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인채
발리우드 정글 - 팬 對 정글북
링크 : <씨네21> 게재 기사

*사진 : <팬> 중에서
디즈니의 실사영화 <정글북>과 샤룩 칸의 <팬>이 맞붙었다. 발리우드와 할리우드의 정면 대결이다. 자국 영화가 주도해온 인도 극장가지만, 할리우드 역시 활발하게 인도 영화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다만 이들 중 발리우드 히트작과 호각세를 이룬 영화는 드물다. 여건상 발리우드 기대작의 비수기를 틈타 개봉하거나, 상영작과 상영 시간대도 다양성에 목마른 인도의 젊은 관객들에 맞춰진 경우가 많다. 인도에서 흥행을 상징하는 스코어는 10억 루피다. 흔히 ‘10억 루피 클럽’으로 일컬어 지는데 초대형 흥행작의 경우 20억 루피를 넘나든다. 반면 외화의 경우 제아무리 전세계적인 히트작도 인도에서 ‘10억 루피 클럽’에 가입하는 경우는 드물다.* 세계의 흥행 공식이 인도에서 그대로 통용된다고 할 수 없다. 이런 가운데 <정글북>이 개봉 열흘 만에 단숨에 ‘10억 루피 클럽’에 가입했다. 이에 대응한 발리우드는 낼 수 있는 최상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때마침 인도 최고 스타 샤룩 칸의 <팬>이 개봉한 것이다. 아직 초대형 히트작은 없었던 2016년, <팬>은 가뭄의 단비처럼 고대한 기대작이자 발리우드 최고의 흥행 카드 중 하나로 꼽혀왔다. 약간의 시차는 있지만 발리우드와 할리우드 양대 산맥을 대표하는 두 영화의 흥행 대결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되었다.
올해 초 인도는 영화의 나라다운 저력을 보여줬다. 큰 히트작은 없었지만 다양한 영화들이 끊임없이 선을 보이며 몇몇 대작에 의존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관객들은 큰 한방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고, <정글북>은 그 기대에 부응했다. <정글북>은 배경이 인도고, 대자연 속에 소년과 동물이 등장하여 인도인의 정서상 이질감 없는 내용이며, 가족 중심의 인도에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관객 모두의 취향을 만족시킨다. 그런 가운데 현지 검열 당국이 <정글북>은 아이들에게 ‘너무 무섭다(too scary)’는 이유로 제한적인 등급을 부여해 부모 감독 하에서만 관람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이슈가 될만 했다. (미묘한 견제와 텃세라고 볼 수 있으나, 자국 영화도 때때로 까다롭고 엄격한 검열을 받긴 했다.) 이런 상황에서 <팬>은 발리우드의 자존심이자 흥행 갈증을 풀어줄 대항마다. <팬>은 인도에서 가장 많은 팬을 몰고 다니는 샤룩 칸 본인이 팬의 역할로 분한 스릴러 영화다. 영화의 내용은 로버트 드니로가 주연했던 <더 팬>의 인도판을 연상케 한다. 아르얀의 광팬으로 생김새까지 빼닮은 고라브는 아르얀을 동경하며 그를 만나기 위해 뭄바이로 향한다. 하지만 아르얀을 선망한 나머지 그는 엇나간 행동을 저지르는데, 이를 알게된 아르얀은 고라브를 경찰에 넘기는 등 냉대한다. 이 일로 좌절하고 배신감에 빠진 고라브는 얼굴이 비슷한 점을 악용해 아르얀을 곤경에 빠뜨리고, 스타와 팬은 애증 속에 서로를 쫓고 쫓긴다. 영화에서 샤룩 칸은 아르얀과 고라브의 1인 2역을 소화하는데 그가 출연한 이상 흥행 전선에는 이상이 없다. 첫 주말, 올해 개봉작 중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두며 쾌조의 스타트를 끊었다. 다만 높은 기대감에 비해 어느정도 흥행을 거둘지는 의문이다. 지켜봐야겠으나 개봉일, 길게는 첫 주의 성적이 흥행 척도가 되는 인도에서 그 페이스는 기록적인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언제나 자신의 흥행 기록을 스스로 갱신해왔던 샤룩 칸이지만 재미와 작품성에 있어 전작의 아성에 미칠지 미지수다. 그럼에도 국내에서는 한 주 앞서 개봉한 <정글북>을 빠르게 따라잡으면 발리우드의 스타 파워가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 이제 막 샤룩 칸의 영화가 개봉했음에도 이미 다른 배우들의 차기작 소식이 줄을 잇는 곳이다. 산 넘어 산. <정글북>의 성공은 고무적이지만 발리우드 자체가 정글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정글북>의 1주 천하는 의미있다. 인도에서 통하는 영화가 무엇인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모글리는 정글이 아닌 인도 영화판에서의 생존법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참조
<아바타> 14.5억 루피
<분노의 질주 7> 10억 루피
<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 5억 루피
<미션 임파서블 : 로그네이션> 4억 루피 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