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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eatles

비틀즈 (The Beatles)



57년 열여섯 살의 소년 존 레논은 친구들과 밴드(쿼리맨으로 동명의 밴드가 있었던 블랙잭스에서 개명함)를 결성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살 아래의 폴 매카트니가 기타 연주자로 합류한다. 이듬해 매카트니는 학교 버스에서 친해진 해리슨을 밴드에 초대하고, 레논 앞에서 오디션을 보게 된다. 레논은 14세의 해리슨이 너무 어리다며 밴드 합류를 거부하다가 수개월에 걸친 질긴 구애 끝에야 그를 합류시킨다. 이미 초기 밴드 쿼리맨의 멤버들이 떠난 상황에서 예술대에 입학한 레논은 매카트니, 해리슨와 더불어 객원 드러머가 있을 때마다 자니 앤 더 문독이라는 밴드 명으로 활동했다. 대학 친구인 스튜어트 섯클리프가 베이스로 합류하며 그의 제안으로 비탈즈란 이름으로 바꾸었다가 60년에 더 비틀즈(The Beatles)가 탄생한다. 


피트 베스트가 드러머로 합류하고 독일 함부르크의 클럽 두 곳을 소유한 브루노 코슈미더와 계약한 비틀즈는 그가 소유한 인드라 클럽에서 활동하게 된다. 소음으로 민원이 들어와 인드라가 문을 닫자 카이저스캘러로 옮겨 활동을 지속한다. 하지만 비틀즈가 자신의 라이벌 클럽인 탑 텐에 출연하려하자 코슈미더는 비틀즈와 계약을 해지하고, 미성년자인 해리슨을 경찰에 밀고한다. 당시 멤버들은 그밖에 이런저런 말썽에 연루되어 추방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비틀즈는 백밴드로 참여하는 등 함부르크에서의 활동을 이어나가는데, 셧클리프가 탈퇴하며 매카트니가 어쩔 수 없이 베이스를 맡는다. 함부르크 활동을 마칠 무렵, 비틀즈는 리버풀에서 점차 인기를 누리기 시작하지만, 매일 밤 같은 클럽에서 연주하는 것에 염증을 느낀다. 


그런 상황에서 비틀즈는 음악 칼럼니스트인 브라이언 엡스타인의 눈에 들고, 계속된 설득 끝에 62년 밴드의 매니저를 맡는다. 먼저 함부르크 측과의 계약 관계을 정리한 그는 영국의 음반사와 계약을 맺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 데카 레코드는 기타 그룹은 한물갔다며 거부하는데, 비틀즈에게 기회를 준 것이 EMI의 팔로폰 레코드다. 팔로폰의 녹음 기술자인 조지 마틴이 데모 테이프를 듣고 오디션 기회를 주었는데 계약이 성사된 것이다.


그들은 62년 애비 로드 스튜디오에서 첫 녹음 섹션을 가지는데, 형편없는 연주 실력으로 드럼을 맡고 있던 베스트를 해고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로리 스톰 앤드 더 허리케인스에서 탈퇴한 링고 스타를 영입한다. 새롭게 합류한 링고 스타와 <Love Me Do>를 녹음하지만, 링고 스타의 연주에도 만족하지 못하자 앤디 화이트를 고용해 <Love Me Do>를 비롯해 <Please Please Me>, <P.S. I Love You>를 녹음하기도 한다. 결국 링고가 연주한 <Love Me Do>가 첫 싱글로 선택되지만, 음반 발매에서는 앤디 화이트의 드럼 연주에 링고 스타는 탬버린을 치는 형태로 발매한다. <Love Me Do>가 차트 상위권(레코드 리테일러 차트 17위)에 오르고 첫 TV 출연도 이뤄진다. 당시 존 레논을 비롯한 비틀즈 멤버는 매니저, 레코드사의 의견을 가능한 수용해 첫 성공의 발판을 높기 위해 상업적 타협도 어느 정도 감수한다. 또한 레논과 매카트니의 작곡 파트너 쉽이 성공을 거두자 다른 멤버들의 입지는 제한되는 구도가 형성된다.


<Love Me Do>의 준수한 성공 이후 좀 더 빠른 박자로 녹음된 <Please Please Me>를 필두로 밴드의 역사적 행보가 시작된다. 70년까지 열두 장의 앨범 중 열한 장이 차트 1위를 거머쥔다. 싱글 <She Love You>는 영국에서 단 나흘 만에 75만 장이 팔려나가고 밴드에서 처음으로 백만 장 이상 판매한 싱글로 기록된다. 상업적 성공으로 밴드가 수없는 미디어에 노출되며 다소 겸손하지 못한 태도를 보여주는데, 이마저도 성공의 불길에 기름을 붓는다. 당시로서는 생각지 못했던 파격적인 행동에 더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열성팬들로 인해 ‘비틀마니아’로 불리는 광적 팬덤도 생겨난다. 무엇을 하든 막을 수 없는 인기였다. 


