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이야기 가이드] 직쏘의 퍼즐을 푸는 방법

2019/05/31

<베다> 시대의 절정, <우파니샤드>

 

 

뒤돌아보는 자 미련이 많다고 한다. 미련은 오늘과 내일의 발목을 잡으니, 지난 일엔 미련을 가지지 말라는 충고도 곧잘 듣는다. 하지만 과연 그렇기 만한 걸까? 때로 어떤 일은 미련할지라도 끝까지 뒤돌아봐야만 비로소 온전한 끝을 보았다는 느낌이 든다. 끝매듭이 어설픈 바느질은 오래가지 못하는 법이고, 제대로 헤어지지 못한 사람과의 인연은 찝찝할 뿐이다. 그건 어찌 보면 또 하나의 ‘업(業, 카르마)'으로 느껴진다.

 

끝이 중요한 까닭은 끝이 곧 새로운 시작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도 사상에선 파괴가 곧 탄생. 세상 만물이 탄생, 유지, 파괴 그리고 다시 탄생… 을 거듭하며 돌고 돈다. 그러므로 시작이 시작인 게 아니라 끝부터 이미 시작인 셈이다. 그렇게 보면 새로운 시작이란 바로 ‘절정의 미련’에서 시작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그만 잊고 새 출발하란 말엔 언제나 쉬이 동의하기가 어렵다. 알쏭달쏭… 미련 많은 자의 항변일까? 또다시 궤변이다. 그럼에도 조금이라도 동의할 사람이 있다면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우파니샤드>를 찾으시게 어서…”

 

<우파니샤드>를 찾기에 앞서 일단 지난 이야기를 정리해보는 것도 일리가 있는 얘기다. 이쯤 되면 모든 게 헷갈린다. 모든 건 이어지므로 흐름을 놓치지 않을 필요가 있다. (또다시) 미련하지만, 지난 것을 매듭 해야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인도는 <베다>에서 출발했다. 농경문화의 토착민(드라비다인) 사회에 유목 민족인 아리아인이 유입되며, 그 두 문화가 융합(기원전 1500-2000년) 한 것이 곧 오늘날 인도의 모태를 이룬다. 정착의 내용과 거기서 비롯된 이야기가 곧 <리그베다>다. <리그베다>가 <베다>의 시작이다. 여기에 <야주르베다>, <사마베다>, <아타르바베다>가 더해져 <베다>의 4개 결집서가 완성된다. 이어서 각기 그 참고서와 부록 격인 <브라흐마나>와 <아란야크>가 뒤따르는데, <브라흐마나>에서는 자연 숭배의 신앙이 사제를 중심으로 인격신을 모르시는 오늘날과 흡사한 신앙으로 모습을 갖춰가고, <아란야크>에서는 숲 속의 수행과 사색이 구체화되기 시작한다. 이는 곧 <우파니샤드>에서 체계화되며 절정에 이르는데 그것이 곧 인도 철학이다. 

끝이 곧 시작, <베다> 시대의 끝판 왕이 <우파니샤드>다.

 

역사보다 오랜 신들의 이야기 <인도는 이야기다>

 

낱말 그대로 <베다>가 ‘지식’을 뜻한다면  <우파니샤드>는 ‘스승 곁에 앉는다’는 뜻이다. 즉, 스승 가까이에서 지식을 전수(교육) 받는다는 것으로 결국 ‘지식의 획득’을 의미한다. 아는 것이 힘이고, 아무나 전수받을 수 없는 그들만이 비밀스러운 지식을 담은 것이다. 그래서 <우파니샤드>는 다른 말로 ‘아하스야(비밀)’라고도 불렸다. 그렇다면 그건 어떤 지식, 얼마나 중한 지식이었을까?

 

인도에서 모든 건 돌고 돈다고 했다. 신계부터 그렇다. 힌두교의 삼대 신은 브라흐마(탄생), 비슈누(유지) 파괴(시바)다. 거듭 순환하는 우주의 흐름을 반영한 것이다(우주를 탄생시켜 이미 관여한 브라흐마보다 당장의 삶과 다음 생에 관여할 비슈누와 시바가 훨씬 더 인기가 많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인간계 또한 그렇다. 모든 존재는 순환되고, 그 고리는 원인과 결과의 인과관계에 따른다. 바로 ‘업’과 ‘윤회’다. 자신이 한만큼 다음 생이 결정되는데, 잘하면(선한 ‘업’을 쌓으면) 우리 집 강아지도 언젠가는 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다. 그 말인즉슨, 잘못하면(악한 ‘업’을 쌓으면) 나와 강아지의 입장이 서로 뒤바뀔 수도 있다는 의미다(평소 잘할 일이다). 물론, 행위의 결과는 바로 나타나지 않고 좀 더 긴 시간을 두고 나타나기 마련이다. 어쨌든 그러므로 ‘선업’을 쌓기 위해 노력하고, 인도인의 종교는 일종의 생활 방식이 되지만, 쳇바퀴 같은 ‘윤회’의 고리를 끊으려면 그것만으로 충분할 리 없다. 인과관계를 깨고 반복된 흐름에서 벗어나야 하고, 그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해탈’이다. 아예 ‘업’이 없다면 ‘윤회’의 고통도 없다. <우파니샤드>는 바로 그에 관한 비밀스러운 지식을 전한다. 

