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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슈미르 분쟁, 갈등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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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쟁의 기원은 1947년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리 독립하며 영토 분할의 문제가 대두되었다. 역사적으로 이슬람의 영향을 받은 카슈미르는 주민의 77%가 무슬림(힌두교 22%)이었지만, 당시 지배층은 힌두교로 인도로의 귀속을 표명했다. 무슬림 주민들은 이에 반발, 인도와 파키스탄의 군사적 개입 속에 1차 인-파 전쟁이 발발했다. 1949년 UN의 중재로 휴전을 체결(카라치 협정)했으나, 주민 투표 등 중재안은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1963년 인도 총리 네루의 서거 이후 정국 혼란을 틈탄 파키스탄은 인도 점령지에 대한 게릴라전을 통해 카슈미르를 국제 문제로 비화(인도몰이 정책)시키려 함에 따라 2차 인-파 전쟁(1965년)이 일어났다. 인도의 우세로 종전, 舊 소련의 중재로 타시켄트 협정이 체결되었다.
이후 1970년 동서(東西) 파키스탄의 분열로 25만명의 피난민이 인도로 유입되자 인도가 개입, 벵갈 전쟁(3차 인-파 전쟁)이 발발했다. 인도의 승리로 끝나며 방글라데시의 독립이 승인되었고, 1972년 심라 협정이 체결되었다. 카슈미르 분쟁은 종교 분쟁에서 출발, 인도-파키스탄, 인도-중국 간의 영토 분쟁 및 패권 다툼으로 번졌으며 미국, 러시아가 개입하며 국제 분쟁화되었다.
1980년 이후 인도 점령의 잠무 카슈미르 지역의 분리독립운동으로 내전의 성격이 가미되었고, 1998년 인도와 파키스탄이 핵 보유를 선언한 뒤 지금까지 긴장과 이완의 관계를 되풀이하며 대표적인 분쟁 지역으로 고착화되었다. 현재는 인도, 파키스탄, 중국 3국이 얽힌 분쟁 지역이다.

한편 카슈미르는 분쟁의 역사가 무색할 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K2 봉이 위치한 곳으로, 광활한 카슈미르 계곡은 수려한 경관의 관광지이자 고급 양모의 생산지로 유명하다. 전설적인 록밴드 레드 제플린은 명반 <피지컬 그래피티>의 수록곡 ‘카슈미르’에서 이렇게 표현한다.
“오, 태양이 내 얼굴에 쏟아지게, 별들이 내 꿈을 채우도록 해줘 …… 오 마이 베이비, 날 그리로 데려가 주오!”
직접 가보긴 어려워도 발리우드 영화 <카슈미르의 소녀>를 통해 그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인도인이 고아가 된 파키스탄 소녀를 집으로 돌려보낸다는 감동적인 내용으로 오랜 분쟁 이후 시대적 분위기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