밴드의 성공은 EMI의 미국 자회사를 통해 미국 시장의 진출로 이어진다. 64년 미국행 당시 런던에서 광적인 환송을 받은 그들은 뉴욕에서 그 이상으로 폭발적인 팬덤과 마주하게 된다. 그들의 TV 출연은 두 차례에 걸쳐 총 1억 4천만 명 이상의 엄청난 시청자 수를 기록한다. 혹평을 받기도 했지만, 더 돋보인 건 열광적인 팬들이었다. 성공의 여파는 영화 <A Hard Day’s Night>의 출연과 사운드트랙 계약까지 이어지는데, 영화는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다. 다분히 사운드트랙의 효과를 노린 것이기도 했다. 또한 비틀즈는 그해 빌보드 핫 100 싱글 차트 중 1위에서 5위까지를 포함해 15개의 곡을 올려놓는데, 그들로 말미암아 영국 음악은 유례없던 관심과 인기를 얻게 된다. 이른바 ‘브리티시 인베이젼’이다. 3년간 성공적인 앨범 판매와 투어 활동을 이어간다. 


한편 네 번째 정규 앨범인 <Beatles for Sale>부터 조금씩 갈등이 싹트기 시작한다. 레논과 매카트니의 파트너쉽은 한층 성숙해지는 한편,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대한 상업적 성공과 상업적 성공에 대한 계속된 압박, 음악적 야망의 상충되며 야기된 갈등이었다. 이 무렵 밥 딜런을 만나 대마초를 경험한 것을 비롯해 LSD도 접한다. 영국에서는 훈장을 수여받는데 보수적인 당시 사회 분위기 속에 항의한 몇몇 수훈자들이 자신의 훈장을 반환하는 사태도 벌어진다. 


이어 사운드트랙의 효과를 노린 영화로 <Help!>에도 참여하지만 영화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고, 다섯 번째 앨범인 <Help!>는 영화의 사운드트랙과 무관하게 거의 대부분 밴들의 오리지널 곡으로 채운다. 이 앨범에서는 고전 악기를 편곡에 활용한다. 대표적으로 현악 4중주를 사용한 발라드 <Yesterday>가 수록되고, <Norwegian Wood>에서 해리슨은 인도 악기인 시타르를 연주한다. 이후 해리슨은 시타르 연주자인 라비 샹카르에게서 배운다.


이후로도 성공적인 미국 투어는 계속되다가 65년 하반기에는 음반 작업에 열중하며 <Rubber Soul>을 내놓고 비평가의 극찬을 받는다. 이때부터 그들의 음악에서 사랑과 철학에 대한 깊이가 더해졌는데, 대마초의 결과물이라고도 술회한다. 주로 레논과 매카트니의 공동작업의 성과물인데, 서로 자신의 주도로 만들어진 곡이라고 주장한 <In My Life>는 그 절정의 산물로 꼽힌다(정점을 찍은 이 앨범은 롤링스톤에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음반 500장 중 5위에 올려놓은 바 있다). 


성공의 이면에 따라오는 그림자처럼 밴드는 점차 의도치 않은 논란의 중심에 선다. 66년 내놓은 컴필리에이션 앨범 <Yesterday and Today>는 기괴한 앨범 커버로 논란을 낳아 새로운 커버로 교체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필리핀 투어 중에는 영부인의 초대에 정중하게 거절했지만 무시를 당한 것으로 오해한 폭도들을 피해 필리핀을 탈출하는 소동이 벌어진다. 레논이 인터뷰에서 기독교를 언급한 발언도 파장을 불러일으킨다. 지금은 예수보다 자신들이 인기 있다고 말한 그의 발언이 맥락을 무시한 채 미디어에서 확대 재생산되고, 레논은 논쟁을 벌이지만 결국 사과하며 물러선다. 이 무렵 비틀즈는 처음 인도를 방문한다. 


일상화된 공연에 신물을 느낀 그들은 마지막 투어를 마치고, 실험적인 곡들이 수록된 <Revolver>를 내놓으며 <Rubber Soul>에 이어 상당한 음악적 성취를 인정받는다(롤링스톤은 역사상 세 번째로 위대한 앨범으로 선정한 바 있다). 이제 비틀즈는 라이브 공연에서 스튜디오 시대로 접어든다. 투어에서 해방된 밴드는 전 세계적으로 극찬 받는 앨범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를 내놓는다. 표지부터 수많은 패러디를 낳은 앨범이다(롤링스톤에서 가장 위대한 500개 음반 1위로 선정한 바 있다). 이어 67년에는 싱글 <All You Need is Love>를 발표한다. 


하지만 싱글을 발표한 이후 매니저 브라이언 엡스타인이 서른둘의 나이로 사망한다. 약물 과다 복용으로 판명 났지만 자살설이 끊이지 않았다. 엡스타인의 사망 소식을 접한 것은 요기 마하리시 마헤쉬를 소개받은 멤버들이 초월 명상을 참가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 시점이었는데, 성공의 지대한 조력자로서 그 방향타를 잃은 비틀즈 멤버들은 충격과 혼란에 빠진다. 

