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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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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란 안 홍, <씨클로>




변화하는 세상, 변질되어가는 인간. 세상과 사람 모두 거기 그때 그대로 머무를 리 만무합니다.

영화 「씨클로」에 관한 생각입니다.





전후의 호찌민 시. 빌린 씨클로(자전거 인력거)는 가족의 유일한 생계 수단입니다. 역시 씨클로를 몰다가 사고로 죽은 아버지를 대신해 이젠 소년이 자전거의 안장에 오르죠. 엉덩이는 따갑고 다리는 썩어가듯 아립니다. 소년뿐 만이 아닙니다. 소년의 가족들 또한 고단한 삶을 살아갑니다. 할아버지는 자전거 바퀴 수리로 소일하고, 여동생 역시 구두를 닦으며 누나는 집안 살림을 홀로 도맡죠. 가난하지만 그래도 정직한 삶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폭력배들이 소년의 씨클로를 빼앗아간 것이죠. 만신창이로 씨클로 주인 앞에 무릎 꿇은 소년. 대여는커녕 잃어버린 씨클로를 갚을 길조차 막막해졌습니다. 그리고 이때 주인은 소년에게 악의 손길을 건넵니다. 자신의 수하에 들어와 더러운 일을 하면 빚을 탕감해주겠단 것이죠. 알고 보니 씨클로를 빼앗은 것 또한 주인의 술수였습니다. 모두 소년을 끌어들이기 위한 악랄한 속임수였고 그렇게 한 인생을 저당잡습니다. 정직하고 착실하지만 순진한 소년은 그때부터 쉽게 돈을 벌며 더러운 범죄의 세계 속으로 더욱 깊이 빨려 들어갑니다. 그는 이 비극, 지옥의 악순환을 끊고 벗어날 수 있을까요?  





누군가는 이 영화를 두고, 과도기적 시대상을 배경으로 사회에 만연한 유혹, 그 유혹에 빠지기 쉬운 인간 그리고 그런 인간의 선과 악에 관해 그렸다고 말합니다. 또 다른 누군가는 이 영화에서 한 명의 배우를 주목하죠. 바로 홍콩 배우 양조위입니다. 그가 출연한 베트남 영화라는 점도 이색적이지만, 될성부른 배우는 어디서든 돋보인다는 걸 알 수 있는 작품입니다. 양조위가 좋아 그가 출연한 영화라면 있는 것 없는 것 모두 본다면 결국 이 영화도 찾게 되어있습니다.


그는 선악의 경계를 오가며 갈등합니다. 파더 콤플렉스의 어두운 과거를 가진 악당이지만 본성의 선함 속에 (끊임없이 코피를 쏟으며) 힘들어하는 인물이죠. 르 반 록의 씨클로 소년 연기도 인상적입니다. 소년은 근본적으로 선하며 그의 '파괴'는 동정심을 유발합니다. 영화를 보며 제발 그와 그의 가족이 잘 되길 누구나 바랄 것입니다. 다만 악역인지 아닌지 그 경계가 모호한 양조위의 연기가 더 매력적인 건 어쩔 수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폭력배이자 포주이며 비겁한 연인인 것을… 어쩌면 그 인물의 모호함이 우리에겐 더 리얼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생각해보면 완벽하게 선하거나 완벽하게 악한 사람이란 오히려 드문 인물상입니다). 아무래도 양조위는 이때 이미 그 특유의 ‘우울과 몽환’ 연기를 마스터한 듯합니다.





그런 그를 사랑한 여인도 주목할 만합니다. 포주를 사랑한 나머지 매춘에 뛰어들고 만 여인인 셈인데, 그녀는 바로 씨클로 소년의 누나이기도 하죠. ‘악의 축’에 있는 씨클로의 주인 또한 단순히 악랄하다고 치부하기엔 아까운 인물입니다. 마님으로 불리는 이 여인은 정신 이상의 아들을 홀로 키우죠. 이 인물 또한 정황상 시대와 역사의 비극에서 잉태된 인물이란 걸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표현되지 못한 건 다소 아쉽습니다. 한편 소수의 화교가 지주와 기득권이고, 다수의 원주민은 약자이자 하층민으로 묘사되는 것도 눈에 띄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그 결정적 순간에서 영화의 배경에는 라디오 헤드의 「크립(Creep)」이 흐릅니다. 양조위는 괴롭고 몽롱한 표정으로 취한 채 머리를 기둥에 기대죠(홍콩 영화 전성기에 자주 목격되던 바로 그 감성 연기입니다). 인상적인 연기, 비장의 음악, 아름다운 영상, 영화의 절정입니다.


‘아니 이 노래가 어떻게 여기에?’

이 영화에 이 노래라니 처음에는 살짝 당황했습니다. 하지만 무리한 건 전혀 아니더군요. 「라디오 헤드」의 이 곡은 1992년에 싱글로 나와 1993년「Pablo Honey」에 수록된 곡이니 시대적으로 맞습니다. 노랫말도 장면에 어울리는 그럴 듯합니다. 다만 영화보다 너무 ‘유명해질’ 곡을 썼을 뿐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밴드의 처음과 끝. 출세곡이지만 족쇄가 된 곡이기도 하죠. 최고의 히트곡이지만 그들과 동일시되어 넘을 수 없는  산이 되었고, 너무 자주 부른 나머지 밴드 스스로 지겨워한 곡입니다. 음악은 장면을 조용히 거들면 좋을 텐데, 지금은 그(영상과 음악의) 균형이 조금 엇나간다는 느낌입니다. 하지만 그때는 예상할 수 없었을 운명이었겠죠? 지금이라는 전제에서의 느낌일 뿐, 90년대엔 저라도 이 장면 이 노래에 반했을지 모릅니다.





영화는 그 장면을 기점으로 급격히 요동칩니다. 악에 현혹되고 죄를 저지른 비극적 인물들은 각자의 값을 치르고 이야기는 파국으로 치닫죠. 죄의 값은 단순한 자책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다지 친절한 영화는 아닙니다. 화면도 좀 오래되었고, 영화의 어느 지점까진 애써 버텨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결국 마주해볼 만한 영화입니다. 양조위의 팬이거나, 결정적 한 장면을 감상하거나, 시대의 우울과 대면하거나…


*감독 ‘트란 안 홍’은 데뷔작 「그린 파파야 향기 (1993년)」로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에 노미네이트 되었고, 그때 주연한 ‘트란 누 옌케’가 그의 배우자이며, 그녀가 「씨클로」의 매춘부 역으로 등장합니다. 감독은 훗날 무라카미 하루키 원작 「상실의 시대(2010)」의 메가폰을 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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