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인채
[센티멘털 인디아 ⑭] 연

나룻배가 떠있는 곳.
사공이 노 저어가자 하얀 포말이 일고, 저기 저쪽의 아스라한 지평선은 안개 같은 연기에 잠겨 보일 듯 말 듯, 내 마음도 알듯 모를 듯 그곳에 이끌린다.
처음 그곳으로 향할 때 그곳에 대해 아는 건 별로 없었습니다.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힌두교 일곱 성지 가운데 하나라고 사전 군이 소개했습니다. 마치 좋은 사람이니까 꼭 한 번 만나보라는 것처럼… 화장터가 있어 영혼이 이탈한 육체를 끊임없이 태운다는 것은 그곳에 이른 다음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시바 신의 도시라 죽음에 앞서 죄를 사해주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죽음에 이른 사람들은 생애 마지막 여정으로 삼는 곳이라는 것도 그 이후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제가 목격한 것은 오랜 도시의 미로와 같은 골목들과 그 속을 정처 없이 떠돌던 수많은 인도 사람들이었습니다. 아직 강엔 이르지도 못했는데, 인파의 물줄기가 사방으로 물결치고 있었습니다. 상점들도 즐비했습니다. 식당이나 숙소보다 눈길을 끄는 건 삼정들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순례 용품을 파는 곳 주위로 번쩍번쩍 금빛이 감돌아 절로 눈이 돌아갔습니다. 그곳엔 알록달록 형형색색의 장신구가 놓여 있었습니다. 성소를 찾은 사람들의 설빔 같은 것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특히 여성들은 결혼식을 빼면 아마 생애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스스로를 치장할 수도 있습니다. 그토록 삶의 환희만큼 죽음이 화려한 건, 이곳에선 죽음의 다른 말이 새로운 삶이기 때문입니다.
이곳이 죽음의 도시란 것도 그때 실감했습니다. 길가엔 수행자와 순례자 외에도 병자와 구걸하는 거지들이 가득했습니다. 아름답다, 화려하다고만 할 수 없는 풍경이 거리에 가득했습니다. 줄곧 공기가 무겁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누군가 제게 두 가지 알약을 내미는 듯했습니다. 길의 이쪽과 저쪽, 골목의 갈림길을 앞에 두고 갈등했습니다. 무엇을 선택하겠습니까?라는 질문의 무게가 아직은 버겁게 느껴졌습니다. 선택하는 것이 답이라는 걸 차마 몰랐습니다.
길을 잃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서성이던 때였습니다. 골목을 따라 한 줄기 행렬이 지나갔습니다. 람을 외치거나, 신상이나 시체를 이고 지나가는 행렬이었습니다. 연이어 나타난 행렬은 의존적인 제 마음속에 화살표를 그어주었습니다. 그들의 뒤를 따라가기로 했습니다. 어쩐지 그렇게 하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골목이 열리는 길 끝에 강변으로 이어지는 가트가 보였습니다. 비로소 바라나시의 갠지스(강가) 강변에 이른 것입니다.
영혼이 두고 간 육신의 연기들이 화장터에서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시바 신 앞에 차례를 기다리는 대기자들이 가득했습니다. 거리 가득한 안개의 기원과 밀도 높은 공기의 실체도 이해했습니다. 이곳에선 죽음이 곧 삶이었습니다. 화장터와 떨어진 다른 한 편에서는 강에 몸을 담고 강물을 머금으며 멱을 감는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관광객과 뛰어노는 아이들도 많았습니다. 이런저런 모든 사람들이 모인 만큼 호객꾼 들도 많았습니다. 보트 투어를 권하는 호객꾼들이 가장 질겼습니다. 구걸하는 아이들의 손동작도 꽤 집요했습니다. 이미 두려움 가득했던 제 심장은 요동치고 있었습니다. 가만히 버티기도 어려운 그런 풍경 속에 너무 당연한 듯 생과 사의 모두가 그곳에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바라나시에서 내가 보았던 것은 무엇일까…’ 제게 누군가 인도가 신비하다고 말한다면 바라나시는 그 신비함의 메카였고, 가장 인도답다고 한다면 가장 인도다운 곳일 것입니다. 한편 인도의 어떤 한계를 상징한다면, 그 또한 그 한계를 잘 드러내는 곳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가장 오랜 과거와 전통의 도시 가운데 하나이며, 종교적 삶의 숙명과 집착을 벗어날 수 없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놀랍고, 가장 노골적인 곳입니다. 세상을 모두 경험한 바 없으나 제게 만약 기묘한 곳을 꼽으라면 바로 이곳이 세상에서 가장 기묘한 곳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곳은 제가 그렇게 느낀 것이지 본 것은 아닙니다. 그곳에서 제가 본 것은 연이었습니다. 뿌연 공기 속을 날리던 바로 그 연(鳶)입니다.
길게 이어진 가트를 거닐다가 어떤 소년과 마주쳤습니다. 평소의 아이들이 손부터 내미는 것과 달리 이 소년은 미소를 머금으며 연을 날리고 있었습니다. 그 연은 강가의 얄궂은 바람에 휘날려 꼬리를 떨어댔습니다. 미묘한 기류 속에 흔들리던 그 연은 연보(일생의 기록)의 '연'일까요? 생사를 이은 '연'이었을까요? 혹은 사람과의 인연을 뜻하는 '연'이었을까요? 물론 연을 보았을 뿐 제가 어떤 연을 보았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바라나시의 연은 그 모든 것을 의미할지도 모릅니다.
스스로 택한 길이 옳은 길이듯, 결국 보고 싶은 연을 보아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