이후 <Magical Mystery Tour>, <Yellow Submarine>을 통해 영화와 사운드트랙으로 활동하는데, 존 레논이 감독으로 참여한 <Magical Mystery Tour>는 엄청난 자만이라는 평과 함께 쓰레기로 치부된다. 이어 <The White Album>에서는 브라이언 엡스타인 부재 속에 요기 마하리시 마헤쉬에게서 답을 찾으려 한다. 그를 스승으로 여긴 멤버들은 인도 리시케시로 가 석 달 간 머무르며 요기의 가르침을 듣고 영감을 얻으며 앨범 수록 곡의 대부분을 작곡한다. 하지만 버티지 못한 링고 스타는 채 열흘 만에 떠나고, 매카트니 또한 무료함을 이기지 못한 채 한 달이 되자 떠난다. 하지만 존 레논과 조지 해리슨은 계속 창작에 열을 올린다. 주변에서는 마헤쉬가 그들을 조종하고 있다는 의심을 제기하는데, 그가 여성 수행자들에게 성적으로 접근한다는 이야기에 설득된 존 레논 또한 두 달이 지나자 마헤쉬에게서 등을 돌리고, 존 레논은 그를 비판하는 곡을 쓴다.   


멤버들의 관계는 <The White Album>의 앨범 작업부터 눈에 띄게 벌어진다. 링고 스타가 이탈하는 한편, 존 레논은 매카트니와의 공동 작업에 염증을 느끼고, 경멸을 내뱉기도 한다. 또한 멤버들 간의 합의를 어기고 존 레논은 연인인 오노 요코를 스튜디오에 데려온다. 앨범은 더 이상 유쾌한 기운 없이 만들어지고, 비틀즈의 음악이 아닌 멤버 각자의 음악들로 채워진다. 그럼에도 앨범은 기록적인 성공을 거둔다. 미국에서만 한달 사이에 4백만 장이 팔려나간다. 그러나 짜임새 없는 앨범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다. 하지만 당시엔 비난을 받아도 시간이 흐를수록 재평가 받는 앨범이기도 하다(롤링스톤에서 열 번째로 위대한 음반으로 꼽는다). 레논과 매카트니 뿐 아니라 다른 멤버의 훌륭한 역량이 발휘되었기 때문이다. 


예전으로 돌아가자 메시지를 담은 매카트니의 싱글 <Get Back>이 성공하지만, 밴드의 불화는 봉합되지 못한다. 레논도 싱글 <The Ballard of John And Yoko>로 성공을 거둔다. 이후 비틀즈는 앨범 <Get Back>의 녹음을 마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매카트니의 반대로 발매가 무산되고, 사실상 마지막 앨범인 <Abbey Road>의 녹음에 들어간다. 내부적 갈등에도 69년 발매된 이 앨범 또한 팬들을 매료시키는데 성공한다. <Come Together>, <Something>, <Here Comes The Sun> 등이 수록되었는데, <Something>은 해리슨이 작곡한 곡 중 처음 1위를 차지한다. 


이후 비틀즈는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는다. 레논은 이미 비틀즈보다는 오노 요코의 파트너였다. 다만 매카트니가 끈을 놓지 않았고, 발매가 보류되었던 앨범 <Get Back>이 다시금 프로듀싱 되어 <Let It Be>라는 이름으로 발매된다. <Let It Be>에 이어 <The Long and Winding Road>로 마지막 1위를 차지한다. 70년 밴드는 공식 해체된다.


십여 년이란 기간이 사실 짧은 건 아니다. 하지만 실제 활동한 기간보다도 그 역사를 요약하기가 어려운 로큰롤 밴드다. 그만큼 빼곡한 족적을 남겼다. 밴드의 무대는 함부르크에서 영국으로, 영국에서 미국으로, 미국에서 세계로 그리고 세계에서 전설로 자리를 옮겨간다. 단순히 한 시대를 구가한 인기 밴드가 아니라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시도 속에 대중성과 음악성을 아울렀고, 로큰롤 뿐 아닌 대중음악사의 지평을 열었다. 격동의 역사, 히피, 반문화의 시대를 가로지르며 음악 외적인 문화적 영향력을 끼친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밴드가 해체되고 전설적 멤버 중 일부는 이미 이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여전히 무수한 사람들이 사랑하며 그들의 음악을 콧노래로 흥얼거린다. 부모님도 듣고 아들딸도 들으며 손자손녀도 들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음악이다. 


또 한편으로 그들의 이야기는 마음속으로 무언가 그립고 진한 향수를 자극한다. 혼란 가득하지만 꽤나 낭만적인 시대의 흔적 같다. 기타를 손에 쥔 소년들이 한 생애를 살며 재능과 열정을 다해 꿈을 현실로 이루던 시절의 이야기 말이다. 물론 그 뒤에 이어지는 세속적인 갈등과 아쉬움 가득한 결말도 이들의 이야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신격화된 영웅에게도 불완전한 인간의 삶이 있듯 화려한 성공 신화만을 이야기한다면 반쪽짜리일 뿐이다. 그 길고 구불구불한 이야기가 그저 이젠 다시 찾기 어려울 옛 길이 되진 않길, 앞으로 또 어떤 소년 소녀들에 의해 재현되길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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