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인채
[센티멘탈 인디아 ⑱] 우리가 실제로 만났을 때

울리는 벨 소리에 잠에서 깨어납니다.
오랜 요람에 무너진 채 수화기를 귀에 걸자 그 너머로 익숙한 음성이 들립니다. 익숙하지만 누군지 모르고, 누군지 모르지만 익숙합니다. 그 익숙함과 무지 속에 갈등하던 사이 뚜 뚜 뚜… 음성은 기다림과 공허감 속에 멀어져 갑니다. 그 목소리와 마주친 적이 있습니다. 뒤늦게 손끝을 움직여 몸을 뉜 시트 위로 얼룩진 기억의 편린을 이어봅니다.
인도의 어느 도시, 철로를 건너다가 강둑에 모여 손 빨래질하던 무리와 마주칩니다. 도비 카스트입니다. 세탁을 업으로 삼는 그들은 인도의 최 하층민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들을 보자 마침내 인도에 왔음을 실감합니다.
실은 꼭 도비가 아니라도 인도라는 걸 실감할 것입니다. 다만 유독 그들이 눈길을 사로잡는 건, 언젠가 보았던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 때문입니다. 인도에 대한 다큐멘터리인데, 늘 그렇듯 그 마무리엔 슬럼가의 삶을 조명합니다. 현실은 지난해도 그들처럼 소소한 행복에 감사하며 물질세계 속 우리 자신을 돌아봅니다. 이젠 마치 공식이 된 것 같은 연출입니다.
제작자의 의도대로 화면 속 도비들은 궁핍한 삶 속에도 카메라를 향해 해맑게 웃어 보입니다. 웃을 수 있다는 건 그럼에도 행복하다는 것으로 그려집니다. 욕심 없이 하루하루 기도하며 소소한 삶에 감사하니, 언뜻 내생을 기약하며 현생의 업에 충실해야 할 그곳의 종교와도 궤가 맞아떨어지는 듯합니다. 그런 장면은 장대한 인도 탐방, 그 대단원의 결말로 그럴듯해 보입니다. 때마침 진행자의 묵직한 내레이션이 흐릅니다.
“행복은 먼 곳에 있지 않단 생각에 스스로를 돌아봅니다.”
“저들이 도비구나.”
다큐멘터리의 장면이 현실과 교차됩니다. 실제 도비와 마주친 건 처음입니다. 그들은 미소 없는 연신 처절한 몸짓으로 바닥을 향해 세탁물을 내려칩니다. 빨랫감은 끝도 없이 쏟아집니다. 반면 화면 속의 도비들은 순수하고 낯선 방문자와 카메라가 신기합니다. 그렇다고 물과 세재에 찌든 삶에 배고픔과 가난은 어디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것이 진심일지 관찰자의 해석일지 알 수 없습니다. 생각했던 것과 다릅니다. 알고 싶습니다.
신호 없는 수화기 너머로 묻습니다.
당신들은 정말 행복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