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인채
[대국의 거짓말 ⑤] 인도와 중국의 명절 이야기

*사진 : 중국의 귀경길
중국의 명절
“기회는 지금 뿐이야!”
2002년, 중국 산시성 시안에서 명절 연휴를 맞은 난 그 절호의 기회를 틈 타 아주 조금만이라도 중국 대륙의 일면을 엿보고 싶었다. 사실 진시왕릉, 병마용 뿐 아니라 중국의 오악(五嶽), 다섯 영산(靈山) 중 하나라는 화산(華山) 등 당시 머물고 있는 시안 근교만 해도 탐해야할 곳이 무궁무진했다.
그런데 제아무리 시안이라도 매일 드나드는 앞마당이 되면 긴장과 설렘은 풀리는 법이다. 명절 연휴가 되자 나는 더한 무언가를 갈망했다. 그래서 연수원에서 만난 또래의 친구와 둘이서 ‘조촐하게’ 중국의 일부를 탐험하기로 했다. 그간 아껴온 쌈짓돈을 풀어 시안에서 상하이를 거쳐 장쑤성 쑤저우까지 기차를 타고 1300여 킬로미터의 대륙을 가로지른 뒤, 쑤저우에서 저장성 항저우까지 뱃길을 타고 수양제의 대운하를 음미하며 남하할 생각이었다. 마지막은 항저우의 시호에서 소동파의 그림자를 쫓으며 시를 한 편 읊조리는 것이다. 생각만으로도 꿈같은 여정이었다. 조촐하게 둘러볼 생각이었는데, 젊음은 그보다 거창했다.
문제는 그 계획이 그야말로 당돌하고 거창한 계획이란 점이었다. 가능한 빨리 알아보기 시작했지만 연휴가 다가오자 기차표를 구하는 건 이미 하늘의 별 따기였다. 말로만 듣던 13억의 귀성길이었다. 기차역 앞은 교통편을 예매하기 위한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여행의 의외성이니 혈기 운운하며 계획성이 없이 오만했던 것을 탓해야하겠지만, 원칙대로 긴 줄에 동참해 표를 얻어야할 것이었다. “그렇게까지 할 순 없잖나?” 최초의 호기와는 달리 중국 기행에 대한 의지는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그런 우리의 고민을 들던 한 중국인 친구가 나섰다. 그는 흔쾌히 자신이 도와줄 수 있을지 모른다고 했다. “조금 비싸도 상관없어?” 알고 보니 그의 아버지가 역무원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 친구만 믿고 (우리가 정한) 출발 당일 날 기차역으로 향했다. 우리는 중국 친구의 안내를 받아 역사의 구석에 위치한 화물 출입구 앞에 내렸다. 그러자 누군가 나와 샛문을 열어주었다. 그가 안내해주는 대로 따라가 그대로 열차에 올라탔다. 물론 표 값은 이미 제대로 지불했다. 다만 기회의 문제다. 누가 표를 구할 수 있느냐 그 우선권이 누구에게 있냐는 것이 중요하다. 조금 비싼 예비 좌석, 조금 웃돈을 들이더라도 구할 수 있으면 행운인 것이다. 매진이 되었더라도 일부 좌석은 당일에는 가끔 예약이 취소되는 표가 있고, 예비로 놔둔 당일 좌석도 있는데, 역무원인 친구의 아버지는 그 표를 우리에게 돌려준 것이다. 줄을 서는 대신 역무원인 자신이 역에서 미리 사두는 방식이다.
물론 이런 경우를 항상 기대하긴 어렵다. 우선 행운 이전에 편법이다. 아마도 누군가는 그 표를 구하기 위해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르니까… 돌이켜보면 자랑할 만한 일도 아니고, 조금 양심에 찔린다. 다만, 중국은 그런 방식 즉, 연줄이나 인맥이 작동하는 곳이다. 그것을 능력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또한 더 중대한 일에서 중요한 기회는 아무나 얻을 수 없을 것이다. 기차역이나 관공서 업무에 한해서는 인도도 유사한 문제를 겪고 있다.
