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인채

[센티멘털 인디아 ⑩] 칼리 부부에게 쓰는 반성문, 섬뜩하지 않을까?


#칼리 여신

“저게 정말 신이야?”

아그라의 후미진 골목에서 처음 칼리의 신상을 보았을 땐 기겁했다. 악귀라면 모를까 신이라고 하기엔 너무 잔인한 것 아닌가… 새까만 피부에 새빨간 혀를 내고 목엔 자른 목을 엮은 목걸이를 했다. 팔은 네 개에 손엔 피 뭍은 칼과 목을 들고 발아래 시바의 몸을 딛고 섰는데 심지어 여신이다. 공포 영화에서도 본 적이 없는 모습이 여간 예사롭지 않았다. 더욱 의아한 건 이런 신상이 주택 사이 골목에 태연하게 서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인도의 종교는 참으로 일상 속에 스며들어 있다는 걸 실감할 수 있지만, 이 골목은 밤엔 도저히 못 지나갈 것 같았다. 밤이 되면 가뜩이나 칠흑 같은 어둠인데, 섬뜩하지 않을까?

그런데 얼마 후 그런 생각이 무척 짧았다는 걸 깨닫고 후회한다. 감히 건방지다. 신이 항상 자상한 모습을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도 편견이다. 칼리의 형상이 잔인한 건 사실이지만, 합당한 의미가 있고, 어떤 신이든 인도인들이 이유를 가지고 믿는 힌두교의 신들은 그 모습을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것이었다. 칼리 여신도 인도에 머무르던 시간 동안 여느 길거리에서나 마주할 무수한 신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하누만 사원 / 정인채

인도인의 대다수가 믿는 힌두교는 다신교다. 외형적 크기와 종류만 보고 이야기할 경우 많게는 약 3억의 신을 모신다고도 말하니 복잡해 보인다. 언뜻 안 믿는 것이 없는 듯하고 숭배를 남발하는 것 같으니, 여러 가지 이유에 따라 그 내용을 한 번 들여다보기도 전에 외면해 버릴 가능성도 없지 않다.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을 리 없다. 좋은 의도에서 ‘3억의 신이 사는 나라’라고 소개하며 인도의 흥미를 더하자는 의도였지만, 그런 소개는 의도치 못한 역효과도 초래한다.

다만 3억의 신계도 실상 들여다보면 그리 복잡하지 것만은 아니다. 그 속에는 체계가 있는데, 거대한 신계이기에 복잡하고 난해하다고 본다면 오해다. 오히려 튼튼한 체계가 있기에 그 거대한 신계가 착오 없이 유지되며 오랜 시간 인도를 다스려온 것이다. 먼저 3억이라는 ‘허수’를 걷어내야 할 것 같다. 하나의 신이 여러 화신으로 세상에 나타나고, 지역과 언어에 따라 같은 신도 다른 명칭으로 숭배되므로, 그 ‘분신술’을 자제시키면 알 만한 신들만 남는다. 게다가 그중에도 주요한 신들이 있고, 현생과 내생에서의 역할, 주관하는 분야에 따라 인기도 다른데, 신과 여신이 짝을 이뤄 또 다른 신을 낳으니 ‘혈연관계’이고, 신화와 전설, 경전 속에서 묶여 있다.

#승리의 여신 두르가 여신상 / 정인채

이로써 힌두교의 신은 체계화되는데, 그 많은 신들을 포괄해내니 효율적이고 기발한 체계다. 그러므로 서로 다른 신을 믿더라도 연관되어 있고, 모두 힌두교의 신이니 사이좋게 믿으며 상대의 신앙을 존중한다. 불교, 자이나교 등 힌두교와 뿌리를 같이 하는 종교들에 호의적이고, 기독교 등 외부 유입된 종교들도 기본적으로는 포용할 여지가 있다. 큰 전체를 조화롭게 움직이는 훌륭한 시스템이란 도리어 단순하고, 이것이 다채로운 사회를 하나로 묶는 얼개다. 특히 인도와 가까워지려면 이러한 힌두교의 모습은 관심을 둘 만한 대목이다. 다소 유연해지면 만사형통이지만, 그것이 모두에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각기 분명하게 다른 성향으로 강하게 대립하여 부딪힐수록 갈등은 필연적이다. 이는 과거 인도 역사 속 갈등과 분쟁에서 입증되어온 사실이다. 인도의 종교가 변할 리 없으니 나머지는 그곳을 찾는 자의 몫이다.

#길거리의 가네샤 / 정인채

섬뜩하다고 누군가의 믿음을 꺼림칙하게 여긴 건 나의 실수였다. 칼리는 시바 신의 배우자로 ‘파괴의 여신’이다. 시간, 변화, 죽음을 상징하는데, 이는 시간이 흘러 변화가 오고 반드시 죽음에 이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바 또한 ‘파괴의 신’으로 영원한 시간과 존재를 상징하는데, 칼리는 그의 배우자로서 일련의 시간 흐름 속에 존재한다. 내생을 믿는 힌두교에서 파괴, 죽음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부숴야 새로 만든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파괴의 신’은 인기가 높다(현재의 삶을 중시하며 우주 유지의 비슈누 신, 내생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우주 파괴의 시바 신이 인기가 높다). 칼리에 대한 숭배도 괘를 같이 한다. 칼리는 가장 난폭한 여신으로 여겨지며 흔히 폭력적인 모습으로 묘사되지만, 초기의 형상은 ‘적멸 상태의 고요’라고 한다. 즉 완전히 파괴 후 새로운 시작이다.

