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디터
포기하지 말고, 롱 웨이
이완 맥그리거의 <롱 웨이 라운드>, <롱 웨이 다운>

그냥 한번 꺼내본 말이 현실이 됩니다. 2004년 영국 배우인 이완 맥그리거와 찰리 부어맨은 영국 런던에서 출발해 중 유럽을 거쳐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몽골, 시베리아, 캐나다를 거쳐 미국 뉴욕까지 여행합니다.
세계를 횡단하는 여정입니다. 그것도 모터사이클을 타고 말이죠. 물론 드넓은 세상 모든 곳을 한 땀 한 땀 거친 세계 일주나, 완벽한 지구 횡단과는 거리가 있지만, 롱 웨이 라운드라는 제목대로 가장 먼 길을 달린 횡단이라는 데엔 이론의 여지가 없을 듯합니다.
이완과 찰리 등 일행은 멋진 길을 마음껏 달리며 한없는 자유를 느끼지만, 때론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지역을 거치고, 험난한 도로를 달리며 고난을 겪습니다. 여정에서 마주친 좋은 사람들과의 의외의 인연에 반가워하는 한편, 무서워 벌벌 떠는 일도 생기죠. 때론 포기하고 싶지만 이미 먼 길을 왔고, 돌아갈 바엔 차라리 계속 전진합니다. 숱한 위기와 난관 속에 당황하지만, 가진 지식과 경험 그리고 임기응변을 동원해 하나씩 극복해나갑니다. 그렇게 끊임없이 나아가는 사이 그들은 더욱 단단해지고 또 굳건해집니다. 끝이 보이지 않을 것만 같던 긴 여정은 조금씩 완성되어 가고, 이완과 찰스는 목적지에 가까워집니다.

한해의 4월에서 7월까지 한 분기에 걸친 여정이고, 여행을 계획하고 준비한 기간까지 합하면 일생에 한 번 겪기도 어려울 일생일대의 여행입니다. 이걸 두고 ‘인생 여행’이라고 하나요? 35,960 킬로미터라는 주행거리가 그 답을 대신해줄 듯합니다.
모두에게 보여주기 위해 촬영된 여행(모험) 다큐멘터리지만, 그 누구보다 이완과 찰리 두 사람에게 행복한 여정입니다. 그 행복함이 화면을 통해 고스란히 전달됩니다. 그래도 꿩 먹고 알 먹고… 비단 로드 트립, 오토바이 여행자들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준 여행입니다. 그 여정이 동명의 책으로 묶여 출간되기도 했죠.
그리고 한 번 더 꼭 함께 가자는 약속 또한 현실이 됩니다. <스타워즈>를 촬영하던 내내 몸이 근질근질했을 이완은 역전의 용사들, ‘롱 웨이의 전우’들과 다시금 의기투합합니다. 이제 이완은 모터사이클 없인 못 사는 마니아입니다. 좀 더 어릴 적부터 그 매력에 빠져 있던 찰리는 그 사이 다카르 랠리를 참여한 뒤죠. 그는 좀 더 중병에 빠진 까닭에 이후 배우는 그만두고 모험가로 활약하게 되죠. 어찌 보면 배우들의 지루한(?) 일상생활 속에 모터사이클 모험은 인생의 낙이 된 듯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한번 떠납니다.
이번 여정은 종단 <롱 웨이 다운>입니다. 2007년 이완과 찰스 일행은 영국 끄트머리의 스코틀랜드 존오그로츠에서 출발해 유럽과 지중해를 거쳐 북아프리카로 향합니다. 거기서 다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케이프타운까지 모터사이클을 타고 내려갑니다. 이번에는 여정의 도중에 이완의 아내가 합류하죠.
