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디터
Vivian Maier
비비안 마이어 (Vivian Maier, 1926 - 2009)
그녀는 유모였다. 어머니 쪽에서 프랑스 핏줄이 섞였지만 그녀는 미국 출생이었고, 가족이나 어릴적 생활에 대한 이야기는 일절 알려진 바가 없다. 결혼도 하지 않았고, 자식도 없다. 다행히 유모였던 그녀에 대해서는 알아낼 수 있었다.
그녀를 보모로 고용했던 사람들이나 보살핌을 받았던 아이들 혹은 다른 유모의 증언이다. 하지만 아무도 그녀의 '위대한 취미'를 알지 못했다. 그토록 훌륭한 사진 작품들을 남겼을 줄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녀에 대한 증언은 분명하지 않다. 그녀를 기억하는 증언자들은 넓은 챙의 모자, 몸을 꽁꽁 감싼 듯한 옷, 장화 등 그녀의 모습을 추억하며 그녀가 다소 특이하고 신비스러웠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그 어떠한 증언도 그녀에 대해 분명하게 설명해주지 못했다. 상당히 추측성이 강하고, 주관적으로까지 느껴지는 진술들이다. 마치 그들은 허를 찔린 듯한 표정으로 답한다. 그녀라는 인간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 없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차마 떠올리게 될지 몰랐던 기억들을 떠올린다. 그렇기에 그녀에 대한 진술이 계속될수록 비비안 마이어라는 인물은 되려 모호해진다. 사진작가가 아닌 인물의 사진이 사후에 사진계를 들썩이게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그녀를 더욱 신비적인 캐릭터로 각색시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의 말년은 비참했다. 유모 생활의 후반부터 정신적인 문제가 생겼던 것으로도 추측되는데, 편집증적으로 신문지를 모았다거나, 암울한 사건사고에 주목했었다는 증언이 나온다. 게다가 그녀가 돌보았던 당시 아이들 중에는 그녀에 자신들에게 다소 정신적인 상처를 줬다고도 하는데, 얼마만큼 진실일지 쌍방의 증언을 들을 수 없으니 모를 일이지만, 분명한 점은 점차 그녀가 무너지고 있었던 것만 사실이었던 것 같다. 유모 생활을 그만두고 가족도 없이 살 곳이 없어졌는데 다행히 그녀가 돌보았던 아이들이 월세를 내주어 머무를 공간은 있었다고 한다. 말년에는 쓰레기통을 뒤졌다고 하며, 항상 벤치에 홀로 앉아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가난한 유모였고, 사진을 취미 삼아 외롭게 살아갔고, 가난 속에 홀로 외롭게 죽었다.
남긴 것은 현상하지 않은 필름통이 가득한 상자들이었다.