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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 한국이 싫어서

풍자가 독이 되지 않는 세상이라면




쓰디 쓰다, 그러나 재밌다


제목만 보아도 알겠지만, 이 작품은 일단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를 상당히 냉소적인 시각으로 바라봅니다. 그야말로 도무지 자신의 처지가 나아지길 기대할 수 없는, 즉  한국이 싫어서 호주로 이민 가는 계나의 이야기를 다루었습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호불호가 갈릴 것입니다. 제목만 보아도 표정이 바뀔 분들도 있겠다 생각합니다. '한국이 싫다면서 한국 소설은 왜 썼냐...' 혹 약간의 내용을 훑어보면 더 하겠지요. '그래? 그럼 호주로 가! 이민가면 거긴 뭐 다르냐?' 하는 소리도 귓가에 맴돕니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자칫 작가가 말하는 핵심까지 다다르기 전에 난파당할 수 있는 위험이 있었습니다.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고 공감해도 선뜻 우리가 나고 자란 국가를 비판하고 부정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으니까요. 이 소설은 첨탑에 올라가 탭 댄스를 추는 듯합니다. 


어느 정도 작가의 모험심까지 느껴집니다. 작가라면 그런 모험도 감수할 줄 알아야한다는 듯 말이죠. 특히 저는 소설 속에서 애국가와 호주의 국가의 차이에 대해 비교하는 부분에서 정말 놀랐습니다. 힘 있게 확 치고 나가더군요. 좀 다르지만 한 수 배웠고 나름대로 참고를 해야겠습니다.


아무튼 계나와 다른 등장인물의 말과 행동을 비난만 한다면, 이 소설은 결코 달갑지 않을 것입니다. 기자 출신이라 그런지 작가도 참으로 날카롭습니다. 시종일관 날을 세웁니다. 저는 그 서슬 퍼런 날이 마음을 후벼 파 읽다가 슬프고 분노한 나머지 여러 번 책을 덮었습니다. "그래서... 가망이 없단 건가? 떠나라는 거야 뭐야!"

하지만 그럼에도 곧 항복하고 제자리로 돌아와 다시 책을 열고 계속 이어서 읽어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 하루 탐할 만한 한웅큼에 잡히는 짧은 소설이고, 무엇보다 재미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재미있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심하게. 



웃는 얼굴에 침을 뱉을 순 없으므로


아마도 상당한 무거운 소재를 다루며 적나라한 아픈 현실을 도려낸 대신, 작가는 위트와 유머를 강화한 모양입니다. 심각하지만 이게 웃고만 있을 얘기는 아닌데 시종일관 키득거리고 있습니다. 이민을 가며 일어나는 에피소드인데 뭘 또 그리 재밌을까 싶겠지만, 바로 그 처절한 에피소드들이 아이러니하게도 이 작품의 비관적인 어둠을 상쇄한 빛으로 작용합니다. 주인공 계나의 남자들, 친구 등 주변 인물들도 각별히 섬세하게 묘사하지 않고도 생동감이 넘칩니다. 


주인공 계나에게도 공감하지만, 계나의 친구들도 무릎을 칠 만큼 우리들을 닮았습니다. 특히 주인공 계나의 동생의 남자 친구인 베이시스트가 절절하게 와 닿습니다. 우리는 그 친구처럼 그래도 조금만 더 노력해보자는 마음으로 현재를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이런 싱크로율 높은 인물, 이야기는 아마도 작가의 철저한 취재와 이야기를 만들고 다듬는 능력이 빛난 것일테지요. 남성 작가가 여성 화자를 내세워 무심한 듯 덤덤하게 내뱉게 만드는 구어적 문체도 효과를 발휘합니다. 


그러므로… 만약 이 소설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만 떨쳐낼 수 있다면, 아마도 많이 공감하고, 통쾌해 하며 치유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평소 이런 생각을 가진 분들은 재밌게 읽어보실 것을 권하고, 설령 제목부터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왜 그들이 그런 소리를 하는지 한번 들어본다는 심정으로 읽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읽히는 속도가 경쾌합니다. 일찌감치 "아니 우리나라가 왜 어때서!"라고 하진 마시고요.


이 소설이 결코 국가를 버리고 호주로 가라고 권장하는 건 아닙니다. 계나에겐 그것이 호주 이민으로 표현될 뿐, 결국 이 사회에 바라는 건 어디에 있든 그 구성원이 계속 행복을 추구하며 조금은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어야한다는 의미죠. 이 사회가 좀 더 희망을 줄 수 있어야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저 스쳐지나가는 농담일까봐


물론 약간의 불만은 있습니다. 심각한 소재를 진중하게 다루지 못하면 자칫 가벼운 듯한 느낌도 가지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선 (또 한편으로는) 이 소설 자체가 지금의 세상을 풍자한다고 여겨집니다. 작가의 의도가 있겠지만 다소 장난스럽다고 할까요? 


요즘 진지한 글 싫어합니다. 문학계도 형편이 어렵다보니 신형 엔진을 개발하듯 자꾸 새롭고, 신선하며 돈이 될 만한 것을 바랍니다. 깊은 주제의식보다는 재밌는 이야기가 강조 되죠. 골치 아픈 것 싫습니다. 매사 너무 진지할 필요도 없고요. 재밌고 유쾌한 일이 더 많았으면 합니다. 진지하기엔 사는 게 힘듭니다. 어쩌면 그 자체로 이 소설과 무관하지 않는 현실입니다. 다만 이런 이야기는 어느 정도 진지함이 있어야 누구든 상대도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겁니다. 이 풍자극이 단순히 재밌지만 않아야할 텐데 말이죠. 


한국에서의 행복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한국이 싫어서 떠날 지라도 좀 더 진지한 마음으로 떠나야하는 것 아닐까요? 우리 각자의 행복을 위한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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