 

비밀스러운 지식이란 곧 ‘범(梵, 브라흐마)’과 ‘아(我, 아트마)’에 관한 것이다. 그 핵심 사상은 ‘범아일여(梵我一如)’이다. 여기서 ‘범’은 우주의 본질이자 보편적인 원리이고, ‘아’는 인간에 존재하는 본질적인 요인이다(힌두교와 달리 불교에선 ‘아’를 인정하지 않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우주의 본질이자 보편적 원리인 ‘범’이 모든 존재의 유일한 근원이고, 여기서 모든 것(‘아’를 포함)이 발생하고 존재하며 소멸하므로, 거기서 발생한 ‘아’ 또한 필연적으로 ‘범’과 동일한 본질을 가진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범’과 ‘아’는 같은(‘일여’한) 것이고, 그런 동일성을 가졌으니 인간도 ‘해탈’이 가능한 것이다(반대로 자기 자신을 모르면 우주의 본질도 알 수 없다는 것이기도 하다). 단, ‘해탈’ 하지 못한 인간은 ‘업’에 따라 다시 태어난다. 꿈에서 군대에 다시 가라는… 마치 또 한 번 입영 통지서를 받는 느낌이다.

 

 

요약하자면, <우파니샤드>는 스승으로부터 ‘범’과 ‘아’에 관한 비밀스럽고 중요한 지식을 전수하는데, 수행을 통해 무지를 깨고 그 지식을 얻어 ‘범아일여’의 최고 경지에 오르면 비로소 ‘해탈’할 수 있는 것이다. 수행의 구체적인 방법은 여러 형태의 고행과 요가다. 온몸을 뚫고 찢으라니 꼭 끝없는 직쏘의 트랩을 고군분투하며 벗어나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이 세상을 떠나는 데 그리 지난한 대가가 필요하단 말일까? 누군가는 거듭 살기 위해 그토록 불 노초를 찾아 헤매지 않던가(그러다 납 중독으로 명을 재촉했지만…)? 어쩌면 이런 나의 우문이 ‘범아일여’에서 ‘범’은커녕 ‘아’도 모른 체 끝없이 업을 쌓으며 스스로 기억하지 못할 무수한 생을 되풀이하며 떠도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와중에 <우파니샤드>를 이야기하니… 악업은 아닐까 싶다. 일찍 저 세상으로 떠난 강아지에게도 괜히 미안하고…

 

한편 인도 바깥에서 <우파니샤드>가 널리 알려진 이유는 그 철학적 내용 때문이다.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었는데, 동서양의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했다. “<우파니샤드>는 내 삶과 죽음의 위안이다.” 

 

또한 ‘범’과 ‘아’라는 이질적이고 상반된 것의 본질을 동일하게 본다는 개념은 다양한 인도가 통일성을 가질 수 있는 사상적 토대가 되기도 했다. 그러니 <우파니샤드>라고 불린 다양한 짝퉁이 존재해왔음은 물론이다. 무굴 시대 이후로도 쓰여 현재 200여 편의 <우파니샤드>가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그중 진본(기원전 6세기 전)은 12~13편에 불과하다.

 

<우파니샤드>에서 한참의 시간이 지나 <마하바라타>, <라마야나> 등 대서사시가 나오고, <마하바라타>의 일부인 <바가바드기타>가 인도 사상의 정수로 꼽힌다. 그렇게 <베다>, <우파니샤드>, <바가바드기타>의 셋을 꼽아 3대 성전이라고 한다. 인도 사상의 핵심 키워드인 것이다. <베다>, <우파니샤드>에 이어 <바가바드기타>는 낱말 그대로 ‘신을 향한 찬가’를 의미하는데, ‘지식, 전수, 찬가’로 정리해본다. 종교인지 철학인지 문학인지 구분은 모호하지만, 그런 흐름으로 탄생하고 발전한 것이 인도다. 물론 이것은 인도의 역사와 다름없다. 

 

역사보다 오랜 신들의 이야기 <인도는 이야기다>

Share on Facebook
Share on Twitter
Please reload

Please reload

  • Twitter Basic Black
  • 블랙 인스 타 그램 아이콘
  • 블랙 대표자 아이콘

Copyright © emoTure,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