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인채
발리우드 히어로 - 크리쉬

*사진 : <크리쉬 3> 중에서
인도의 최대 명절인 디왈리 시즌에 맞춰 개봉한 발리우드 히어로물 <크리쉬 3>가 극장가를 휩쓸고 있다. 일찍이 인도 대서사시의 신과 영웅, 그리고 역사 속 위대한 인물의 초인적인 일대기를 다룬 영화는 많다. 그러나 슈퍼맨, 배트맨 그리고 스파이더맨 등으로 대변되는 할리우드의'맨'들과 비견될만한 발리우드판 히어로의 등장과 성공은 흥미롭다. 2003년 처음으로 등장한 <크리쉬 시리즈>는 현재 상영 중인 <크리쉬 3>에 이르러 발리우드를 대표하는 히어로물로써 자리잡으며 발리우드 역대 최고의 인도 국내 극장수익을 갱신(국내 수익은 첸나이 익스프레스 추월)하며 폭발적인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무엇보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할리우드 경쟁작 <토르>를 압도하고 있다는 점은 놀랍다.
하지만 <크리쉬>에서는 검증된 원작을 바탕으로 한 탄탄한 줄거리와 캐릭터, 화려한 특수효과로 무장한 할리우드에 상당하는 스케일을 기대할 수 없다. 마치 한국 영화 <베를린>을 보고<쉬리>를 다시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또한 발리우드 영화에서 간혹 지적되는 카피 논란에서도 자유롭지 못한데 <크리쉬>의 1편인 <코이…밀 가야>는 인도판 E.T.라는 비난을 받았고, 영화 속에서 스파이더맨의 성장배경과 배트맨의 액션이 연상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쉬>는 속편으로 이어지며 할리우드 경쟁작품을 능가하고 있는데 이는 할리우드가 보여줄 수 없는 인도만의 영웅 캐릭터라는 점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겠다. 외계인과의 교류로 천재적인 능력을 가지게 된 크리슈나의 아버지는 세상에 이용당한 채 배신당하여 살해된다. 이로 인해 아버지로부터 초인적인 능력을 물려받은 크리슈나(리틱 로샨 분)는 그 능력을 숨긴 채 살아가지만 한 여인(프리얀카 초프라)을 만나게 되면서 바깥 세상으로 나서게 되고, 영웅 크리쉬로써의 자아를 찾게 된다. 이 영화 전반에 걸쳐 강조되는 부분은 초인적인 능력을 통한 권선징악보다는 그 인물의 고뇌와 절제에 있다. 그 힘을 이용하고 펼치기 보다는 이용하거나 이용당하지 않는 것이 보다 중요한 덕목으로 그려지는데 이는 바로 금욕의 미덕을 추앙하는 인도인의 종교, 사상 그리고 문화와 잘 맞아떨어진다.
<크리쉬>는 적어도 인도 내에서는 당분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기를 구가할 것으로 보인다. <스몰빌>처럼 인도 벌판을 뛰어다니고, 고담시티스럽지 못한 인도 대신 싱가포르를 누리며,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버지가 살아 있었다는 억지스러운 이야기일지라도 발리우드만의 히어로 캐릭터가 가진 상징성과 고유성 그리고 잠재성은 무궁무진하다.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한 크리슈나는 인도 삼신일체 사상 속 유지의 신 비슈누의 여러 화신 중의 하나로 인도대서사시 <마하바라타>의 영웅으로 등장한다. 매트릭스의 트리니티처럼 가죽코트를 입은 크리쉬가 앞으로 어떠한 발리우드 히어로의 미래를 그려 나아갈 지 지켜보는 것은 흥미진진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