그러므로 어떤 이들은 칼리는 자애로운 어머니로 모신다. 겉모습만으론 쉽게 수긍하긴 어렵지만, 심오한 뜻이 있다. 그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긴 어렵겠지만, 인도인들이 길을 오가며 밤낮으로 칼리를 모신다는 건 또 얼마나 숭고한 행위겠는가! 인도 전역에 훌륭한 종교 유적지가 있고 거대한 사원도 많지만, 이렇듯 골목의 신전이야말로 일상의 힌두교, 인도 사람들의 소박한 종교 생활을 엿볼 기회다. 그때그때 장소에서 필요한 예를 갖추면 비록 낯선 나라, 다른 종교의 외국인에게도 결코 배타적이지 않다.

#승용차 안의 하누만 / 정인채

섬뜩한 칼리만 있는 것도 아니다. 시바 신의 아들로 아버지의 실수로 목이 잘려 코끼리 머리를 달았으며 재물운을 비는 가네샤(코끼리 신), 충정과 재능의 하누만(원숭이 신), 락슈미(부의 여신), 사라스바티(문학, 예술, 풍요의 신) 등은 일상 속에서 자주 보게 될 것이다. 하나 같이 인기 있는 대중적인 신들이다. 그런 신들은 칼리보다는 쉽게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 집 입구에는 곧잘 가네샤 신상이 놓여있으니 인도에서 비즈니스를 할 사람이라면 친숙해져야 할 것이다. 진짜 코끼리도 관광지나 운 좋으면 길거리에서 마주친다. 사람들 사이에 섞여 곳곳에 뛰어다는 원숭이는 인도에서 매우 흔한 동물이고, 대서사시로 인도인의 철학과 사상적 지침서가 되는 「라마야나」에서 주역으로 나오는 것이 바로 하누만이다. 충절을 지키고 재능이 많다. 삼장법사와 손오공의 얘기 「서유기」는 인도를 다녀온 현장의 여행을 모티브로 삼았으니 인도 원숭이와 하누만은 우리와 생각보다 가깝다. 인도 사람들이 모는 차를 타면 백미러에 달린 하누만을 보는 경우도 많다.

칼리가 유별나지 인도의 여신들은 대체로 매우 아름답다. 미모로는 세상에서 몇 손가락에 꼽는다는 인도 여배우들도 여신과 같은 외모지만, 어지간해서는 모자라단 소릴 듣기 쉽다. 특히 바라나시의 사라스바티 축제에서 마주한 여신의 신상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커다란 가마 위에 얹힌 사라스바티 여신상은 입수를 위해 갠지스 강으로 가는 길이었다. 바라나시의 미로와 같은 좁은 뒷골목에서 하룻밤 머물고 가기로 한 모양인데, 그날 밤 여신상 앞에선 광란의 장기자랑이 펼쳐졌다. 예술의 신 앞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흥에 겨워 춤을 추는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인도의 신은 고상하지만 않았고, 때로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 내려와 오디션을 심사하는 것이다. 그 즐거운 축제의 모습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사라스바티 여신

누구나 어느 정도 편견을 가지고 살아간다. 너무 다른 건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다만, 그렇다고 무조건 부정하는 것과 그럼에도 그 자체를 존중하는 건 다르다. 사실 신에 대한 편견이라면 인도 사람들에게도 있다. 신상이나 신을 묘사한 이미지 속에서 피부색이 너무 밝은 색 일변도로 묘사된 경향이 있는 것이다. 일각에선 이것이 피부색에 대한 편견이며 왜곡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인도인들의 피부색은 어두운 편인데 TV나 사진 그리고 신상에 묘사된 신들은 하나같이 피부색이 밝으니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다. 반대편에서는 칼리의 예를 들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는 지역의 인종적 차이에서 비롯된 시각차일 수도 있다. 피부가 검고 체구가 작은 남인도에서 백옥 같은 피부의 신을 섬긴다니 낯선 면이 있다. 이는 피부색에 대한 편견, 미적 기준에 대한 사회적 강요 문제로까지 확대될 소지가 있는데, 일부 단체에선 살갗이 어두운 모델들을 고용해 신으로 분장시키고 사진을 촬영하는 운동을 펼치기도 한다.

인도를 믿을 뿐 힌두교도는 아니지만, 가끔 점점 꼬여가는 일이 있으면, 어쩌면 칼리 여신이 단단히 화난 까닭 일지 모른다고 상상해 본다. 아내를 화나게 했으니 평소 지고 사는 시바 신도 무척 화가 났을 것이다. 공상의 수위는 높아진다. 시바 신은 「드래곤볼」의 손오공처럼 분노의 초사이언 모드가 있으니 더욱 무서운 공상이 된다. 그럴 때면 인도에서 하나둘 수집한 소형 신상들을 재미 삼아 꺼내보는데, 사라스바티, 락슈미, 가네샤, 하누만의 신상은 있어도 역시 시바와 칼리 신의 신상은 없다. 인도의 신들을 인정하지만 나도 그것이 한계다. 진노할지라도 외국인 특례로 용서해주길 바랄 뿐이다.

#힌두교 #신 #종교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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