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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인채

[인도의 이야기들] 우열의 원점


라마야나 對 마하바라타

인도의 핵심 키워드인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는 모두 중요하니 시간을 두고 두루 음미하면 좋을 일이다. 다만 내용이 방대하고 그 해석은 다의적이다. 의욕적으로 탐구하지만 그 자체가 경전이라 끝없는 아포리즘의 숲을 헤매다 중도 포기한 적이 한두 번 아니다. 언젠가 수십 년에 걸쳐 <마하바라타>를 완역해냈다는 번역가의 기사를 접한 적 있는데, 그만큼 하나 제대로 소화하기가 묵직한 일이기도 하다. 아마도 그 자체로 세상의 이치를 깨우쳐 가는 수행의 과정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인도를 좀 알고 싶은데 세상의 이치를 깨우쳐야 하는 걸까? 그러니 인지상정… 꼼수를 부려 수고를 덜고 우열을 가려보고 싶다.

먼저 중요함의 선후를 따져본다. 골동품도 더 오래될수록 가치가 있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도 문학사상 최초의 대서사시(최초의 시, 산스크리트어 시류의 시작)는 <라마야나>다. 그러나 이는 문학의 관점이다. 현재 전해지는 판본은 <라마야나>가 앞서지만, 그 이야기를 (탄소) 연대 추정을 하자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내용상 <마하바라타>는 문명의 정착 과정, <라마야나>는 이미 정착된 문명의 이야기를 다뤘다. 즉 시대상 <마하바라타>의 주요 사건들이 <라마야나>보다 먼저 일어난 것이다. 종합하면 <마하바라타>의 긴 형성 기간 중에 <라마야나>가 만들어졌는데, 무엇이 앞섰냐는 것은 그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다.

그 가치는 자웅을 겨루기 어렵다. 문학(순수 문학, 세속 문학의 태동)의 영역을 넘어 인도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고 인도에 관한 어떤 화두와도 상통한다. 문화적 영향력은 말할 것 없다. 모든 면(소재, 법칙 등)에서 인도 문학의 초석이 된 근원 문학(생계의 토대가 될 만한 시)으로 인도뿐 아니라 동남아 문화에 영향을 끼쳤다. 간단히 말해 오늘날 인도 영화(발리우드)가 그러한 바탕에 뿌리를 두었고, 그 정서가 통하는 곳이라면 모두 그 영향권에 해당한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다.

둘을 구별할 차이점은 많다. <라마야나>에서 람의 여정은 인도 전역에 이르지만, 반영된 문화는 주로 오늘날 델리 인근(쿠루크셰트라)을 중심으로 동부 인도에 해당되는데 비해, <마하바라타>는 마치 백과사전처럼 인도의 모든 분야(지식, 역사 연대 등)에 대해 다루고 있다. <라마야나>가 한 사람(발미끼)의 작품인데 비해, <마하바라타>는 장기간 여러 사람이 힘을 보태 형성되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이해할 만한 특징이다. 또한 이는 문학적 평가로도 이어지는데, <라마야나>의 문체가 잘 다듬어져 우수한 반면, <마하바라타>의 문체는 정립되지 않고 운율적, 문법적 오류도 많다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라마야나>의 이야기는 극적이고, 그 묘사도 아름다워 문학적으로 뛰어나고, <마하바라타>는 그 스케일이 더 장대하다는 특징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이로써 둘을 비교해 나름의 선후를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필자의 경우 나름의 이유로 <마하바라타>에 먼저 관심이 갔다. 당시엔 항시 세상을 향한 모험을 꿈꿨고 두 서사시 모두 대 모험의 매력을 근저에 갖추었지만, 내전과 동족상잔의 비극이란 <마하바라타>의 소재에 조금 더 끌렸던 것 같다. 특히 그 정수라고 할 <바가바드 기타>에 매료되었는데, 누아르랄까? 무협의 로망을 자극하는 면이 있었다. 아마 당시 인도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중국과도 인연은 맺기 시작한 까닭도 있을 듯하다.

<라마야나>는 좀 더 서서히 알게 되었다. 직접적인 계기는 순례지 바라나시에서 장례 일행이 람을 외치는 것을 들은 이후였는데, <라마야나>는 익을수록 무르익는 맛이 있는 듯했다. 물론 그렇다고 <마하바라타>의 감흥이 가신 적은 없다. <마하바라타>가 어떤 숙명과 비애감이 든다면, <라마야나>는 그에 비해 감성적이다.

선후를 둘 순 있지만, 결국 두 서사시는 보완적이다. 모두 알면 그것이 마침내 인도라고도 말할 수 있을 듯하다. 물론 좀 보았다고 무언가를 깨우친 건 전혀 없다. 과거 보았던 이야기도 오늘 보니 새롭다. 삶은 살수록 새롭고, 아마도 알아간다는 느낌이다. 하긴… 그 이치를 깨우친다면 이 세상을 초월한 사람이니까… 생을 살아가는 동안은 차라리 기회가 닿는 한 둘을 음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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