속편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다큐멘터리도 보는 그대로 믿긴 어렵지 않을까?’ <트루먼 쇼>처럼 둘러싼 모든 것이 ‘쇼’인 시대인 듯합니다. 다큐와 쇼의 경계는 모호해졌습니다. 그렇기에 선뜻 믿지 못해 매 순간 진실함에 의문을 품습니다. 더욱이 <롱 웨이 시리즈>는 배우가 주인공이고, 프로젝트에 사활을 건 프로듀서들, 촬영 편집 팀이 모터사이클과 지프 차량을 타고 동행합니다. 아무리 사실 그대로를 담았다고 주장해도, 일정 부분 (상황에 걸맞는) 각본과 숙련된 연출과 편집이 관여했을 법합니다. 완전한 조작까진 아니지만, 완전히 관여하지 않았다고 보긴 어렵지 않을까요? 가령 여행에서 겪는 고난이나 인물 간의 갈등 등 특정 부분은 극화되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본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건 정도의 문제라고도 생각했습니다. 본질이 훼손되지 않는 진정성의 문제에서 <롱 웨이 시리즈>는 실제 횡단하고 종단했다는 건 변치 않는 사실이니까요.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오지 탐험으로 생존법을 가르쳤던 생존 전문가 베어 그릴스에게 바로 그런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사람들은 정말 그가 아무런 도움 없이 생존하는지 의심을 품으며 의혹을 제기합니다. 이에 대해 베어 그릴스은 떳떳하게 답변하죠. “저도 돌아가야 할 가족이 있습니다.” 베어 그릴스은 TV 속에 뛰어난 쇼맨십을 발휘하는 캐릭터입니다. 실제로도 생존 전문가지만, 그 자신이 이야기하듯 실제 그보다 뛰어난 전문가도 있죠. 그는 거미와 뱀을 먹으며 숱한 위기 상황을 극복해 나가지만, <인간과 자연의 대결>에서 그는 결코 죽어서는 안 됩니다. 그가 생존하는 것이 핵심인 방송입니다. 애초 그가 지나친 위험 상황에 처해서는 안 되는 셈이죠. 그렇다고 그것이 모두 조작이다, 베어 그릴스은 진정성이 없다고 봐야 할지… 다큐멘터리의 진정성에 대해선 항상 그런 고민을 가지게 됩니다. <롱 웨이 시리즈>처럼 여행을 소재로 할 경우와 달리 사회 문제에 관해 좀 더 파급력이 큰 다큐멘터리도 있으니까요.
물론 <롱 웨이 시리즈>가 우리에게 끼치는 영향이라곤 기껏해야 여행병이 도지는 것일 겁니다. 어쩌면 백패킹, 로드트립, 캠핑을 자극하고, 모터사이클에 빠지게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무엇이든 중독성이 있어 보입니다. 아무튼 <롱 웨이 라운드>의 끝에 꼭 숨겨두었던 뭉클한 감동이 몰려왔듯, 속편 또한 처음부터 그 여정의 끝을 알 듯하지만, 그럼에도 아무렴 괜찮다는 심정으로 보았습니다. 내용을 짐작하고도 어떤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문득 따라 해 보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꼭 모터사이클은 아니더라도 로드 트립의 방식은 다양할 것입니다. 하지만 일상의 울타리 안에 선뜻 용기를 내기 어려웠습니다. 손에 닿기 어려운 무척 거창한 일탈처럼 보였습니다. 그럼 그저 대리 만족으로 그쳐야 할까요?
전 그걸로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스승 오비완을 넘어선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암흑의 힘에 끌려 결국 다스 베이더가 되고 말듯… 끊임없이 이완을 질투하고 부러워하던 전, 결국 어느 날 가방을 메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여행은 결국 자신의 여행이 있을 뿐, 타인의 여행을 모방할 순 없었습니다. 나름의 여행, 하지만 <롱 웨이 시리즈>와는 전혀 다른 여정을 마치고 일상에 복귀했습니다. 덧붙여 그 이후 한동안은, 한없이 ‘다크’해진 지갑을 묵묵히 들여다봐야만 했죠. 암흑의 포스와 함께하길!
그래도 떠날 용기를 준 것에 경의를 표합니다. 전 겁이 많은 사람입니다. 겁이 많아서 미리 걱정하니까, 새파랗게 긴장해버려 아무것도 못할 때가 있었습니다. 아무런 변화 없이 그 자리에 고이듯 안주하며 망설일 때, 이완과 찰스의 여행은 제 무거운 발목을 조금은 가볍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기에 자꾸 눈이 가는 매력적인 여행 다큐멘터리입니다. 시간이 꽤 흐르고 화면도 조금 낡았지만, 지금도 모른 척 처음인 척 다시 1편부터 그들의 여정을 따라 가보곤 합니다. 때때로 양복 대신 가벼운 옷차림새로 구두 대신 운동화를 신고, 등엔 가방을 하나 메고… 그만 멈춘 자리에서 일어나 계속 길을 갈 수 있게 합니다. 그건 꼭 여행에 관한 이야기만도 아닌 듯합니다.
어쩌면 그 길고 긴 여행을 통해 무언가를 성취한 건 이완과 찰스뿐만은 아닐 겁니다. 이완과 찰스의 여정을 보다가 옆 친구에게 말합니다. 아무래도 혼자는 어려운 여행이죠.
“우리도 저런 거 한 번 해볼까?”
“응, 뭐 죽으려면 너만…”
그래도 굴하지 않을 것입니다. 전 그럴 것입니다. 지금 가는 먼 길, 멈추지 않고 끝까지 롱 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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