감이 크고 서로간의 접점을 찾기 어렵지만 일단 손뼉이 마주치면 수월했다. 반면 중국은 동류라고 여기고 쉽게 다가갈 수 있지만 그것만 믿고 있으면 크게 낭패를 보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술을 좋아하고 얼굴과 머리색이 닮았을 뿐 점차 다른 점이 부각되어 나타난다. 게다가 중국어를 하는 한국인은 한국인, 한국어를 하는 중국인은 결국 중국인일 뿐이다. 중국인들은 사고방식도 인도 못지않게 우리와 다르다.


어쩌면 언어가 그러한 차이를 암시하기도 한다. 인도는 그곳의 언어를 쓰면 금상첨화지만, 다른 방식으로도 소통할 여지는 있다. 반면 중국은 중국어만을 해야 한다. 반면 영어 소통이 가능하다고 그들의 문화를 들여다보지 않으면 결코 가까워질 수 없을 곳이 인도다. 만약 인도는 영어만 써도 된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면, 그건 솔직히 잘못된 인식이다. 언어가 안통하면 적어도 그들의 문화를 충분히 이해하려 노력해야하는데, 알다시피 언어가 그 문화에 다가가기 위한 소통의 도구다. 언어는 단순히 의사소통을 위한 수단이 아니지 않은가. 언어를 배워야한다고 말하는 것보다 언어를 배워 그곳을 좀 더 알겠다는 의지가 필요한 것이고, 언어를 배우지 않는다면 다른 어떤 방식을 써서라도 인도의 문화를 이해해야 그곳에서 생존신호를 켤 수 있다. 재밌는 건 실상 중국도 중국어를 하지 못하면 안 된다. 소통이 안 되니 중국어는 필수인데, (젊은 중국인을 보면 알 듯) 앞으로의 중국인도 점차 영어를 구사할 것이다(언어의 특성상 자신들의 영어 발음이 한국인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주장하는 중국인들도 있다). 소통 이전에 애초 외국인과의 대화에서 중국어를 고집하는 것 또한 그들의 문화적 자긍심에서 출발한다.

인도와 중국, 이 두 곳을 사람 관계에 빗대어 말할 수도 있을 듯하다. 가깝다고 생각한 사람이 의외로 멀고, 멀다고 생각한 사람은 용기를 내면 의외로 가까워질 수도 있다. 「용감한 자가 신부를 얻는다」라는 발리우드 영화도 있다. 일종의 밀고 당김 같은 기분이랄까? 인도, 중국과 일종의 연애를 하는 사람인 내가 그런 비유를 하는 건 당연하다. 다만 다른 이들에겐 다소 무리한 표현이라도 이해해주길 바란다. 그렇게 애정을 가지면 좋겠다는 의미다. 그 대상이 꼭 인도와 중국이 아니더라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관계의 이치란 결국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특히 인도와 중국 문화의 각기 특성상 시장과 자본, 무역의 대상 이상으로 깊이 들여다보아야 유리하다.


한편 인도는 인도, 중국은 중국이라면 이 글도 그렇고 인도와 중국이 자꾸 붙어서 등장한다. 두 국가는 비교 불가지만, 몇 가지 공통점에서 자꾸 같은 선상에 두고 보게 되는 것이다. 비슷한 미래 가치를 지녔다고 할까? 좋든 싫든 모른 척 좌시할 수 없고 언제든 때가 되면 화두의 중심에 서 여러 말이 오가는 곳이다. 결국 그 관심, 그 공존의 핵심은 말하자면 둘 다 크고 인구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 곳이 따로 없다. 크고 많기 때문에 같이 주목한다. 또한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다고 하는데, 막상 다가가보면 어려움이 득실하니 다른 곳으로 가야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틀린 말은 아니다. 인도든 중국이든 어디든 갈 수 있는 적당한 곳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숙명일 것이다. 궁합이 영 맞지 않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꼭 인도와 중국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인도와 중국을 대체할 만한 곳도 없다. 크고 많은 곳에 더 다양한 기회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경쟁은 치열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금 생각해보아야한다. 순간순간의 변곡점은 있으나 물러설 수 없는 곳이니 장기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며 당장의 진폭에 당황하지 않고 내성을 기르며 전투가 아닌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전략을 모색해야한다. 인도와 중국은 다르지만 다른 이유에서 이 또한 두 곳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처음 인도를 마주했을 때 난 처음으로 대륙이란 무엇인지 실감했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다른 가능성 있는 대륙 어디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 대륙에 머무르는 사이 좀 더 ‘대륙의 관점’을 갖춰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경우 이전에 대륙이라는 건 막연한 개념이었다면, 인도와 중국에서 비로소 내가 가야할 길을 감을 잡을 수 있었다. 그때 스스로에게 이런 말을 읊조렸다. ‘단단한 심지가 없다면 차라리 즉시 포기해라.’ 그리고 모순적이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을 했다. ‘계속 도전한다면 더 자주 더 먼 곳까지 가봐야겠다.’ 눈이 확 떠졌다. 지평선은 실로 하늘과 땅이 끝없는 수평을 달리고 있었다. 물론 세상이 넓다는 다른 곳을 가보지 못한 탓이지만, 인도와 중국은 좀 다른 면모가 있었다.

당시 언젠가 높은 건물의 옥상에 올라간 적이 있다. 인도와 중국 모두에서 그런 기회가 한 번씩은 있다. 하늘 위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길거리를 내려다보니 마치 두물머리의 물살처럼 엄청난 인파의 소용돌이가 끝없이 넘실대고 있었다. 그 풍경은 참으로 장대하면서도 세밀했다. 도합 26억의 인구를 담은 거대한 바다… 무섭고도 전율을 일으키는 장면이다. 사람이 바다라면 그 해저 밑바닥엔 무궁무진한 땅이 있다, 그리고 전혀 다른 둘 사이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26억 분의 1이 되어 그 거대한 물살 속으로 나도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인도와 중국에서 가져야할 시각… 바로 대륙의 관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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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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