개혁의 몸부림이 지속되고, 시스템을 갖추어 가며 앞날은 개선만을 기대하지만, 당장 오늘의 현실은 그렇다는 얘기다. 무작정 기다릴 여유를 가지지 못하면 무언가 수를 내어야 하고, 그런 수를 마련하지 못하다면, 포기하고 뒷줄로 돌아가 가만히 기다려야 한다. 이런 이야기를 해야겠다. 인구 대국이란 태생적으로 모든 일에 그런 물리적인 특성을 지닌다. 인도의 경우, 영국식 관료주의를 배워서 그렇다는 것 이전에 어딜 가나 사람 많고, 요구는 다양하며 경쟁은 치열하다. 그것이 굳이 줄을 선다는 물리적인 기다림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13억 뒤에 줄을 서는 일은 여전히 여간 까마득한 일이 아니다. 특히 나처럼 빠른 걸 좋아하는 사람에겐 말이다.
그렇게 우려곡절 끝에 출발한 대륙 횡단의 여정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사진 : 인도의 홀리 축제
인도의 휴일
중국의 명절 연휴와 법정 공휴는 인도의 그것보다 매우 단순명료한 편이다. 올해를 보면, 원단(신정, 1일), 춘절(구정, 7일 연휴), 청명절(3일 연휴), 노동절(1일), 단오절(3일 연휴), 중추절, 국경절(8일 연휴)로 여섯 차례이네, 매년 연말 국무원이 공지한다. 중국 내외 모든 단체, 기관 및 사업체가 중국에 관해서는 이대로 따르면 되므로 복잡할 것이 없다.
반면 인도의 경우는 그만큼 딱 잘라 말하기는 좀 어렵다. 중국만큼 한 번에 긴 연휴를 가지는 경우는 적다. 그 이유는 건국 기념일, 독립 기념일, 간디 생일 기념일(Gandhi Jayanthi)의 3대 국경일 외에는 대부분 종교적 기념일, 축제이기 때문이다. 한국으로 치자면 대표적으로 설날과 추석에 가까운 홀리와 디왈리 등의 힌두교 축제가 가장 큰 명절인 셈인데, 일반적으로 당일에 쉬는 경우가 많아 5일 이상의 연휴는 기관, 사업체의 재량에 따라 다르다. 이외에도 다양한 지역, 종교에 따라 다른 축제가 존재해 광범위하게 꼽자면 일 년에 100일까지도 광의의 휴일 범위에 넣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상당히 가변적이다. 여러 지자체의 가이드라인이 있고, 휴일을 지정하는 건 주로 금융기관 내지 관공서를 기준으로 따르면서도 각기 처한 상황과 성격에 맞게 정한다.
여기서도 중국과 인도의 차이를 다시 한 번 볼 수 있다. 중국은 한 번에 굵게 쉰다면, 인도는 짧게 여러 번 쉬는 셈이다. 외부의 시각에선 이런 부분은 누군가 통일해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가령 중국처럼 인도의 중앙 정부도 통일하여 공지하면 좋겠지만, 실제 처한 현실은 다르다. 하고 싶더라도 요구는 다양하고 종교의 카테고리일 경우, 그러한 단순 명료한 논리로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그걸 비난한다면 인도라는 국가의 토대를 잘못 이해한 것일 수 있다.
가령 인도에 회사를 세운다면 결국 선택은 스스로 해야 한다. 축소하자면 축소할 수 있고 늘리면 늘릴 수 있다. 다만 그때그때 유연성 있는 운영도 필요하다. 어차피 각자의 종교, 집안의 대소 경조사에 따라 장기 휴가가 필요한 경우도 있고, 차라리 그런 부분을 살피고 이해해주면 좋다. 인도의 풍습에 따라 고향에서 온 가족이 모여 며칠에 걸쳐 축제와 같은 결혼식을 치르거나, 상을 치르며 자식의 도리를 다할 경우 직접 참여할 순 없어도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돌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일의 경과에 따라서는 격주나 임시 휴무로 숨통을 쉬게 해주는 방법도 활용할 만하다. 막연한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만큼 자율적인 재량과 유연성이 있다.
한편 인도의 축제는 무척 화려하다. 비단 가족, 지인 뿐 아니라 모두가 모여 물감을 뿌리고 폭죽을 터뜨리고 화려한 의식과 행사에 온갖 풍악이 울려 퍼진다. 그야말로 축제다. 중국의 명절이 우리와 마찬가지로 고향,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때라면, 인도는 자신이 믿는 종교, 신, 국가와 존경하는 인물을 향해 모두가 어우러지는 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여기엔 인도가 여전히 대가족 중심의 문화가 이어가고 있는 까닭도 없지 않다. 살고 있는 장소에서 춤추고 노래하며 물감을 뿌리고 폭죽을 터뜨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