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인채
[대국의 거짓말 ③] 왜 인도인가!

사진 : 홍상수 감독의 영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중에서
인도는 중국의 대안(代案) 시장이 아니다.
중국은 중국이고, 인도는 인도다. 인도는 인도에 맞는 접근 방식으로 꿰차고 들어가야 하고, 중국보다 쉬울 리 없고, 중국인의 상술, 셈법만큼이나 인도인의 그것 또한 굉장하다. 우열을 떠나 다르다. 자신이 찬 중국은 이제 더 어려운 시장이 되었는데, 일찍이 인도의 시장의 성장 속도, 실질적인 파이 크기, 사업 환경을 따지고 보면 인도는 못지않게 고난이 예상된다. 태생적으로 중국보다 문화적인 거리감도 크다. 그들의 종교, 사상, 생활 방식은 앞으로도 계속 낯설 것이다. 또한 사업 분야에 따라서는 막상 들어가 보면 아직 시장이 미형성 되었거나 태동기에 그쳐 당장 시장 크기는 생각보다 작다.
그러므로 자연히 우리는 중국도 인도도 아닌 다른 시장에 눈을 돌린다.
필자는 글을 쓰기 이전에 중국과 인도 비즈니스의 지역 전문가였고, 인도와 중국에 올인하기 이전에 한 명의 직장일 뿐이었다. 어느 사업가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막막한 상황에 이르자 전략회의에선 모두들 이렇게 말했다.
"인도든 중국이든 어디든 시장을 찾아오란 말이야!"
물론이다. 회사 이전에 인도와 중국에서의 난관은 내 발등의 불, 나 자신의 생존에 위협이었다. 그건 파봐야 없으니 다른 살 길을 찾아보란 충고도 들은 적이 있다. 버티기 위해서는 성과를 내야 하는데, 희망을 품었던 중국과 인도에서 현실적인 좌절을 느끼니 당연한 일이다.
회사는 동유럽, 러시아, 남미, 동남아, 중동도 찾는다. 맞다. 국내외 기존 시장의 수요는 이미 한계에 다다르는데, 중국이 어렵고 인도도 쉽지 않으니 다양한 기회를 모색해야 한다. 가령 아프리카나 동남아는 이제 막 새로운 기회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솔직한 말이지만 나도 혹한다. 다른 시장도 눈길이 간다. 남의 떡이 부러운 게 아니고, 이쪽이 힘들 때가 있다. 감당해야하지만 이쪽만 바라보는 운명이 가끔 얄궂게 느껴진다. 때론 해가 지지 않던 영국의 황금기를 떠올린다. 영국처럼 뻗어나가야 하는데… 난 그처럼 진취적이지 못한 건 아닐까 반성한다. 더 멀고 더 낯선 곳이라도 기회가 있다면 진취적으로 나아가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아야할 운명이다. 반도국 역시 섬나라와 다를 바 없다. 해상국이 되어야한다. 바다로 대륙으로 (이 시대에는 하늘과 땅까지) 계속 뻗어나가지 않으면 시들고 만다. 아프리카, 동남아 뿐 아니라 전세계로 시장을 다변화해야한다.
다만 이건 분명하다. 어느 곳이든 만만한 시장은 없다. 새로운 시장에 진출한다는 건 달걀로 바위가 깨질 때까지 끊임없이 내리치는 공성전이기 때문이다. 인도, 중국, 동남아, 중동, 아프리카, 남미 모두 그렇다. 특정 분야에서 쉽게 그 시장의 진출을 이뤘다고 다른 분야가 그렇다는 보장은 더더욱 없다. 비즈니스의 운은 순전한 운이 아니라 그런 노력의 과정에서 얻는 부산물이다. 그리고 그 운을 쟁취 하면 마침내 비집고 들어갈 수 있다. 정상적인 방식에서 어떤 요령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반갑고 바람직한 일이다. 기회를 찾아 시장을 좀 더 다변화해보는 것도 하나의 노력이다. 노력 속에는 어디든 알고 가는 것도 포함된다.
시장 다변화도 노력의 과정이라고 이야기하는 건, 그럼에도 다른 곳엔 '13억의 시장'이 없기 때문이다. 인도와 중국을 합하면 26억 시장이다. 가령 동남아, 아프리카 등 다른 시장의 인구는 13억이 될 수 없다. 결국 어느 시장으로 진출해도 인도와 중국은 여전한 숙제가 될 것이다. 13억 시장을 포기할 수 있는가? 설령 그것이 당장은13분의 1의 크기 혹은 그 미만에 그치더라도 이미 크다. 크지 않아도 이미 세계의 모두가 어느 정도 밑 작업을 해놓았는데, 시장이 성장한 나중에 기웃거리면 기회를 얻기 더 어려울 것이다. 중국 비즈니스를 하며 인상적인 일이 많다. 그 가운데 하나는 일본 기업의 후퇴다. 중국인의 정서상 일본 기업은 중국에서 자리를 잡기 어렵지만, 그들은 그럼에도 중국에서 완전 철수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최근 중국에서 생존을 위협받는 한국 기업들의 입장도 그렇다. 퇴로를 마련하되 완전 철수는 하지 않아야한다. 등을 돌리고 완전히 나가면 13억 시장은 사라진다. 성장을 추구하지 않는 기업이 있는가? 어떤 시장도 그만한 비전을 대체할 곳은 없다.
오로지 인도의 잠재력이 중국과 대등하다. 그래서 인도를 말한다. 어렵지만 계속 화두를 꺼내고 논의한다. 그래서 인도, 인도 하더니 또 소리 소문 없다가 다시 인도라는 얘기다. 중국도 그렇다. 인도와 중국 모두 포기하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왜 인도인가?'는 충분히 설명된다. 어렵다고 나가면 그들도 붙잡을 리 없다. 온다고 두 팔 벌려 맞아주지 않는다. 외국인들이 한국 사람들의 성격이 꽤 급하다고 한다. 급한 만큼 놀라운 성과를 빠른 시간에 이룩했다. 장점이 많다. 단점도 있다. 필자도 불같이 급한 성질 때문에 느림의 미학 인도에서 힘겨웠다. 모두들 빨리 무언가 나오지 않으니 빨리 무관심해 진다. 빠른 것보다 더 대단한 건 누구나 알듯 빠르고 단단한 것이다. 당장의 부침과 성패를 불문하고 치열하고 끈질기게 인내력을 발휘해야 한다. 시장을 다변화하면서 의존을 줄이되 중국을 지켜야하듯 인도를 모른 척 할 수 없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중에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는 작품이 있다. 새삼 절묘한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내용, 취지와는 무관한 의미지만, 인도 역시 그렇다.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지금의 인도와 그때의 인도는 너무나도 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