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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경에는 삼림이 없다

왕가위, 중경삼림 Chunking Express



중경엔 딱 한번 가본 적 있습니다.

한때 중국은 일로 자주 방문하던 곳이지만, 유독 중경만은 갈 기회가 없었죠. 반면 <중경삼림>은 수없이 보았습니다. 비디오테이프가 늘어나도록, DVD가 긁히도록… 가만 보면 시대가 영화를 외장하드에 가둔 이후, 오히려 보지 않게 된 듯도 합니다. 풍요 속 빈곤이랄까요? 언제든 볼 수 있으니 도리어 소홀해집니다. 그래서 한 가지 세운 사사로운 목표가 있는데, 앞으로 살면서 매일 영화를 보고 마음에 남는 건 글로 기록해두자는 다짐입니다. 그리고 오늘 그 다짐이 닿은 곳이 <중경삼림>입니다.





<중경삼림>의 스토리는 그리 복잡하지 않습니다. 굳이 정리하면 사랑과 이별 후 미련 그리고 다시 사랑으로 이어지는 ‘사랑에 대한 단상’이랄까요? 하지만 영화의 표현과 언어 그리고 편집은 매우 복잡합니다. 실연한 경찰 223(금성무)은 마약 운반을 하다가 도망자 신세로 전락한 여인(임청하)과 만납니다. 한편 애인과 헤어진 경찰 663(양조위)도 실연을 당하고 페이(왕정문 분)를 알게 되죠. 그리고 페이는 경찰 663을 몰래 스토킹 합니다. 이어지지 않고 듬성듬성한 이야기는 밑도 끝도 없는 듯 줄거리조차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대신 영화는 느낌과 감성으로 꽉 채워지고 묘하게 통하며 이어지죠. 관객은 영상, 배우의 연기, 대사, 음악에 빠지고, 사소한 무대 장치에 감정을 이입하게 됩니다. 유통기한이 지난 통조림, 조깅, 선글라스, 폭식, 과음, 관음, 냅킨… 모든 것들이 마치 한바탕 정신없이 소용돌이치는 듯하지만 또 그 하나하나는 뇌리 속에 각인됩니다.


이야기보다 스타일이란 느낌입니다. 감각적인 영상과 가슴을 휘젓는 음악, 왕가위 감독은 원래 스토리텔링이 아닌 편집의 귀재라고 합니다. 감각이 돋보이고, 그 감각은 후 작업을 통해 더욱 빛나죠. 계획은 다소 듬성하고 각본을 정해놓지 않은 채 일단 많은 장면을 촬영한 뒤, 자르고 이어 붙여 완성하는 방식입니다. 감독의 트레이드마크처럼 여겨지기도 하는데, 배우와 스텝은 고충이 있다고 해도 그 결과를 보면 해볼 만한 고생이었다고 술회하기도 했습니다. 감각적인 편집에서 돋보이는 건 이야기보다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어찌 보면 이야기는 단순하고 불친절하지만, 배우는 인상적인 장면마다 날개를 단듯합니다. 비록 애써 공들여 연기한 장면이 통으로 편집되어버리는 경우가 있어도, 완성된 작품에선 결국 배우가 돋보입니다. 양조위, 금성무, 왕정문이 그 수혜자고, 다신 어렵겠다 투정 부린 장만옥도 다를 바 없습니다. 감독은 한때 스타일을 선도했고, 배우들은 빛났습니다.



일찍이 이토록 빛날 수 있을까? 어찌 보면 홍콩 배우들은 그 나물에 그 밥입니다. 홍콩 영화판이야 원체 좁은 곳입니다(요즘엔 중국 본토도 그렇게 느껴집니다). 알려진 배우들은 이 영화 저 영화 여기저기 가리지 않고 나오고 또 나옵니다. 홍콩 느와르 시대는 덕욱 굉장했는데, 심지어 자신이 찍은 영화의 아류작에 배우 본인이 출연하니… 그 ‘돌려쓰기’에 감탄했던 적이 많습니다.


그건 감독도 다를 바 없었습니다. 중국 반환을 앞두고, 홍콩은 느와르가 큰 인기를 끌던 시절, 수없이 많은 영화와 아류작이 양산되었는데, 감독이 모자를 지경이었죠. 이때 왕가위는 막 극작가로 데뷔해 이렇다 할 인지도가 없었지만, 유명 제작자 등광영의 눈에 들어 감독으로 데뷔하게 됩니다. 그렇게 탄생한 영화가 <열혈남아(1988년)>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평가는 다르지만) 당시 <열혈남아>는 완벽한 실패작으로 기독됩니다. 피비린내 나는 느와르 액션을 원했던 관객들의 기대를 배신했기에, 관객들은 야유를 보내며 영화를 외면했죠.


