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인채
현실과 환상, 인도 방랑 그리고 가난해도 행복하다?

*Photo : Fujiwara Shinya (사진 : 후지와라 신야, 인도방랑)
<인도방랑>에서 후지와라 신야는 말했다.
'걸을 때마다 나 자신과 내가 배워온 세계의 허위가 보였다.'
60년대 말의 인도 여행... 70년대 이후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은 인도에 대한 글 중 아마 손에 뽑히는 아름다운 글귀일 것이다. 뛰어난 글과 적나라한 사진, <인도방랑>은 인도 여행의 바이블, 감성적 나침반이 될 만했다. 그런데 어느순간 여행은 끝나고 인도는 현실의 삶으로 다가왔다. 그때부턴 인도에서 삶을 배웠다는 여행서의 글귀가 모두 허무하게 메아리 쳤다. 바라나시, 푸쉬까르, 강, 사막, 자극, 이완, 죽음, 환각.
여행의 환상은 방향을 가늠하지 못한 바늘이 세차게 헛돌았다. 여행은 아름답고, 글은 아름답고 또 아름다웠을 뿐이다. 나는 그 글귀 자체에서 허위를 보았다. 참과 거짓, 철학적인 고찰을 떠나 각각의 여행자가 가진 아름다운 환상, 그 또한 전체가 아닌 하나와의 일별... 그러므로 인도가 아름답지만, 그 또한 인도를 다뤄야할 수많은 담론 중 일말의 허위에 그칠 수 있었다. '그래서?' 여행의 환상에 깨어난 나는 내가 배워온 인도라는 세계의 허위가 보였다.
그럼 허위가 뭔데, 환상이 뭔데? 그걸 걷어내서 좋을 게 뭐 있는데? 글을 쓰기 시작하며 그건 큰 고민이었다. 아름다운 환상 혹은 거칠고 난해한 현실의 이야기... 인도에 대한 세인의 관심을 기대하는 입장에서 환상에 머물고 싶은 유혹이 생긴다. 인도에 대한 적나라한 이야기는 삼갈 만하다. 아니, 삼가고 싶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에게 인도는 여전히 막연하다. 비슷한 환상의 아류를 뱉어내며 더는 할 말이 없다. 때가 되면 과정만 다를 뿐 모두 유사상표의 제목을 단 글을 써내려 간다. 그러므로 아직도 인도 같은 이야기에 머문다. 그럴바엔 <인도방랑>을 넘어서는 글은 없다. 하지만 그건 내가 알기로 69년의 인도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인도지만 바꾸어 말하면 그간 이 일본인 작가를 능가하는 자가 없던 셈이다. 누군가 도전해야하지 않을까? 그가 느낀 허위와 그의 글에서 느낀 허위까지 넘어서도록.
인도에 대한 우리의 화두도 환상, 허위를 걷어내고 좀 더 진취적일 필요가 있다. 진취적 성취의 목적지에 있어 인도 같은 곳도 없다. 이제 인도는 환상과 허위 속에서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된다.
…그런 고민을 거친 푸념 대신 이렇게 표현한 적이 있다.
* * *
인도에 대한 오해는 이렇게 시작된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카메라가 다가가고 하층민과 아이들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며 물어보는 것이다. “행복합니까?” 그들은 거기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면 나레이션은 인도는 없어도 행복하고, 가난해도 만족하며 살아가는 곳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인도인은 매우 순수하고 종교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내생을 기약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인도인들은 대부분 순수하고 착하다.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기에 일부는 타락하고 악한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다. 인간 사는 사회인 것이다. 종교와 계급이 인도 사회를 지탱하고 질서 유지의 역할을 해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가난해도 행복하다? 인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며 하고 싶은 말은 인도인들에게 희망과 절망이 공존하고, 살만하면 행복하지만 가난하면 불행해진다.
하층민의 경우 내생에 대한 희망을 가져도 현재는 절망스럽다. 종교적이고 영적이며 신비로운 인도의 매력을 느끼는 것은 누구나 같다. 하지만 너무 그러한 측면에 기울어져 바라보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카메라 앞에서 해맑게 웃는 하층민과 아이들은 누구일까? 때묻지 않은 순수한 사람들이다. 카메라를 보는 일도 드물고, 자신에게 질문을 하니 마냥 수줍게 웃는다. 그 순간이 행복할 뿐이다. 카메라를 보면 아직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친근한 표정을 지어주는 곳이 인도다.
하지만 가난해서 행복한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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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또한 아직 허위일까?
아마도 인도에 관한 글을 쓰는 한 평생의 숙제가 될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