시대를 앞선 감이 있었습니다. 손쉬운 권총과 총알 대신, 감정의 총알로 모두의 마음을 죽이려 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개인의 아픔과 고통에 무덤덤한 시대에 던진 감성 폭탄이랄까요? 당시 <열혈남아>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던 영화로 보였습니다. 눈을 밖으로 돌려봐도 그렇습니다. 세상은 흑과 백으로 양분되어 있는 듯했고, 람보나 코만도처럼 일당백의 총질을 하면 모두들 만족했죠. 


다만 이제는 다릅니다. 유덕화, 장만옥, 장학우… 당시 등장했던 배우의 면면만 봐도 설렙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폼생폼사의 대명사, 감성 멜로 액션의 명작이 되었고, 이후 많은 남성들이 이마에 피 흘리며 바이크를 모는 로망을 가지게 만들었죠. 장만옥이 있든 없든.


그나마 <열혈남아>도 감독의 뜻대로 만들어진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당시 제작자 등광영이 왕가위의 각본을 마음에 들어할 리 없었습니다. 그 결과 일일이 숙제 검사를 하듯 각본을 검토받은 뒤에야 촬영에 임할 수 있었다고 하니 배가 산으로 간 영화였습니다. 그럼에도 신금을 울리는 명작으로 남으니 참 용하죠. 이후로도 왕가위는 흥행 감독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명작 중엔 흥행에 실패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비정전>, <동사서독>…


특히 <동사서독>이 재밌습니다. 촬영을 하다가 제작비와 일정 문제로 잠시 촬영을 접고 홍콩으로 돌아왔고, 감독은 <동사서독>의 배우 그대로 옴니버스 영화를 촬영했는데, <중경삼림>과 <타락천사>가 바로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모자란 제작비나 마련하잔 생각이었다는데, <동사서독>도 이후 대단한 명성을 얻지만, <중경삼림>을 보면 명작이란 의외의 산물이기도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중경삼림>은 시작이었습니다. 이후 감독의 스타일은 더욱 가다듬어집니다. <해피 투게더(춘광사설)>, <화양연화> 등에서 그 스타일은 궁극에 달했고 더욱 완성도 놓은 작품들을 선보이게 됩니다. 한때 왕가위 감독의 신작이 나오길 손꼽아 기다리던 때도 있었습니다. 물론 시간은 흐르고 영원한 건 없습니다. <2046>, <일대종사>에 이르러서는 한때 아무리 스타일리시했던 감독도 낡는다는 것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여전히 훌륭하지만 자신의 스타일을 완성해갈 뿐 더 이상 새롭진 못했던 것입니다. 어쩌면 그가 창조한 이미지들이 다른 영화나 상업 광고 등에 너무 많이 카피되어온 탓도 있을 듯합니다. 흔해진 것이죠. 


그럼에도 감독의 영화 유산만큼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중경삼림>과 그의 전성기 작품을 보면 여전히 설렙니다. 홍콩의 이단아, 탈 느와르를 떠나 시대를 이야기하고 영화로 표현하는 새로운 방식이었고, 그건 한국에서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처럼 신선한 충격을 주는 영화는 드물었습니다.


오랜만에 영화를 꺼내어 보며 단 한번 중경에 간 기억을 떠올려 봅니다.

중경에는 의외로 삼림이 없었습니다. 택시를 타고 먼지 가득한 길을 달리는 사이 내내 산업 단지의 건설 현장이 보일 뿐이었죠. 제가 기억하는 중경의 모습은 그렇듯 조금 살풍경했습니다. 심지어 영화의 배경인 홍콩과 중경과는 연결점을 찾기 어렵습니다. 대신 홍콩에는 이주민들의 가게와 저렴한 숙소가 위치한 중경빌딩(청킹맨션)이 있죠. 그래도 그 하루 중경 속을 헤매던 내내 창문 밖을 보며 익숙한 노래를 읊조렸습니다. 마치 귓가에 들리는 환청처럼 <몽중인>이나 <캘리포니아 드림>이 끝없는 도돌이표의 악보처럼 되풀이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영화엔 중경도 삼림도 없는 것인데… 기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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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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